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이 지켜낸 윤동주의 보석 같은 詩들

 

 

 

최혁 주필의 전라도 역사이야기
13. 광양 망덕포구와 윤동주 시인

섬진강하구 망덕포구에서 바라본 정병욱 생가. 앙조장이었던 이 집 마루 밑에 윤동주의 유고 시집이 묻혀 있었다. 1962년에 촬영된 사진. /광양시 제공

광양이 지켜낸 윤동주의 보석 같은 詩들
후배 정병욱, 學兵 끌려가며 망덕포구 생가에 윤동주 원고 맡겨
정병욱 어머니, 원고 비단에 싼 뒤 항아리에 넣고 마루 밑 은닉
광복 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출간, 세상에 알려져

■ 일제 감시 피해 윤동주 유고 숨겨둔 정병욱 생가
전남 광양 망덕포구 한켠에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윤동주 시인의 보석 같은 작품들이 숨겨져 있었던, 오래된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청년 윤동주가 남긴 시들은 자칫하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1943년 일본 경찰에 붙잡히기 전 친구 정병욱에게 그가 써놓은 원고를 맡기는 데 정병욱은 이 원고를 그의 집 마루 밑바닥에 숨겨놓고 잘 간직했다.

그 장소가 바로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249(옛 주소: 망덕리 23)에 있는 ‘정병욱 가옥’이다. 이 가옥은 1925년에 지어졌다. 도로 쪽으로는 가게가 나 있고 뒤쪽은 살림집으로 돼 있는 구조다. 당시 이 집에는 정병욱(1922∼1982)과 그의 어머니 박 씨 등이 살고 있었다. 정병욱은 연희전문에 다니던 시절 윤동주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정병욱 교수

정병욱은 1학년이었으며 윤동주는 3학년이었다. 두 사람은 선·후배였지만 친구처럼 매우 친하게 지냈다. 1941년에 두 사람은 연희전문 기숙사를 나와 같은 집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종로구 누상동에서 한 달 간 하숙집 신세를 지다가 소설가 김송의 집으로 하숙집을 옮겼다.

그런데 일본 경찰이 요시찰 인물이었던 김송의 집에 쳐들어와 윤동주와 정병욱의 짐까지 샅샅이 뒤지는 소동을 벌였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윤동주와 정병욱은 4개월 동안 살던 김송의 집을 떠나 1941년 9월 북아현동의 다른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1941년 12월 윤동주는 시집을 내기로 결심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였다. 윤동주는 그동안 써놓은 시중에서 18편을 뽑고 1941년 11월 20일에 쓴 ‘서시 序詩’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는 표제를 붙였다.

윤동주는 3부를 필사해 1부는 스승 이양하 교수에게 주고 다른 1부는 후배 정병욱에게 건넸다. 마지막 1부는 본인이 보관했다. 정병욱이 받은 자필 시집 필사본은 200자짜리 세로쓰기 원고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시집 첫 페이지에는 ‘鄭炳昱 兄(정병욱 형)앞에’, ‘尹東柱 呈(윤동주 정)’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육필원고

그렇지만 시집 출간은 성사되지 않았다. 스승 이양하 교수가 시집 출간을 강력하게 말렸기 때문이다. 이양하 교수는 시집이 일본 총독부의 검열에 통과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일본 경찰에 체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윤동주에게 출간을 미루라고 권유했다. 결국 윤동주는 시집 발간을 포기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정병욱은 일제 말기인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갔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 광양 망덕의 고향집에 들렀던 그는 어머니 박 씨에게 윤동주의 원고를 맡겼다. 그러면서 어머니께 “아주 귀중한 것이니 일본인들에게 들키지 말고 잘 간직하고 계시고, 혹시 광복 후에도 자신이 전사해서 돌아오지 못하면 연희전문학교 교수님들에게 갖다 드리면 시집 발간이라든가 세상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원고를 받은 정병욱의 어머니는 아들이 건네준 원고를 명주 보자기에 싼 뒤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 깊숙한 곳에 묻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일본 경찰이 집을 뒤질 것에 대비, 항아리를 묻은 마룻바닥에 나무로 만든 사무용 책상과 서류함을 놓아두었다. 이 책상과 서류함은 지금까지도 남아 전시돼 있다.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 책상과 서류함이 놓여 있다.

광복 후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박 씨는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이 원고를 꺼내 주었다고 한다. 사실 이 원고는 유일하게 남은 원고였다. 윤동주 본인과 이양하 교수가 지니고 있었던 원고는 모두 사라지고 없어서 정병욱 집안이 아니었더라면 윤동주의 작품과 시 세계는 자칫 묻힐 뻔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1948년 1월 30일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발간됐다. 정음사는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윤동주 자필 시집의 시 19편과 연희전문학교 문과 동기 강처중이 보관한 시 12편 등 도합 31편의 시를 실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1955년에 증보판이 나왔다. 증보판에는 88편의 시와 산문 5편이 실렸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정병욱은 편집 자문을 맡았고 시집 후기를 썼다. 정병욱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한국 고전문학 연구와 판소리 연구 등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평소 자신의 가장 큰 보람으로 ‘윤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이라고 밝혔다.

망덕포구 다리가 내려져 있는 곳 뒤에 정병욱 가옥이 있다.
망덕포구와 망덕산

■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尹東柱) 시인

민족 서정시인 윤동주. 일제 치하의 고통과 독립에의 염원을 주옥같은 시로 풀어낸 시인. 그의 유고시집에 담긴 시들은 아름답다. 유년기에 품었던 아련한 연심과 청년기의 고독감 그리고 조국을 잃은 상실감과 자아성찰 등이 세련되면서도 비장한 언어에 담겨 있다.

윤동주의 시에 많이 등장하는 ‘하늘’과 ‘바람’과 ‘별’들이, 1945년 광복이 오기까지 2년여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곳이 바로 광양이다. 광양을 통해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윤동주 시인의 하늘’은 다시 열린다. ‘정지했던 바람’은 다시 생기를 얻어 동서남북으로 향한다. ‘빛을 잃었던 별’들은 다시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윤동주와 광양과의 이런 인연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많은 이들이 윤동주 시인의 자취를 찾아 망덕을 찾아오고 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들린 이들에게 고인이 된 윤동주 시인이 안겨주는 것은 망덕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이다. 혹 밤 깊도록 머무는 이에게,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은 보너스일 게다.

■ 어떤 문화브랜드로 가옥을 보존해야 하나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은 지난 2007년 7월 3일 근대문화유산 제341호로 등록됐다. 그러나 이 가옥은 국가가 지정과 보존을 책임지는 지정문화재가 아니라 사유재산인 등록문화재인 관계로 보존과 유지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이 가옥의 주인은 박춘식씨이다. 박 씨의 부친인 박영주 씨는 정병욱과 외종간이다.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가 정병욱의 동생 정덕희와 결혼한 관계로 박춘식은 윤동주와 사돈지간이 된다. 윤일주와 정덕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윤인석은 성균관대 건축학 교수와 문화재청 전문위원을 지냈다.

김경례씨가 원고가 숨겨져 있었던 곳을 가리키고 있다. 김경례씨는 남해에서 망덕으로 이사 온 12살 때부터 이곳 양조장에서 일했다.

문화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가옥이지만 가옥의 보존 활용 방안과 시기에 대해서는 소유주와 행정기관의 입장이 서로 달라 문제가 되고 있다. 광양시는 지난 2006년부터 이 가옥을 광양시의 문화유산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해 매입에 나섰으나 여러 가지로 입장 차이가 커서 아직까지도 매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병욱 가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집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가족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과감히 해냈던 정병욱 어머니의 용감함과 정병욱의 우정 역시 후손들이 기릴만한 가치가 크다.

이런 점에서 정병욱 가옥은 큰 문화자산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는 나라사랑 정신을 잘 가르칠 수 있고 타 시·도민들에게는 민족의 자산을 잘 지킨 충절의 고장이라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

정병욱가옥 전면모습
정병욱가옥과 안내
박영주 문패 집안쪽에 있다.
윤동주와 친구들뒷줄 왼쪽 장준하, 가운데 문익환, 오른쪽 윤동주, 앞줄 가운데 정일권

/최혁 기자 kjhyuckchoi@hanmail.net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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