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26>-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이름이 무에냐.”

그가 물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정충신이라고 합니다. 광주에서 왔습니다. 성님은 어떻게 되시남요.”

“나는 최영경이고, 이계삼이고, 길삼봉이다. 하루에도 이름이 자주 바뀐다.”

“네?”

“난세엔 이름이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중 네가 편리한 대로 하나를 골라서 받아들이면 된다.”

“길자, 삼자, 봉자가 마음에 듭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라. 어차피 사기 치는 가명이니까.”

“사기를 치다니요? 사기꾼이 사기친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요.”

그가 대꾸 없이 쪽박으로 술을 가득 퍼서 마시기 시작했다. 목이 탄 듯 단숨에 숨차게 마시고 난 뒤 커다란 손으로 입가장자리를 쓱 훔쳤다.

“이곳이 범지기마을이란 곳이다. 산골인 듯 산골 아닌 산골 같은 골짜기다. 은근히 깊은 산이지. 밤이면 범이 내려와서 가축을 잡아먹고 산으로 돌아가는 곳이라고 해서 범지기마을이다. 내가 요근래 여기서 범 대신 멧돼지를 몇 마리 잡았다. 그것으로 먹을거리로 하고 일 삭을 보냈다. 나루를 지켰으나 무망한 일이어서 곧 떠날 것이다.”

“무망한 일이라니요?”

“지금 나라는 왜놈 천지가 되었지 않느냐.”

“그렇지요.”

그는 대답 대신 다시 쪽박으로 술을 뜨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쪽박을 다 비우자 다시 술을 뜨더니 단숨에 마셨다.

“몸을 덥힐라면 먹어두는 것이 좋아.”

정충신은 홀린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왜군을 곤충 잡듯 가볍게 해치우고,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술바가지를 기울이는 모습이 신비스러웠다.

“놀라운가.”

“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이것으로 마을 사람들이 보복당할까 걱정스러운데, 다행히도 마을은 비어있고, 사람들은 떠나고 없다.”

“완력이 대단합니다요.”

정충신도 군졸의 복부에 칼을 꽂아 목숨을 끊어놓긴 했지만, 길삼봉은 늘 해왔던 것처럼 능숙하게 해치운 모습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천연덕스러운 얼굴이다. 그런 양면의 얼굴이 낯설다.

“성님은 산적 비스무리한 분 아니십니까?”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