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54> 9장 다시 광주

“중인이나 상놈이나 거기서 거기제. 무슨 차이가 있겄는가. 양반이 아니면 중이나 상인 백정 무당 기녀 다 똑 갔당개. 그렇게 만들어놔버렸어.”

출신 성분이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에 공을 세우는 것은 신분귀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몸바쳤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접이 있어야한다. 상을 받고자 해서 하는 일은 아니라고 해도 나라에서는 의당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본이 될 것이며, 또 나라가 어진 행적에 대해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양반 이외는 다 물건 치급 받지요?”

“조정 신료들이 그렇게 계급적으로 틀을 짜버렸는디, 쉽게 뜯어고칠 수 있가니? 한번 굳어지면 못고치는 것이 권위라는 것잉개. 그렇게 우격다짐이여. 백성을 밟고 무시하는 것이 권위를 확보하는 것으로 인식한당개. 그렇게 해도 벌레처럼 순응하니 고칠라고 하들 않제. 그렇게 취급하거나 말거나 의승군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던졌어. 나라와 백성만을 위해 발심한 것이제.”

“죽어가는 뒤편에서 양반이나 그 자제들은 승리의 단술을 빨았는디 그런 것을 그들은 모를까요?”왜 모르겄냐. 알고도 신분이 다릉개 그렇다고 생각하제. 그렇게 길들여져버렸어. 세뇌돼버린 것이랑개. 그것이 부당한 것인 중도 모르제. 정신이 백힌 사람은 두려워서 못나가고. 하제만 나가 사람을 모으면 그자들 폴새 봐버렸을 것이여. 그러들 못한 것이 한이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먼첨 봐버린다고 하지 않았소?”

정충신이 애초의 얘기로 돌아가 물었다.

“수길이가 조선에 들어온다는 첩보가 있다.”

길삼봉의 눈이 빛났다.

“언제요?”

“곧 온다는 것이여.”

히데요시의 조선 출정 계획은 진작부터 추진되었다. 그런데 조선으로 나가려고 하면 꼭 무슨 사고가 터졌다. 이태 전 집안의 기둥으로 기대해마지 않던 동생 풍신수장이 갑자기 병사한 데 이어 50넘어 뒤늦게 얻은 아들마저 전염병으로 급사했다. 아들이 죽었을 때 그는 거의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웬만한 인간이었다면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것 하나 얻으려고 아내 네네를 절간에 보내 삼천배 기도를 올리도록 했고, 젊은 놈을 방에 집어넣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이런 때일수록 불운을 딛고 일어서기로 작정했다. 예정대로 조선에 나가 전쟁상황을 점검하고, 군사들을 독려할 생각이었다. 일본 통일을 이룬 사나이 대장부가 가정사 하나에 계집처럼 훌쩍거리고만 있을 것인가. 히데요시는 별도의 파견군을 꾸렸다. 군을 먹일 군량도 충분히 확보했다. 애마도 두 마리 차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란이 일어났다. 조선 침공 4군 사령관으로 참전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 弘)의 핵심 막료였으나 웬일인지 일본에 남겠다는 우메키다 구니가네(梅北國兼)가 3천 군사를 규합해 사지키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우메키다 구니가네는 요시히로에게 “국내 정정도 불안하니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고 건의해 일본에 잔류했던 것인데, 이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는 조선 침공으로 국내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히데요시를 잡고 대신 대권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히데요시가 머문 나고야에서 시오리 떨어져있는 조그만 고을 사지키에서 반란을 일으킨 그는 나고야로 쳐들어가기 직전 부하의 밀고로 실패했다.

대제후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마에다 도시이에라면 모르겠으나 존재도 없고, 활약도 미미한 것이 칼 좀 쓴다고 나부랭이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니 히데요시는 어이가 없었다. 꼭 세 살 박이 아이에게 수염을 뽑힌 기분이었다.

“그놈 머리를 직접 가져오라.”

히데요시는 심복 아사노 나가마사에게 명령했다. 나가마사는 히데요시 아내 네네의 이복동생이었다. 나가마사 대군대가 사지키로 쳐들어가자 우메키다 구니가네는 사세를 알고 산으로 도망가 자결했다.

“자결했더라도 그놈 시신을 가져오라.”

구니가네 시신을 받은 히데요시는 신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친 듯이 시신을 난도질했다. 구니가네의 내장을 뽑아 그중 간을 씹어먹었다는 설도 있다.

“이런 개 상녀르 새끼, 죽어서도 천벌을 받아야지. 누구도 이런 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그런데 이 무렵 히데요시의 모친 나카(仲)가 독감으로 사경을 헤맸다. 연치로 보아 죽을 나이도 되었지만 히데요시는 지극한 효자였던 만큼 어머니의 백수를 늘 축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경을 헤매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아, 나에게 왜 이리 기구한 운명의 불장난이 불어닥친단 말인가...”

그에 의해 조선이 난도질당한 조선인민의 고통은 눈꼽만큼의 생각도 없는 자가 자신의 불행만은 이렇게 비통해한다. 그는 조선을 침공하면서 연전연승에 대취했을 것이다.

어쨌든 히데요시는 배를 타고 어머니 임종을 보기 위해 오사카 성으로 달렸다. 그러나 물길을 건너는 관몽(關門)해협을 배로 통과해야 했다. 어쩐 일인지 그의 배가 바다 가운데서 뒤집혀 버렸다. 물길이 거칠고 사납다는 관몽 해협에 배가 암초에 부딪쳐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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