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V11과 숨은 일화

이연 광주광역시 교통건설국장의 남도일보 기고

KIA 타이거즈 V11과 숨은 일화
 

기아 타이거즈가 8년만에 11번째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기아챔피언스필드 신축에 기여한 사람으로서, 숨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돔구장이냐 개방형구장이냐.

2009년 겨울, 광주시는 야구장 신축 논란에 휩싸였다. 쟁점은 신축 야구장을 돔으로 짓느냐 개방형으로 짓느냐였다. 논란이 정점에 달할 무렵, 나는 체육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무등경기장은 1965년에 지어져 매우 낡았다. 지역사회로부터 새 야구장의 필요성이 줄기차게 제기되었다. 선수들의 잦은 부상도 문제였지만, 야구가 2015 광주U대회 경기종목이기 때문에 반드시 야구장을 신축해야 했다.

광주시가 돔구장을 추진하자 광주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포스코건설이 남구 그린벨트 지역에 택지를 개발하는 대신, 그 수익금으로 돔구장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두고 ‘특혜’라는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나 역시 그 계획에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주택 보급률이 106%였던 광주의 도심 공동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야구장건립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일본의 삿포로 돔구장과 히로시마 개방형 구장을 찾았다.

삿포로의 경우 겨울이 길기 때문에 야구경기 하는 날이 많지 않다. 따라서 돔구장도 야구 전용이 아니라 축구와 스키 등 다양한 스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여기에 1게임당 1억 5천만 원 이상이 소요되는 등 운영비도 만만찮게 들어갔다. 역시, 돔구장은 우리 지역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 야구장을 지을 경우 토지보상과 진입로개설 등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어 U대회를 코앞에 둔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곧 ‘개방형 야구장’ 신축으로 방향을 잡고 야구장 신축을 서둘렀다.

2. 300억 원짜리 기발한 아이디어

문제는 돈이었다. 야구장 신축에는 2,5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간다. 광역시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광주시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규모였다. 우선 무등경기장 안에 지어 토지보상비와 진입로개설 비용을 절감키로 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초, 국민체육진흥법과 스포츠산업진흥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당시 6천억 원이던 토토복권 수익금(2016년에는 1조 원이 넘었다)의 5%를 2010년부터 5년 동안 한시적으로 20년 이상 된 체육시설의 개보수에 쓸 수 있었다.

그해 여름, 김기홍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체육국장 주재로 광주와 대구, 대전 체육과장이 모였다. 모두 야구장을 새로 지어야 할 지자체들이었다. 신축을 검토하던 대구시와 대전시 체육과장은 신축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토토복권 수익금 사용에 관한 규정을 다시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나는 현재의 무등경기장 내 종합운동장의 성화대 부분을 남겨놓고 짓겠다는 건립안을 냈다. 사실 내 주장은 얼핏 듣기엔 황당할 수도 있었다. 신축이면서 형식상 개보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법을 다시 개정하자는 안에 대해 매우 난감해했다. 개정된 법을 한 번도 시행해보지 않은 채 다시 개정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시설을 일부 남겨놓고 짓겠다는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광주시만 300억 원의 국비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외야석 뒤쪽에 남아 있는 ‘성화대’가 바로 그 유물이다.

나의 제안을 들어준 김기홍 체육국장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내도록 도움을 준 장상근 선배와 박경우 후배에게도 함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장상근 선배는 “꼭 조선시대, 고려시대 건축물만이 유물이 아니네. 오래된 야구장도 유물에 속하는 게 아니겠나. 보존하는 방법을 잘 연구해보게.” 나는 그 말에서 ‘성화대 보존’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

뒤이어 박경우 후배가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종합운동장을 쪼개서 지으면 개보수가 아닐까요?” 멋진 생각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아이디어만 잘 내면, 예산을 확보하고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3. KTX 안에서의 기적

문체부가 지원을 약속한 금액은 매년 100억 원씩 모두 300억 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계획이 틀어졌다. 체육시설의 예산부담 원칙은 국가 3, 지방 7이다. 국비 300억 원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지방비 700억 원이 들어가는지 확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돈을 지자체가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다. 게다가 야구장 건립비가 1,000억 원 이상이 되어야 300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국비 지원이 확정되는 ‘토토복권 수익금 배분 심사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밤, 설계비로 일부 자금만 지원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설계도나 공사비 등과 관련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예산이 얼마나 투입될지 불분명하기에 취한 조처였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지역 정치권과 U대회 관계자 등을 비롯해 예산지원 계획을 뒤집을 수 있는 인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문체부에서 어느 정도 분배 기준을 정했기 때문에 이미 시간적으로 늦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그 절박한 심정으로 위원회가 열리는 당일 아침 KTX 첫 열차를 탔다.

기적이 일어났다. KTX가 익산을 지날 무렵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을 만난 것이다. 내가 탄 7호차 객실로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특실에 있다가 익산역에서 탑승한 아버지를 뵈러 이동하던 참이었다고 했다. 나는 급한 사정을 이 의원에게 알렸고, 그는 곧바로 객차 연결통로로 나가 문체부 체육과장과 체육국장, 차관에게 차례로 통화를 했다. 그리고 열차가 용산역에 도착할 무렵 이 의원으로부터 문체부가 300억 원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전달 받았다.

오후 2시에 열린 위원회에서 자금 지원이 확정되자마자 나는 곧바로 시장 비서실에 기쁜 소식을 전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2010년 12월 31일이었다. 오후 4시에 열린 시청 종무식에서 시장은 전 직원에게 그 기쁜 소식을 알렸다. 서울에 있었던 나는 종무식에 참석한 동료, 선후배 공무원들로부터 격려 박수를 받았다.

막막했던 예산지원을 해결해준 이정현 의원에게 감사드린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그냥 묻힐 뻔했는데, 당시 중앙일보 이해석 기자의 칼럼과 이정현 의원의 자서전을 통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국회의원 일하게 만들기>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광주발 용산행 KTX, 광주광역시 체육지원과장은 문화체육관광부로 출장을 가고 있었다. 야구장 건설 때 지원받기로 한 복권사업 수익금이 깎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익금 배분 심사위원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막막해 했다. 마침 같은 열차에 탄 국회의원을 발견한 그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의원은 휴대전화를 들고 객차 연결통로로 나갔다. 그리고 문화부 체육국장과 차관 등에게 전화해 “원래대로 100억 원을 간청드린다”고 매달렸다. 열차가 용산에 닿기 전에 차관한테서 전화가 왔다. “의원님, 깎이지 않도록 조처 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공무원의 지원요청을 국회의원이 즉석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해결해준 것이다.(하략)

- 중앙일보, 2011년 2월 24일 ‘데스크를 열며’ 이해석

4. 창조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나온다.

무등경기장에서 야구장 기공식이 열렸다. 11월 하순,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렸다. 3,000여명이 기공식을 위해 모였던 터라 행사를 실내에서 진행할 수는 없었다.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가 직접 행사를 기획했다. 그중의 하나가 광주시 밸리댄스 연합회의 공연이었다. 그 춥고 험한 날씨에 얇디얇은 의상을 입은 댄서들이 펼치는 밸리댄스라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행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어느 정도 행사 준비를 해놓은 뒤 경기장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때까지도 진눈깨비는 계속 내렸다. 직원들이 몹시 걱정을 하기에 “우리가 점심을 먹고 나오면 해가 뜰 것”이라고 말했더니 다들 키득키득 웃었다. 너무 추워서 식사를 마치고도 한동안 식당에서 나오지 않고 더 머물렀다. 오후 1시가 다 되어갈 무렵 막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험한 날씨가 걷히고 해가 뜬 것이다. 바람도 잠잠해졌다. 멋진 밸리댄스 공연이 펼쳐졌다. 나는 연단에 올라 그동안의 추진 경과를 보고 했다.

기공식이 끝나자마자 당시 체육지원팀장인 허기석 씨가 말했다.

“과장님은 하는 일마다 기막힌 아이디어를 짜내고 날씨까지 도와줄 정도로 일이 잘 풀리는데,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답은 언제나 똑같다.

“창조는 일에 대한 열정에서 나옵니다.”

일을 해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다. 정성을 들이면 하느님도 도와주신다.

K팝스타 오디션에서 박진영이 어느 출연자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네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바탕은 재능도 물론 있겠지만, 에너지, 즉 열정이야.”

그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발명왕 에디슨도, 현시대를 바꾼 스티브 잡스도 모두 일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활짝 열린다.

공무원들은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일하기가 쉽지 않다.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한 만큼 감사를 더 받기에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힘든 구조다. 하지만 상사의 지시를 받아서 업무를 처리하면 10시간이 걸릴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면 상사의 의중을 미리 알고 하기 때문에 실수가 줄어들고 소요시간도 절반 이내로 줄어든다. 그것이 내가 동기들보다 빨리 승진한 비결이다.

5. 광주시가 이익인가 기아자동차가 이익인가

국비 300억 원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나머지 700억 원을 마련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당시 광주시는 U대회 준비에 막대한 비용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홉 차례에 걸쳐 기아자동차 본사를 방문했다. U대회 경기종목이므로 당연히 야구장을 지어야하기 때문에 기아자동차 경영진은 처음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설득에 설득을 반복한 끝에 어렵사리 25년 동안 운동장을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300억 원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나머지 400억 원은 지방채로 충당하기로 했다.

자금이 확보되자 곧바로 야구장 건립에 들어갔다. 2009년 기준으로 전국 프로야구 총 입장객수는 360만 명이었다. 무등야구장은 경기당 평균 4,000명을 밑돌았다. 은행 이자율은 5% 이상으로 높았다. 그런 조건에서 기아와 계약한 것은 나로서는 대단한 성과였다. 야구장은 70여일 밖에 개장되지 않고, 천연잔디 유지비만도 매년 3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따라서 유지관리비와 인건비 등 운영비가 적잖게 잡힌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2010년부터 야구 인기가 치솟았다. 급기야 2016년에는 관중이 무려 835만 명을 넘었고 광고료도 크게 올랐다. 거기다가 은행 이자율은 2% 이내로 떨어졌다. 우리에게 유리했던 계약조건이 결과적으로 불리하게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섰다. 기아자동차에 대한 특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어렵게 일을 성사시킨 공로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오히려 날선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매스컴에선 연신 비판 보도를 쏟아냈고, 감사원 등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감사를 받았다.

야구장이 준공되고 3년이 된 지금까지 야구장을 가본 적이 없다. 도시마케팅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시민단체와 동양 최고의 야구장을 건립해주었음에도 고맙다는 전화 한 통 없는 KBO와 기아자동차 관계자들이 미워서다. 힘든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야구장을 신축해야 한다는 목표를 향해 달렸던 나의 열정과 의지가 무참하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정말 처참했다.

만일 열정을 가지고 추진하지 않았다면, 광주시 재정 여건상 새 야구장 건립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낡은 야구장에서 뛰는 선수들은 늘 부상을 염려해야 했을 것이고, 시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야구장 신축 책임자인 나는 할 말이 많다. 무엇보다도 “행정은 절차 못지않게 타이밍도 중요하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6. 아시아 최고의 야구장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는 아시아 최고의 첨단 야구장이다. 미국의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즈, 일본 삿포로 돔구장과 히로시마 개방형 구장, 잠실과 부산, 인천구장의 장점만을 따서 만들었다. 국내 야구장들은 모두 수비선수들이 햇빛을 등지는 구조를 취한다. 이에 반해 광주 야구장은 야구 선진국처럼 관중이 햇빛을 등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야구장의 주인은 다름 아닌 관중이라는 철학으로 관중에게 편한 방향과 구조를 생각해낸 것이다. 남녀 화장실 비율을 1 대 2로 구성해 여성 관중이 불편 없이 야구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와 달리 많은 여성이 경기장을 찾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야구장의 편의시설은 모두 장애인 친화시설로 꾸몄다. 장애인만 별도로 이용하는 승강기를 마련했고, 어느 방향에서든 휠체어를 타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의자가 모두 투수석을 향하도록 되어 있어 1,3루석 끝 쪽에 앉아도 고개를 돌려 볼 필요가 없다. 또 지그재그로 좌석을 배치해 키 큰 사람이 앞자리에 앉아 있어도 뒷사람이 관람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

관람석의 하단 부분은 필드와 수평으로 만들어 가까이서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또 3층에는 30개의 방을 만들어 회사원들이나 단체 관람객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단합대회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직장 단합대회를 식당이나 술집이 아닌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서, 바비큐에다 맥주도 한 잔 나누면서 한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야구장 건립은 한편으로는 이처럼 경제적이고 건전한 저녁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7. 야구장 건립 후에 광주에는 무슨 일이?

광주시와 기아는 2년간 야구장 운영 결과를 보고 재계약하기로 했다. 이익을 본만큼 상대에게 돈을 주기로 했다. 2010년에 비해 2016년은 관객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등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져 광고수입이 크게 늘었고, 은행 이자율이 1~2%로 떨어졌음에도 그 결과는 기아가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광주시와 기아가 함께 손익평가위원회(손익위)를 구성해서 평가한 결과, 광주시와 시민단체는 기아가 23억 원의 흑자를 냈다고 주장한 반면, 기아는 181억 원의 적자를 냈다고 밝혔다. 이에 손익위는 양측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고, 기아가 사회 환원금으로 30억 원을 내놓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2010년 당시의 관객 수와 은행 이자율 등을 고려해보면, 기아와의 협상이 얼마나 광주시에 유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은 절대로 손해나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아는 전용야구장에 대한 나의 열정을 높이 산 까닭에 광주시와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나는 야구장 신축에 산파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보다는 특혜 시비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보상은커녕 오히려 비난과 혹독한 감사를 받아야 했다. 죽어라 일했던 결과가 상처투성이로 끝맺음되었다.

아내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보상도 없이 헛돈만 쓰고 다니세요. 기아자동차 상무에게 밥 한 끼 사줄 돈이면 우리 딸 옷을 몇 벌이나 살 수 있을 거예요.”

할 말이 없었다. 사정하는 입장에 처한 우리에게 기아 쪽에서 밥을 사줄 리가 만무했다. 서울에 갔을 때 기아자동차 담당 실장으로부터 청계산 아래에서 1만 원짜리 밥 한 번 얻어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대접도 받은 게 없었다.

광주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야구장의 건립 후 광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야구 관람은 물론 멋진 야구장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그 자체가 명물이 된 것이다. 그들은 야구경기만 관람하고 돌아가지 않는다. 식사, 쇼핑에 이어 숙박도 한다. 돌아갈 때는 양손에 맛있는 광주김치를 사 들고 간다. 광주발전연구원 발표에 의하면 외지인 1인당 2~30만원 이상을 쓰고 간다고 한다.

기아는 야구장을 통해 자연스레 스포티지와 소울을 광고한다. 덕분에 두 차종의 판매고가 늘고,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고용도 늘린다. 광명시에 있던 자동차 부품업체는 운송비 절약을 위해 평동공단으로 이사를 온다.

광주시내 식당과 옷가게들도 덩달아 돈을 벌고, 그 덕분에 자식들 학원을 작년보다 한 군데 더 보내고, 휴일이면 온 가족이 영화구경을 한다. 학원 강사와 영화관 주인은 외식을 하고, 옷을 한 벌 더 산다. 좋은 야구장이 생김으로써 광주 지역경제 전체가 활기를 띠는 선순환 구조를 갖는다. 또한 명물 야구장은 ‘친환경 자동차 선도도시 건설’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다.

내 나름으로 상상해보는 새 야구장의 경제적 효과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금년처럼 기아가 매년 좋은 성적을 내도록 모두 합심하여 도와주어야 한다. 광주시민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기아챔피언스필드가 기여하는 도시마케팅 효과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우리 모두는 기아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마음 졸이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우승 뒤에는 광주시 체육진흥과 직원들의 지방비 400억원으로 지은 기아챔피언필드에 얽힌 힘들었던 여러 사연들이 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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