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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경 더킹핀 대표이사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大記者 유감

기사승인 2018.12.06  20: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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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記者 유감
배미경 (더킹핀 대표이사·언론학박사)

 

일요일 밤이면 KBS의 ‘저널리즘토크쇼 J’를 즐겨 본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고품격 저널리즘 토크쇼를 표방하면서 매회 언론학자, 현직기자, 팟캐스트 진행자 등이 패널로 참석해 저널리즘의 문제를 시원하게 파헤치는 재미가 있다. 수백 개에 이르는 다채널 시대지만 저널리즘에 시간을 할애하는 방송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널리즘을 본격 논하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지난주에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고, 패널로 CBS 변상욱 대기자가 참석했다.

대기자(大記者),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직함이다. 고정패널인 팟캐스트 진행자 최욱씨가 ‘대기자’라는 단어가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다리는 사람이예요? 하고 슬쩍 농을 건넨다. 변상욱 대기자가 설명한 대기자의 정의는 이렇다. “보도국장, 본부장을 끝내고 이미 급을 넘어서 버렸는데 그러면 이후 논설실로 가거나 전무, 상무가 되어 임원이 되거나하는데, 현장에서 취재를 계속하겠다고 하면은 예우상 ‘대기자’라고 합니다.” 예우상 그렇다는 설명이다.

대기자 제도는 1995년 중앙일보가 처음으로 도입했다. 국제전문 김영희 대기자가 1호다. 이후 한겨레, 국제신문, 헤럴드경제, CBS 등 일부 언론사에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는 미디어의 지각변동이 있었다. 민영방송에 대한 허가와 케이블텔레비전 시대가 열리면서 지면의 출혈 확장 경쟁이 가속화 되었고, 단순히 사건사고를 다루는 속보 경쟁으로 신문은 다매체 시대에 경쟁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서 보다 깊이 있는 뉴스를 전달하는 탐사보도방식이 도입되고, 이를 위한 전문기자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선임기자, 전문기자, 대기자라는 직함이 모두 이때 도입되고 시행되었다.

이들 제도가 얼마나 현장에 잘 뿌리를 내렸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오늘은 대기자라는 직함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한다. 누군가 어떤 기자에게 대기자라고 부른다면 기자 입장에선 오랜 취재 경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최고의 영예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봐야할 부분도 있다. 대기자의 대는 한자어로 큰 대자다. 직역하면 큰 기자다. 변상욱 대기자의 설명대로라면 임원반열의 기자를 달리 예우해서 쓴 표현이다. 스스로를 대기자라고 칭한다면 상대입장에서는 오만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또 호칭의 차별화를 통해서 ‘권력화’하려는 보이지 않는 의도로도 읽혀질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직급이나 직위로 대기자를 쓰지는 않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워터게이트 도청사건 보도로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항공작전에 대해서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국제문제 분석에 탁월한 식견을 보인 뉴욕 타임즈의 해리슨 솔즈베리 기자는 세계적 탐사보도 기자다. 우리식으로 하면 대기자라고 해도 부족할 정도의 엄청난 명성을 가진 기자들이다. 하지만 위키 사전 어디에도 대기자라는 과한 소개는 없다. 그냥 기자, 리포터일 뿐이다. great reporter, beat reporter라는 찬사를 받지만 그것은 타인이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부르는 찬사일 뿐이다.

대기자는 호칭의 과잉이다. 직함으로 적합해 보이지는 않는다. 큰 것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小기자, 中기자가 가능하다. 편집 보도국장을 하지 못한 후배 기자들은 소기자이거나 중기자가란 말인가. 야구선수를 야구선수라고 하지 대야구선수라고 하지 않고, 경력 많은 선생님을 그저 선생님이라고 하지 대선생님이라 하지 않듯, 기자는 기자다. 간혹 대학자이니 이런 말을 쓰지만 이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정론을 실천하는 기자다운 기자로 불린다면 그 이상의 예우가 어디 있을까?

이런 현상은 유독 역할보다는 직함에 예민한 한국의 정서가 반영된 탓이다. 기자, 차장, 부장, 국장, 논설위원 그 이상을 했더라도 현장을 누비며 취재할 수 있는 기자라면 그 역할로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어야한다. 백발을 날리며 현장에 설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직업상 서양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우리가 자기를 소개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왜 한국인들은 “나는 국장이다. 나는 부장이다.”라고 하는 직급으로 자신을 다 소개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나의 직급으로 지금의 나를 모두 설명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보다는 그 직에 오르기 위해 더 기를 쓰는 지도 모르겠다.

대기자 반열에 오른 몇 안 되는 훌륭한 언론인을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의 언론문화에 숨어 있는 불합리한 과잉에 대해 한번 짚고 가자는 의미다. 직함에 갇혀 화석화되기 보다는 현장을 누비는 진짜 멋진 현장기자들이 그 자체로 자긍심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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