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30>-제3장 의주로 가는 길

“대마도주란 자는 일본 왕에게도 ‘신하 아무개 아뢰오’ 하고, 우리 왕에게도 ‘신(臣) 아무개 문안 올리옵니다’ 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지. 곡식이 생산되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서 살자면 끼니를 굶든가 해적질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못하니 그들은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면서 연명하는 간나구들이었어.”

“간나구들이요?”

“그렇지. 쥐새끼 같은 놈들이었어.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자들이 우리 벼슬을 받고 우리 복색에 갓을 쓰고 부산포와 초량에 들어와 조선인 행세를 하는 것에 대단히 만족해했던 게지. 그래서 그자들에게 대마주도절제사(對馬州都節制使)란 직함을 주었으나 그자들은 또 일본왕으로부터도 대마수(對馬守)라는 직함을 받아 일본왕에게도 복종하고 살았어. 조선에 들어오면 철두철미 조선인 행세를 하고, 일본왕이 있는 곳에 가서는 왜의 신하임을 소리높여 고했단 말이다. 이런 놈들에게 조정신료들은 넋이 나간 것이지. 조선복색을 했다고 가상히 여긴 것이란 말이다. 어리석은 것인지, 부족한 것인지, 별 병신 뻘짓을 다하다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어. 지금 대마도가 왜병의 전진기지가 되어서 우리의 온 산하가 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됐지 않느냐.”

정충신은 저도 모르게 울분이 솟았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의 스승도 그 뜻을 높이 샀다. 그분의 지향을 따르겠다고 젊은 제자들도 나섰지. 나는 그때 훈련대장이었다. 스승이 대동계를 조직하여 힘을 기른 것은 십만양병설에 호응하였기 때문이야.”

“대동계? 역모를 꾸미려고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런 잡스런 얘기 하덜 말아라. 당쟁의 희생자였을 뿐이야. 스승이 주도했다는 역모는 조작된 것이야. 역모를 꾸몄다면 왜 왜적을 물리쳤겠나. 역모를 생각했다면 그때가 나라를 뒤집는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태조 이성계 같았으면 나라를 뒤집으려고 궁궐로 쳐들어갔겠지만, 내 스승은 나라를 구하려고 왜군 진지로 쳐들어가셨어.”

“왜군 진지로요?”

“그렇지. 왜적이 남해안 선죽도에 쳐들어 왔을 때 대동계 조직원들을 이끌고 가서 적들을 싸그리 몰아냈다니까. 나라를 구하는 데는 당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데도 그 사이에 사대부들은 서로 모략하고 배신 때리면서 피를 흘렸다. 왜적 침투에는 미적거리고 숨기만 하다가 기회만 있으면 튀어나와서 다른 세력들을 음해하고 병신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어. 한마디로 한심한 새끼들이지.”

술동이가 바닥이 났다. 그는 말을 한 뒤끝마다 술 바가지를 입으로 가져갔는데 그것으로 치미는 화를 끄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다시 말한다만 스승은 특정 누구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출병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라를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나가신 거야. 그런데 이런 선구자들이 역모로 몰려 죽는단 말이다. 지 장군도 그랬어. 좋은 세상을 열어가려고 분투하다 지배층에게 모함을 받아 무너지신 거야. 이러니 나라가 되겠냐? 개판이지. 그래서 개같은 세상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나라는 싹 쓸어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통탄스럽다. 전쟁이 나도 그들에겐 털끝 하나 다친 것이 없으니 더 화가 치민단 말이다.”

“듣기 거북합니다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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