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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의 남도일보 '목요마당'

기사승인 2018.06.13  20: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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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파동이 아닌 법률서비스 개념의 재정착을 위하여

사법파동이 아닌 법률서비스 개념의 재정착을 위하여

<정준호 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
 

 

‘재판거래’라는 단어가 연일 뉴스에 오르고 있다. 사법부 전직 수뇌부에 대한 사상 초유의 수사절차가 개시될 지도 모르는 조직내부의 불안감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복잡한 시선에 법조인들도 숨을 죽이고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특별조사 과정에서 공개된 문건 중에는 충격적인 내용도 다수 있었다. 2015년 7월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에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왔음”, “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해 왔음” 등의 표현들로 사법부가 정치권과 타협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러한 문건들이 사실이라면 이번 특별조사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법부 역시 적지않은 희생을 감내하면서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기에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가볍지 않다. 특히 학부시절 법조윤리 과목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건인 ‘사법파동’을 수차례 거치면서 자체 정화력을 인정받아온 조직이기에 그렇다. 실제로 1971년도 발생한 제1차 사법파동은 공안 검사를 앞세워 사법권을 침해한 행위에 전국법원 판사 455명 중 무려 3분의1에 해당하는 150여명이 이에 항의해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태를 무마했으나 대법원 판사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등 사법부 독립이 크게 훼손됐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 다음해인 1988년 ‘제2차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강화된 사법부의 정치적 종속에 반대하며 당시 200여명의 소장판사들이 사법제도의 민주화, 법치주의의 정착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당시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치열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법권 독립이 확보되었다. 1997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많은 준비를 거쳐 1999년 5월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법조인 수의 증가와 신속 공정한 재판절차 구축 등이 논의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획기적인 논의는 ‘법률서비스’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국민을 위한 사법시스템의 도입이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고압적이고 국민정서에 동떨어진 사법권과 ‘신분’으로까지 표현되었던 ‘법조인’ 개념에서 탈피해 사법권과 법률시스템이 결국 국민을 고객으로 하는 서비스 개념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논의였다. ‘신분’이 아닌 ‘전문지식인’으로서의 법조인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정치권에 예속되는 사법권과 사법시스템의 체제로는 국민의 눈높이가 전혀 고려되지 않기에 사법권 독립을 전제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사법체제 도입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사법권 독립은 국민에 대한 서비스 개념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국민적 호응이 수반되었다.

한편,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통해서 형사절차에서의 배심원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는 재판과정에 대한 국민적 감시와 참여를 의미하였다. 참여 시스템으로 구조적인 사법신뢰의 확보를 시도한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상, 이번 조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국민들이 형사절차에서의 배심원 제도와 같은 형태로 사법행정과 인사권 행사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 요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예를 들어 외부기관으로서의 검찰총장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었듯이 사법부 인사제도에도 국민적 참여요구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또다시 구조적인 사법신뢰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제에 사법권에 대한 국민친화적 법률서비스 개념이 재정착되기를 희망한다. 국민들도 더 이상의 사법파동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빈틈없는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뒤 그에 대한 처리를 기존 사법시스템을 통해서 해결하더라도 사법신뢰를 획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과거 ‘신분’에서 ‘전문지식인’으로 발전된 ‘법조인’ 용어도 보다 서비스 친화적인 모습으로 변모될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탈태(脫態) 역사는 이미 수십년째 진행중이다. 그러나 외풍이 아닌 내풍에 휘말리는 경험은 많지 않았기에 사법부 내부의 의견이 잘 수렴되길 바라는 국민적 시각이 잘 반영되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더 이상의 사법파동을 바라지 않음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내부적 추스림이 잘 마무리된 뒤, 국민들에 대한 미안함을 국민친화적 법률서비스의 획기적인 강화시도로 대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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