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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희 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남도일보 '목요마당'

기사승인 2018.05.16  17: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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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라, 사랑하자”

“에라, 사랑하자”

<나선희 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사회복지 기관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노숙인 대상으로 강의했다. 강의를 자청했으면서도 강의 날이 다가오자 슬슬 신경이 쓰였다. 노숙인 관련 기사와 자료를 찾다보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실패나 좌절을 거쳐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이 먹힐 수 있을지 막막했다. 배배꼬인 시선으로 강사를 쳐다볼 것만 같았다. 배부른 소리는 집어치우라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 어떤 대규모 강의 때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괜히 내가 하겠다고 한 건 아닐까 후회가 밀려왔다.

드디어 강의 날. 부담되는 강연 때마다 하는 나만의 의식을 거쳤다. 모든 걱정을 초기화시키고 ‘진심’ 하나만 남겨놓기로 한다. ‘에라, 사랑하자.’ 이렇게 맘먹어 버리는 거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끝으로 내 진심이 닿기를 기도하고 강연장으로 들어섰다. 많지 않은 인원이 오붓하게 둘러앉아서는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밝은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몇은 나선희 아나운서 아니냐며 환호했다. 요즘 방송에 나오지도 않는데 기억하시냐 했더니, 예전에 텔레비전만 켜면 나온 아나운서를 왜 모르냐며 추켜세운다.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덕분에 강의가 술술 잘 풀렸다.

노숙인 쉼터에서 만난 이들은 일반 청중과 다르지 않았다. 재기의 뜻을 갖고 쉼터로 들어 온 만큼 사회 기관으로부터 혜택 받고 있음을 고마워하는, 어쩌다 보니 꼬인 인생, 풀어보고자 애쓰는 여리고 선한 시민이었다. 선입견을 갖고 미리 걱정부터 한 내가 부끄러웠다. 나의 시선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고 평소 강의 때처럼 그들을 대했다. 똑같이 눈 맞추고, 똑같이 웃고, 똑같이 손을 잡았더니 그들도 나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강연장이 덥다며 뚱해 있던 청년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계속 엄마 미소를 보내자 어느 순간 헤벌쭉 웃어 주었다. “나선희 선생님, 다음 달에도 꼭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분 한 분과 악수를 나누고, 가져간 책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교육 담당자도 ‘엄지 척’ 해보이며 흡족해 했다.

상처를 가진 대상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성급하게 다가서면 역효과다. 편견은 마음을 다급하게 한다. 그러니 ‘문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선입견은 시선의 폭력이다.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대하는 자세는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한다.

해외에서 유학 중인 선배의 딸이 잠시 귀국했다기에 밥을 사주었다. 맛나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 “참 예쁘게 먹는구나” 했을 뿐인데 갑자기 눈물을 쏟는다.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느꼈단다. 홀로 외롭게 지낸 유학생활에서 잃어버린 자존감을 확인한 거다. 아무도 들여다봐 주지 않는 타국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다. 정신력으로 무장 해봐도 외로움을 이겨내긴 쉽지 않다. 그러다보면 유학까지 가서 공부만 하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스스로 불쌍해져서 자신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몰고 간다.

서울에서 취업 준비 중인 딸아이도 그랬다. 어버이날이라고 집에 내려왔는데 무척 지쳐보였다. 한 며칠 푹 쉬다가도록 했다. 그러고는 특별대우는 없었다. 밥 먹는 거 바라봐 주고, TV를 보며 빈둥대도 쓰다듬고, 하는 말마다 재밌어 하며 추임새를 주었을 뿐이다. 그랬더니 취업 압박감에 실추됐던 자존감을 찾아 돌아간 모양이다. 다시 힘을 얻어 머리에 띠 두르고 매진 중이라는 메시지가 왔다. “지금 이럴 때냐?” 고비를 지켜봐주지 못하고 질러버렸으면 ‘머리에 띠’는 물 건넜을지도 모른다. 가슴에 천불을 누르며, 미운 놈 떡 하나 더 줘야 하는 이유다.

관계 전문가 조앤 다빌라는 사랑을 찾으려면 자신부터 들여다보라고 했다. 상대가 내 맘에 들지 않은 것은 나의 욕망 때문이라는 해석이 아닐까? 노숙인 강의에서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던, 딸아이가 더욱 치열하게 살아주길 바라는 욕망은 나를 불안하게 할 뿐이다. 좋은 상황에서의 사랑은 누구나 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사랑하기로 결심하자. “에라, 사랑하자.” 나의 소통현답(疏通賢答)의 구호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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