곳곳서 돌발변수…긴박했던 84시간

국민적 염원 품고 ‘통째 인양’ 성공

■인양에서 선체 완전 부상까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48분께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 바다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지 1천75일 만인 지난 25일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에 사실상 성공했다. 24일까지인 소조기에 맞춰 진행된 세월호 인양은 곳곳에서 돌발변수가 나타났지만, 국민 모두의 염원을 받아 결국 인양의 9부 능선으로 여겨진 반잠수식 선박에 거치되는 데 이르렀다. 지난 22일 시험 인양에 들어간 뒤 84시간 만에 완전히 떠오른 세월호. 긴박했던 인양과정을 되돌아본다.

◇“해저면서 1m 떨어지다”=지난 22일 오후 3시30분. 해수부가 세월호 시험인양을 시도한 지 5시간 30여분 만에 세월호 선체가 해저면에서 1m 정도 떠올랐다. 해수부는 당초 인양의 가장 큰 변수로 수중 무게만 8천톤에 달하는 세월호를 해저면에서 이격시키는 것이라고 꼽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세월호 선체 밑을 받치고 있는 리프팅빔에 각각 33개의 유압식 인양줄을 연결한 잭킹 바지선 2척이 인양줄을 단계적으로 천천히 힘을 주는 인장력 시험을 한 뒤, 인양줄에 걸리는 인장력을 미세 조정하는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한 작업이 진행됐다. 결국 해수부는 이날 오후 5시30분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가 해저면에서 약 1m 인양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해수부는 이후 잠수부들을 통해 육안으로 인양 여부를 확인한 뒤 기상여건 등을 검토해 오후 10시께 본인양을 결정했다.

◇간섭현상과 열린 선미램프=본인양이 시작되고 시간당 약 3m 속도로 순조롭게 끌어올려지던 세월호 인양에 잇따라 변수가 발생했다. 23일 오전 4시47분께 세월호 선체가 육안으로 확인될 만큼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선체가 수면 위로 나오자 문제도 함께 발생한 것이다. 같은날 오전 10시께 세월호가 잭킹바지선의 도르래와 부딪히는 간섭현상 때문에 수면위 2.4m 지점에서 인양이 중단됐다. 인장력을 조정한 뒤 수면위 10m 지점까지 다시 들어올렸지만, 이번엔 세월호 좌현에 있던 선미램프(차량 출입문)가 걸림돌이 됐다. 침몰 당시 열려버린 선미램프가 확인된 것이다. 선미램프가 열린 상태에서는 반잠수식 선박에 거칠할 수 없는 탓에 절단 작업이 시작됐다. 결국 밤샘 절단 작업 끝에 24일 오전 6시45분께 램프를 제거하고, 인양도 재개됐다. 이후 오전 11시10분께는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에 거치가 가능한 수면 위 13m까지 부상해 인양의 8부 능선을 넘어섰다.

◇하루빨리 반잠수식 선박으로=세월호가 수면위 13m까지 부양한 뒤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이번 소조기 마지막 날인 24일 자정 안에는 세월호를 반잠수식 선박에 옮겨야 했다. 작업현장에서는 450명의 인부들이 바삐 움직였다. 당초 24일 오후 2시께 5척의 예인선인 바지선을 이끌고 반잠수식 선박이 위치한 곳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물살이 맞지 않아 작업이 지연됐다. 이후 바지선은 오후 4시55분께 출발해 2시간 만에 반잠수식 선박이 위치한 침몰지점 3㎞ 떨어진 곳까지 다다랐다. 오후 8시 30분께 시작된 선적작업은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자정을 넘어서도 계속됐다. 결국 25일 오전 4시10분께 반잠수식 선박이 부양하며 세월호 선체와 맞닿았다. 대형여객선을 통째로 인양하는 사상 유례 없는 인양작업이 사실상 성공한 것이다. 인양작업이 시작된 지 약 83시간 만인 같은날 오후 9시15분께에는 반잠수식 선박이 부양해 세월호 선체 전체가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진도/하강수 기자 hgs@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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