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79>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정충신이 그들을 벗어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명군들의 타격대상은 윤인옥과 소청이 아니었다. 정충신을 잡기 위해 두 사람을 인질로 잡았는데 정작 그가 사라져버리면 타격대상을 졸지에 잃는 것이다. 놀란 것은 그들이었다.

“저 새끼 뒤쫓아라.”

그들이 우루루 밖으로 몰려나왔다.

“성님, 도망가불소!”

정충신이 윤인옥과 소청을 향해 소리치고 고샅으로 사라지는데 어느새 세 놈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뒤에서도 두 놈이 따라붙었다. 뒷놈이 몽둥이로 그의 등짝을 갈기자 졸지에 정충신이 쓰러졌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몽둥이가 들어오며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늑신하게 얻어맞는데 옆 방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명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맞는 광경을 보고 명의 부장 쯤 되는 자가 외쳤다.

“야야, 시시하게 저런 쪼맹이 총각놈한테 대여섯 놈이 붙어서 뭐하자는 수작이야? 체모가 아니다. 멈춰라.”

일시에 매타작이 멎었다. 그가 정충신에게 다가오더니 정충신을 일으켜 세웠다.

“정신 도냐?”

정충신의 코에서는 코피가 쏟아지고, 눈두덩이는 새카맣게 멍들었다.

“정신 도요.”

정충신이 이를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싸울만하재? 남자답게 일대일로.”

“좋다. 일대일이라면 아무나 덤벼라. 상대해주마. 대신 목숨 내기다.”

부장이 정충신과 명군 무리를 번갈아보더니 말했다.

“띵하오! 목숨을 걸고 싸우자 이거지? 좋다. 내 장검을 주마.”

그가 정충신에게 자신이 차고 있던 장검을 던졌다. 그리고 자기 군사를 향해 소리쳤다.“이 자와 붙을 자 나와라. 이기면 귀향조치하겠다.”

그러나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의외로 겁이 많았다. 명나라의 군대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기서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연전연패의 전과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은 잡기에는 능해도 담력도 용기도 싸움도 보잘 것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 넓은 대륙에서 영웅 하나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 군대의 수준과 싹수를 알아볼만 했다. 이 점 정충신은 간파하고 있었다. 흘러내린 코피를 손으로 받아 그들을 향해 뿌리며 정충신이 소리쳤다.

“나오랑깨! 씨벌놈들아 안나올 것이여? 안나오면 확 사지를 찢어놔버릴 것이다이. 사나이 대장부가 비겁하게 꼬리 내리면 되냐? 그런 몸으로 객주집 여자를 탐하냐고?”

그러자 한 놈이 앞으로 나왔다. 장신에 무게가 스무관은 나갈 몸집의 병사였다.

“부장님, 이기면 제대한다는 것이지요?” 그가 물었다.

“물론. 지면 목숨이 나간다.”

그러나 그가 진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벌써 체격 차이가 호랑이와 고양이 꼴이었다. 그러나 겨누자마자 그는 정충신의 장검 등으로 따닥! 정수리를 두대 맞고 쓰러져 혼절했다. 몸집이 컸으므로 행동이 너무나 느렸다. 정충신이 칼을 내려쳐 목을 두동강이 내려는데 명의 부장이 소리쳤다.

“동작 그만!”

그러나 정충신이 여전히 기합을 넣어 장검을 모두어 쥐는데 부장이 대신 쓰러진 장신 병사의 배에 창을 내리꽂았다.

“대군 명나라 명예를 더럽힌 놈. 넌 살 자격이 없어. 그나마 조선 병사에게 죽는 수모는 면해주는 거야.”

병사가 사지를 바르르 떨더니 숨을 거두었다. 흙바닥에 피가 흥건히 번지고 있었다.

“넌 가라.”

명의 부장이 말했다. 정충신이 성큼성큼 주막 밖으로 나갔다. 부장이 소리쳤다.

“검은 두고 가야지.”

그러나 사나이의 아우라가 있지, 그대로 순순히 응할 수는 없다.

“아니, 이건 나한티 준 것 아니었소? 싸우라고 주었으면 준 것이제 왜 돌려도라고 하시오?”

부장이 뭐라고 씨부렁거렸지만 정충신이 대꾸도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보더니 그는 졸개들을 인솔해 부대 쪽으로 사라졌다. 정충신이 생각난 듯 술방을 다시 찾자 윤인옥과 소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계집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나더러 서방님 모시라고 했어요.”

그녀는 열여섯 쯤 되어보이는 앳된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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