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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역사이야기-26. 우리에게 전라도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18.01.14  18: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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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역사 정수 모아 국가발전 동력 삼아야

최혁 주필의 전라도 역사이야기
26. 우리에게 전라도란 무엇인가?
전라도 역사 정수 모아 국가발전 동력 삼아야
2018년은 전라도(全羅道) 명명(命名) 천년의 해
영광과 오욕의 역사에서 긍정적 정신가치 추려야

전남 관광인프라·흡인력 높이는 실질적 사업돼야

 

무안 몽탄면 사창마을 우산사 앞 비림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창마을 우산사(牛山祠) 입구 도로변에는 비석 일곱 기가 서 있다. 사람들은 비석이 많다고 해서 이곳을 비림(碑林)이라 부른다. 비림 중앙에 정유재란 당시 무안에서 활약했던 의병장 김충수 선생의 아버지 취암(鷲岩) 김적(金適)의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비가 김충수 의병장 부부의 충절을 기리는 비다. 뒤쪽으로 나씨부인 열부각이 보인다. 가장 왼쪽에 있는 비석이 김충수선생의 사촌동생 ‘충의사 김예수 순절비’다. 김예수는 진주대첩에서 자형 최경회장군과 함께 순절했다. 무안의 김충수 의병장 등 호남의병은 우리가 재조명해 그 의의와 공적을 높여야 할 인물들이다.

 

 


■전라도 명명 천년 기념사업이 가야할 방향

올해, 2018년은 전라도(全羅道)라는 말이 생겨난 지 꼭 천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과거 전라도’의 행정구역에 해당되는 ‘현재의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광주광역시’는 전라도 명명 천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은 전라도 천년의 역사에 담겨 있는 정신과 문화를 현시점에서 재정립해 전라도의 미래를 열어가는 가치로 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지난 ‘천년 세월의 전라도’는 과연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 전라도라는 말이 생겨난 고려 현종 이후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틀 속에서 전라도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떤 위상을 차지했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전라도가 지니고 있는 문화와 풍습은 우리문화의 형성과 전승에 어떤 기여를 했으며 그 특성과 차별성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도 요청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전라도 해부’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전라도라는 지역만을 뚝 떼 내어서 미시적으로 살펴볼 일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 전체의 역사를 놓고 전라도가 어떤 역할을 해냈는지에 대한 통시적(通時的)이고 객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자의적 해석이나 필요 이상의 확대해석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기념사업 추진 의도 중의 하나인 ‘전라도를 제대로 알려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없애자’라는 취지에도 부합된다.

과거 우리가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 특히 외세의 침략에 맞서 전라도 사람들이 보여줬던 불굴의 용기와 항거는 대단했다. 그러나 ‘전라도 사람들이 더 그러했다’는 식의 평가나 자화자찬은 자칫하면 비난과 ‘전라도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전라도의 전통문화와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문화·예술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어야 하며 부분으로서의 자리매김이어야 한다.

 

 

 

 

 

팔도지도중 전라도
전라도의 문화·예술이 타 지역의 예술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식의 간접적 평가나 홍보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지역적 특성을 강조하는 범위 내에서 전라도 문화·예술에 대한 평가와 발전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모든 역사에는 오욕이 있다. 또 모든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다. 과거 전라도 역사에 담겨 있는 영광과 오욕을 모두 아우르는 평가와 정립이 필요하다. 문화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정수(精髓)와 잡스러움을 골라내는 지혜도 요구된다.

그렇지만 지금의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은 전라도 내륙사람들의 기상이나 전라도 문화의 우수성을 보다 부각시키는 방향으로만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위험스러우면서도 편협한 일이다. 자랑스러운 것만 내세울 일이 아니다. 감추고 싶고,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까지도 모두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실수가 미래의 교훈이 된다.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은 육지와 바다를 무대로 살았던 전라도 사람들의 긍지를 모두 높이는 동시에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사업이 돼야 한다.

그래야 보편타당성을 지니게 된다. 인물에 대한 평가에 공과(功過)가 있듯이 전라도 역사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냈던 인물도 많았지만 외세에 빌붙어 호의호식했던 부끄러운 전라도 사람들도 많았다. 또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라도 문화 속에는 우리를 오래 지배했던 외세의 전통문화가 토착화한 경우도 숱하게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진솔한 자기고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전라도 땅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평가와 의미부여가 절실하다. 특히 항몽(抗蒙)유적지를 비롯 임진·정유재란 전적지, 일제의 조선 침탈기에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일제강점기의 항일의병 전적지, 6·25전쟁 당시의 군경희생과 그 와중에 벌어졌던 양민학살 등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 동해바다를 개척해 독도와 울릉도를 지켜냈던, 여수·고흥 일대 전라도 바다사나이들의 호연지기와 기상에 대한 조명도 절실하다.

그래야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이 전라도만의 기념사업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을 받는 대한민국의 기념사업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부분적 역사와 문화·예술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전라도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식의 겸손함이 전제돼야 수용력이 생긴다. 그런 성찰을 통해서 ‘2018년의 전라도가 대한민국에 어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전라도 찾기’다.



■전라도(全羅道) 지명 유래

 

 

 

 

 

 

나주 금성관
전라도라는 어원은 고려 시대 성종이 설치한 12목 중 전주목과 나주목에서 유래한다. 고려 현종 때 5도 양계로 지방행정체제가 개편되면서 기존의 강남도·해양도 땅에 전라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나주는 전주와 함께 전라도의 중심 지역이었다. 나주목 객사였던 금성관 모습. 금성관에는 임금의 위패가 모셔졌다. 조정대신들이 내려왔을 때 묵는 숙소 기능을 했다.
고려 성종은 983년 12목을 설치해 고려를 통치했다. 이후 성종은 995년에 고려의 지방행정제도를 10도로 개편했으며 현종은 재위 9년이던 1018년에 10도를 5도 양계(五道兩界)체제로 개편했다. 5도는 서해도(지금의 황해도 일부), 교주도(강원도 일대), 양광도(경기·충청도 일대), 전라도, 경상도였으며 북방민족의 침입이 많은 북쪽 변방에는 북계, 동에는 동계를 두었다.

전라도(全羅道)라는 지명은 이때 생겼다. 현종은 고려 땅을 5도로 나누면서 강남도(江南道)와 해양도(海陽道)를 합쳐 전라도라 칭했다. 강남도는 지금의 전북지역이고, 해양도는 광주·전남에 해당된다. 강남도와 해양도를 통합하면서 12목 중의 하나인 강남도 전주목(全州牧)과 해양도 나주목(羅州牧)에서 각각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全羅道)라 명명했다.

1895년 23부제(府制) 실시로 전주부ㆍ남원부ㆍ나주부ㆍ제주부의 4개 부로 세분화됐다.

1896년 고종이 조선 8도를 13도로 확대 개편하면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리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도의 56개 군이 전라북도는 1부 14군, 전라남도는 1부 22군으로 통폐합됐다. 1986년에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되고 1995년 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됐다.

 

 

 

 

 

 

고려10도와 전라도가 나와있는 고려5도 /전남도제공
전라도에는 1광역시 2도가 있다. 전남도청은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광주에 들어섰으나 2005년 무안군으로 이전됐다. 전라도를 호남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의 금강인 호강(湖江) 남쪽 지방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의 전라도와 지금의 전라도는 영역상으로 조금 차이가 있다. 고려·조선 시대의 전라도를 현재의 행정구역에 대입해보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광주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에 해당된다.

제주도의 경우 1946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는 전라도에 속했다. 또 현재의 충청남도 금산군과 논산시 일부 남부지역 역시 전라도 땅이었다. 전라도 명명 천년 기념사업에서 제주도가 제외된 것은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제주도는 삼국시대에는 탐라국이라는 독립국이었다. 탐라국은 고려 초까지 독립된 나라였다. 그러나 1105년(고려 숙종 10년)에 탐라국은 고려에 포함돼 탐라군이 됐다. 1274년 원나라 직할지가 됐다가 1294년 다시 고려 땅이 됐다.

제주는 고려에 속하기는 했으나 제주도 토착(왕실)세력이 제주를 실질적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정이 바뀌었다. 조선조정은 관리를 보내 제주도를 통치했다. 제주도는 전라도에 속한 목(牧)이었으며 광복 이후에는 전라남도 제주군이었다. 1946년에 자치도로 분리됐으며 2006년 7월 1일에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됐다.

또 한편으로 현재 전남도와 전북도, 광주시가 추진 예정인 기념사업에는 전라도 바다사나이들의 높은 기상을 드러내는 사업이 빠져있다. 거센 파도와 물살을 헤치며 머나먼 동해까지 나가 독도와 울릉도를 경영, 결과적으로 동해와 영토를 지켜냈던 고흥·여수 등 남해안 일대 바다사나이들의 호연지기를 기념사업에 담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전라도명명 천년 기념사업의 내용과 방향

 

 

 

 

 

 

2017년 서울에서 열린 전라도 방문의해 행사에서 3개 시도 자치단체장과 관계자들이 점등식을 갖고 있다.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은 천년 역사를 재정립하고 미래천년의 창조기반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라도가 품고 있는 천년 역사 속의 여러 가지 역사정신과 문화유산 가치를 현재의 관점에서 꼼꼼히 따져 전라도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미래가치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전남·광주·전북 3개 시·도는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을 통해 전라도의 새로운 천년을 함께 열어가자는 데 뜻을 모으고 2015년부터 사업발굴에 착수했다. 3개 시·도는 지난해 3월 전라도 이미지 개선, 대표 기념행사, 문화관광 활성화, 문화유산 복원, 랜드마크 조성 등 7개 분야 30개 세부사업을 확정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해 왔다.

전남·광주·전북 3개 시·도는 천년의 역사와 문화, 새 미래를 상징할 랜드마크로 광주 ‘천년의 빛 미디어 창의파크’, 전북 ‘전라도 새천년 공원’, 전남 ‘전라도 천년 정원’을 확정하고 조성에 들어간 상태다. 또 나주목 관아와 광주 희경루, 전주 전라감영 등 천년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복원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역사자원으로 삼는다. 이와 함께 무등산과 지리산, 덕유산 일대에 생태문화 기반과 치유 숲을 조성,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길 계획이다. 전남도는 국민들의 관심 제고를 위해 D-1년 기념식과 심포지엄, 도립국악단 특별공연을 실시했으며 2018년을 ‘전라도 방문의 해’로 지정해 3개 시·도가 함께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전라도 방문의 해’ 선포식은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렸다. 또 10월에는 전라도의 관광자원을 널리 홍보하는 국제 관광 컨퍼러스를 여수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전남도는 ‘전라도 천년 경축 분위기 확산’을 위해 오는 4월에 장흥 정남진에서 천년 가로수길 조성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다. 천년 가로수길은 전남 서남해안을 잇는 길로 16개 시군, 522㎞에 달한다. 중장기 사업으로는 나주 영산강 일원에 전라도 천년 정원을 조성해 전라도 천년의 역사와 문화, 새로운 미래를 상징할 랜드마크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최혁 기자 kjhyuckchoi@hanmail.net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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