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71>-제6장 불타는 전투

“아이고메 살았네. 죽는 줄만 알았는디 살았네. 그란디 이것이 무슨 난리요. 매일매일이 산 목숨이 아니요.”

산 너머에서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왜군 진지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모두 이치령으로 올라가시오. 집으로 돌아가면 화를 당합니다. 보복을 당합니다. 청년들은 마을로 다시 내려가사오. 이제는 누구나 전사요. 전쟁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모든 곳이 전쟁터요. 사람들을 산으로 올려보내시오.”

정충신이 가마 안을 들여다 보며 신부에게 말했다.

“가마꾼들이 모시고 갈팅개 신부님도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자 신부가 몸을 빼더니 가마를 벗어났다. 수줍음을 잊고 그녀가 말했다.

“걸어갈 것이구마요. 우리 아버님 모셔다 줘요.”

“내가 모시고 올라가겠습니다.”

“제 서방님도요.”

그러나 멧골에서 처치되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마을 청년이 대신 나서서 말했다.

“저놈들이 패죽였소. 멧골에 끌려가서 봉으로 맞아서 머리가 으깨지고 마지막으로 창에 찔려 죽었다고 하더랑개요.”

신부가 쓰러져 통곡했다.

“신부님, 이럴 상황이 아니오. 빨리 움직여야 해요. 저놈들 나팔소리가 지금 공격한다는 신호요. 다시 마을마다 쳐들어올 모양이오.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신부가 각오한 듯 울음을 그치더니 말했다.

“우리 아버님 부탁해요. 원수를 갈아먹어버릴 거여요.”

그녀의 눈이 빛났다. 까만 눈동자에서 발산하는 증오의 눈빛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았다.

그들이 숲속으로 사라지자 주변 산야는 다시 적막강산의 고요 속에 깊숙이 침잠하는 듯했다.

정충신과 박대출이 인근 마을을 돌고 이치재 진영으로 올라갔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그때까지 권율은 침소에 들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서 한 일을 보고하렸다.”

정충신이 예를 취하고 보고했다. 그때 이 산 저 산에서 불이 올랐다. 뒤이어 함성이 일었다. 산 아래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요란한 농악소리가 들려왔다. 자지러진 꽹과리 소리에 징이 징징 이어지고, 숨가쁘게 장구와 북이 둥둥둥 울렸다. 어떻게보면 선동적이고, 또 다르게 보면 구슬픈 가락들이었다.

권율이 귀를 기울이더니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냐.”

“양동작전입니다.”

그가 저간의 사정을 말하고 덧붙였다.

“대장장이 박대출 성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는 박대출을 만난 사정을 말했다. 박대출이 권율 앞에 무릎을 꿇더니 고했다.“장군, 저는 왜놈들이 우리 강토를 엎어도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응개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요. 저를 죽여주십시오.”

권율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죽을 일이 아니지. 죽을 힘으로 나서야지.”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던 박대출이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다시 고했다.

“정 척후사령과 함께 분골쇄신 나라를 위해서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권율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멀고 가까운 데서 농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구슬픈 곡소리와도 같았고, 주민들의 애절한 호소와도 같았고, 동시에 사람들이 심금을 울리는 선동적인 북소리와도 같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