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오후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한 근로자가 선체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

2년6개월간 협력사 포함 근로자 6만5000여명 회사 떠나

 세계 최대 수주량을 자랑하던 현대중공업이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이고 있다.

조선업계의 몰락을 상징하는 '말뫼의 눈물'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역 전체로 번지고 있다. 자동차, 석유화학과 함께 울산의 3대 주력산업이던 조선업의 불황은 그만큼 지역민들에게는 큰 불안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저임금 받는 세계 최대 조선소 근로자

 "세계 최대의 조선소에 입사했다고 좋아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 줄 누가 알겠습니까?"

 지난 19일 만난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해양플랜트사업본부 소속 직영 4년차 오현석(가명·23)씨는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오씨는 "대기업에 취업했다며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 인사를 들은 게 엊그제같은데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며 "잔업과 특근을 못해 한달 실수령액이 120만원 내외인데 이마저도 회시가 지급하는 최저임금 조정수당 2만원 정도 포함된 금액"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일 1시간씩 이어지던 고정연장 근로가 폐지되고 일감 부족으로 휴일특근마저 못하게 되면서 급여가 1년새 70만원 가량 줄어들었다.
 
 이어 "두 달에 한번씩 상여금 160만원이 나오지만 주택 대출금 갚기에도 모자라다"며 "돈이 없어 아이들 학원을 못 보내게 됐다는 선배 등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회시가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3년째 이어지는 불황의 먹구름

 울산 동구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본사에는 3년째 이어지는 불황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60척의 선박을 신규 수주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선박 24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2014년 말 145척, 185억5000만불에 달하던 수주잔량은 2년 만인 지난해 말 103척, 131억3600억불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주목받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는 31개월째 수주가 전무한 상황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작업 가능한 해양플랜트 프로젝트가 단 1기만 남게 되는 위기에 놓여있다.

 현대중공업 내 선박 건조용 독(Dock)은 총 11개로 지난해와 올해 각각 1개가 이미 중단된 상태다.

▲ 현대중공업이 3년째 이어지는 일감 부족에다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 울산본사 전경.

일감 부족현상이 이어지면서 최근 잠정폐쇄된 군산공장 독과 특수선 전용 독 2개를 제외하면 현재 가동중인 독은 6개에 불과하다.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자구노력

 위기 극복을 위해 회사는 지난 2015년과 지난해 사무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 3500여명(계열사 포함)이 정든 회사를 떠났다.

 아울러 사외건물 등 자산을 매각하고 지난해 하반기 생산지원부문의 자회사 분사를 시작으로 그린에너지, 글로벌서비스, 건설장비, 로봇, 전기전자 등  6개 사업부를 순차적으로 분할해 현재 조선·해양플랜트·엔진 등 3개 사업부만 남아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이 2015년 말 144%(17조8000억원)에서 올해 4월 99%(11조1000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눈물겨운 자구노력의 결과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5분기 연속 흑자(영업이익 2조2506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 조용수 상무(총무·문화부문장)은 "5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으나 실제 경영환경이 개선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는 현대오일뱅크,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등 계열사의 실적 개선과 사업부 분할 및 자산 매각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따른 일시적 성과"라고 설명했다.
 
 ◇해 넘긴 임단협에 노사갈등 격화

 경기침체라는 외부 요인과 함께 노사갈등이라는 내부 요인도 현대중공업이 재도약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장기간 표류하는 노사 단체교섭 때문이다.

 근로자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조와 경영 정상화에 동참해달라는 회사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2016년 임단협은 노사 갈등 속에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면서 1년1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2017년도 임금협상마저 시작돼 노사는 2년치 단체교섭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 지난 19일 오후 현대중공업 울산본사 노조사무실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병천 부지부장(오른쪽)과 박기수 정책기획실 부장이 뉴시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회사가 올 한 해 고용보장 대신 기본급 20% 반납, 상여금 월할지급을 골자로 한 제시안을 내면서 노사 갈등이 격화하기 시작했다.

 박기수 노조 정책기획실 부장은 "조합원들은 고정연장근로 폐지 등으로 이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회사의 기본급 반납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조합원들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교섭팀장인 김진석 수석부지부장은 지난달 25일부터 울산시의회 옥상에 올라가 울산시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26일째 단식투쟁을 벌이던 백형록 노조지부장의 건강이 악화돼 결국 병원으로 옮겨졌다.

 정병천 노조 부지부장은 "회사가 개악안을 철회하고 진솔한 자세로 교섭에 나선다면 조속한 타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수 상무는 "경영이 정상화되면 기본급 반납분을 돌려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며 "노조가 열린 마음으로 협상에 나선다면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지자체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 절실

 지난 2014년 말부터 올해 현재까지 2년6개월간 현대중공업과 협력회사를 떠난 근로자 수가 6만5000여명이 달하는 것으로 동구는 집계했다.

 울산 동구청 경제진흥과 김일만 과장은 "오는 8월 완공 예정인 조선업 퇴직자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재취업과 창업 지원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며 "관련조례가 개정되는 대로 노사민정협의회를 구성해 현대중공업 노사갈등 해소를 위한 중재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울산대학교 사회과학부 김주홍 교수는 "일반적으로 노사갈등은 어느 한쪽이 불리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며 "정부의 무리한 노사갈등 개입은 자칫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의 역할은 노사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에 그쳐야 할 것"이라며 "노조는 경영환경을 파악해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고 회사는 기술집약산업의 특성상 전문기술인력을 유지하는 데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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