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 찬(讚) 산수도 두 점

학포 찬(讚) 산수도 두 점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한 ‘다시 만난 조선시대 산수도 두 점’을 보았다. 한 점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에서 구입한 산수도이고, 또 한 점은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그림이다. 박물관 소장 산수도는 필자도 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전(傳) 양팽손 작(작가의 이름이 없지만 전문가에 의해 양팽손 작품이라고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두 작품은 마치 쌍둥이 같다. 화면 구성, 산수와 사물묘사, 화풍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바탕 종이도 같아서 두 작품은 한 화가가 거의 동시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찬시(讚詩)를 쓴 필치와 도장 역시 일치하여 ‘학포(學圃)’라는 호를 가진 인물이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학포 찬(讚) 산수도’ 설명문에는 두 그림 모두 ‘작가 미상’으로 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미 소장한 그림의 설명문에는 “상부에는 학포가 쓴 5언 율시와 5언 절구의 찬시가 있다. 16세기 전반에 산수도가 그려진 후, 후대의 인물인 학포가 찬시를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고, 일본에서 구입한 산수도 설명문도 “안견의 영향을 받은 16세기 전반의 화가가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상부에 ‘학포(學圃)’가 쓴 5언 절구의 찬시는 조선 후기에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림은 16세기 전반에 그렸고, 찬시는 조선 후기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는 박물관 측의 설명이 당황스럽다.

산수도 그림의 상부 화제시(畵題詩) 끝에는 ‘학포사(學圃寫)’라는 글씨와 ‘양팽손장(梁彭孫藏)’이란 인장이 엄연히 찍혀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미 소장한 산수도는 ‘전 양팽손 작’으로 불러왔는데 이제 와서 ‘작가 미상’이라니 참으로 의아하다.

관련 신문과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그동안 두 산수도는 15~16세기 사림파의 거두 조광조(1482~1519)의 지인(知人)인 학포 양팽손(1488~1545)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양팽손은 1516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등을 역임하다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에 동참했는데, 1519년 기묘사화로 파직되었고 그 뒤 화순에 학포당을 짓고 은거하며 글과 그림에 몰두한 호남의 대표적 문인화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산수도는 1916년 이왕가 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전신)에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이 기증한 작품이고 양팽손 작품이란 인식이 굳어져 왔다. 그것은 일제가 <조선고적도보>에 작품을 실으면서 ‘전(傳) 양팽손 작’으로 표기한 것이 해방 뒤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에 일본에서 구입한 산수도는 지난해 11~12월 일본 나라현 야마토 문화관의 전시 ‘조선의 회화와 공예’에 선보이면서 국내에 알려진 희귀명품으로 당시 일본 도록에는 ‘학포 양팽손’의 그림으로 표기됐다. 2016년에 일본 도쿄대 板倉聖哲 교수가 논문에서 양팽손의 그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국내 학계에선 양팽손의 작품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두 산수도에 찍힌 인장은 양팽손이 소장했다는 뜻의 ‘양팽손장’(梁彭孫藏)으로 판독되는데, 똑같은 인장이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윤두서의 대작 <심산지록> 등 18세기 화가들의 작품에도 나타나고, 양팽손 인장이라면, 200년 뒤 사람인 윤두서의 작품에 찍힐 리 없다는 것이다. 화폭에 적은 시구의 글씨체도 조선 후대의 것으로 추정된단다. (2017.12.1. 한겨레신문)

필자는 두 점의 산수도는 ‘전 학팽손 작’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산수도를 왜 이번 전시에서 ‘작가미상’이라고 했는지 구체적 논거를 알 수 없다. 아울러 일본에서 구입한 산수도를 도쿄대 교수가 양팽손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를 무시한 이유도 불분명하다.

둘째 설령 박물관이 이미 소장한 산수도의 그림과 글씨가 양팽손의 것이 아닐 지라도 화제시(畵題詩)는 학포 양팽손이 지은 것이 분명하다.

家住淸江上(가주청강상) 맑은 강가에 집 짓고서 /晴窓日日開(청창일일개) 밝은 창 날마다 열어두네 /(중략)

漁舟莫來往(어주막래왕) 고깃배야 오가지 마라 /恐與世上通(공여세상통) 행여 세상과 통할까 두렵구나.

강경호는 위 시를 <화순누정 기행(화순문화원, 2012)>에서 ‘학포당 은둔유감’시라고 했고, 양팽손이 신잠에게 보낸 시도 산수도 경치와 흡사한 구절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월 8일까지 열린다. 조선 회화사에 해박한 전문가들이 ‘학포 산수도’의 작가 규명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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