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제38주년>“정신병인 줄 알았는데 고문 후유증이었요”

5·18시민군 참여한 최용석씨 동생 금숙씨의 회한

항쟁이후 오빠 모습 손·발톱 빠지고 눈은 초점 잃어

가족까지 미쳤다고 생각 굿 벌여…정신병원 입원까지

사망이후 18년만에 유공자 인정…“당시 이상한 행동 이해”
고(故)최용석 씨의 묘비를 찾아 제사상을 차리고 있는 여동생 금숙씨의 모습.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정신병인줄만 알았어요. 18년만에 진실을 알게 되고 난 후 죄책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슬비가 내린 18일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이날 5·18 유족들은 기념식을 마치고 희생자 묘지를 찾았다. 민주묘역 4-23 구역 고(故)최용석(1952~1996) 씨의 묘비 앞에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최 씨의 여동생 금숙(61)씨는 살아생전 오빠가 좋아하던 커피를 묘지 주변에 뿌렸다.

최 씨는 “가족들 조차도 정신병인줄만 알았다. 오빠가 돌아가신지 18년 만에야 진실을 알게됐다”며 “5·18 당시 시민군에 참여했던 오빠는 모진 고문 등을 정신을 놓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의 오빠 용석(당시 28)씨는 지난 2014년 5·18 유공자로 민주묘지에 안장됐다. 금숙 씨가 회상하는 오빠의 모습은 손·발톱이 빠져 온전치 못하는 등 외관상으로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5·18 당시 전남 강진에 거주했던 그는 “어느날 광주에서 내려온 오빠의 모습은 완전 다른사람이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전기고문은 무서워’, ‘도망가야 한다’는 등을 연신 중얼거렸다. 또 3~4명만 모여있어도 몽둥이를 들고 쫓아와 위협을 하기도 했다”며 “가족들은 오빠의 이상행동에 대해 미쳐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심지어는 점쟁이까지 찾아가 굿을 벌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중에는 마을에 까지 피해를 줘 쫓기듯 서울로 이사를 갔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상행동에 급기야 내손으로 오빠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용석 씨는 오랜 병원생활 끝에 지난 1996년 세상을 떠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진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 2014년 우연히 고향집을 찾은 금숙씨는 한통의 편지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금숙씨는 “광주시로부터 오빠가 5·18 시민군으로 참여한 유공자였다는 사실을 전달 받았다”며 “30여년 동안 설명되지 않았던 오빠의 이상행동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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