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눈 내리던 날의 김충수 의병장 취재기

펑펑 눈 내리던 날의 김충수 의병장 취재기

<최혁 남도일보 주필>
 

지난주 대설(大雪)이 내리던 날, 전남대 김재기 교수와 함께 무안 사창마을 일대에서 오후 나절을 보냈다. 기자는 그날 정유재란 당시 활약했던 김충수(金忠秀)의병장과 무안의병들을 취재하러 무안에 갔다. 김충수 의병장은 나주김씨 23세손(二十三世孫)이다. 김 교수는 38대 손이다. 기자가 김 의병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취재하러 간다는 말에 김 교수는 길라잡이를 자청했다.

그렇지만 이날 날씨는 너무도 고약했다. 미리 약속된 동행취재였지만 광주에서 무안으로 가는 길이 모두 빙판길이 돼 있어서 운전하기에 너무 위험스러웠다. 전날 밤부터 슬슬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날 새벽부터 펑펑 쏟아져 내렸다. 취재를 다음으로 미룰까 몇 번을 망설였지만 오전에 목포 쪽에서 다른 약속을 잡아둔 상태라 기자는 무안취재를 강행키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지만 이런 눈발 속에 김 교수를 앞장세운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광주에 있는 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날씨가 궂으니 오시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요. 오지마세요” 김 교수는 그 특유의 우직함으로 기자의 만류를 사양했다. “눈이 그치면 길도 녹겠죠~염려마세요. 자주 가는 길인데~”

목포에서 일을 보고 오후 시간 무안 가는 길에 백창석 무안문화원장에게 들렸다. 문화원 주차장에서 백 원장의 사무실까지는 불과 스무 걸음에 불과한데 부리나케 걷는 그 사이에 머리에 수북이 눈이 쌓였다. 머리의 눈을 털면서 사무실에 들어서니 백 원장이 화들짝 놀라면서 반겼다. 그 전날 전화를 걸어 김충수 의병장에 대한 자료들을 부탁해놓은 상태였다.

백 원장은 ‘설마 이 눈 속에 최 주필이 오랴~?’ 그런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아이고, 날씨 좋은 날 오실 일이지, 어쩐다고 이런 날 오실까?” 백 원장이 차를 권하면서 책 한권을 내민다. 전라도 내륙 의병장들에 관한 책인데, 김충수 의병장 글이 있다고 덧붙인다. 백 원장은 이미 무안의병들에 대한 글을 많이 쓴 사람이다. 여러 가지 자료를 찾는 기색을 살펴 자기 글 말고도 다른 이의 글을 내놓는, 그 마음이 예쁘다.

무안 군청 앞에서 김 교수를 만나니, 대뜸 자신의 차가 빙판길을 오가는데 더 낫겠다며 기자를 태우고 눈길을 헤치고 갔다. 김 교수와 사창마을 비림(碑林)과 우산사(牛山祠), 몽탄강(夢灘江) 하류의 대곡산(大曲山), 대곡마을 입구의 조선수군 수영 터, 23번 도로에 있는 정유재란격전순절유지, 차뫼마을 등을 들렸다.

면과정(棉瓜亭)은 들리지 못했다. 차가 눈 쌓인 비탈길을 올라채지 못해서이다. 김 교수가 차를 몰고 면과정 초입에 들어설 때 걱정이 됐다. 산속으로 뻗은 길이 제법 길고 눈이 수북이 쌓여있어 차가 빠지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두고 걸어가죠? 뚝심의 김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갈 수 있을 거예요. 갑시다”

결국 김 교수와 기자는 중간에 낭패를 당했다. 차가 미끄러져 헛바퀴만 도는 바람에 후진으로 조심조심 갔던 길을 되짚어야 했다. 그날 취재는 눈이 너무도 많이 내려 힘들었다. 그러나 기분은 너무 좋았다. 이 산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조상들의 웅혼한 정신과 기개를 대한다는 것이 너무도 큰 기쁨이었다.

나주대교와 영산대교를 통해서만 바라보던 영산의 도도함을 몽탄교에서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움이었다. 대굴포에 있었다던, 전라도 수군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던 것도 감동이었다. 영산강 하구언이 생긴 뒤로 물길이 막혀버려 강이 쪼그라든, 지금의 상황에서 2천여 명의 수군과 24척의 전선이 정박해 있었던 대굴포 수군진영을 그려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굴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논밭 형상은 과거 전선이 부지런히 출입하던 수군기지로서의 모습을 상상해보기에 충분했다. 전선이 오가던 뱃길은 지금 차들이 오가는 도로가 돼 버렸고 수군들의 숙영지는 허허벌판이 돼버렸지만 그 위로 수군기지의 모습을 겹쳐볼 수 있었다.

가장 큰 행복은 김충수 의병장과 무안의병의 함성을 현장도는 동안 내내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충수 의병장과 무안의병은 그 활약상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 전남도와 광주시, 전북도가 벌이고 있는 전라도 명명 천년 기념사업은 이런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전라도의 의로운 인물들을 많이 찾아내 널리 알리는 것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지난해부터 전라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글을 써가고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많은 분들의 가르침과 도움 때문에 해내고 있다. 지난주에도 그러했다. 눈길을 헤치며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하며 많은 것을 가르쳐준 김재기 교수와 항상 편달(鞭撻)의 정을 듬뿍 안겨주는 백창석 원장에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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