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면서 드는 단상(斷想)
강신중(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한해가 저무는 끝자락에서 나이 한 살 더 먹어가니 노인문제에 대해 한번 고민을 해보게 된다. 세대를 가릴 것 없이 언젠가는 겪게 되는 모두의 문제일 수 있다. 100세 인생이라는 ‘호모 헌드레드 시대’라는 말을 주위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코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통계청의 ‘2017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노인인구는 지난해 712만명으로 2016년보다 34만명 늘어나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2%로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UN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비중이 7% 이상일 경우 ‘고령화사회’, 14% 이상일 경우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의 고령인구(65세 이상)는 2010년 536만 명에서 2020년 813만 명에 이르게 된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가 고령인구로 진입하는 2020년부터 2030년까지 고령인구(65세 이상)의 비중은 급증할 전망이다.

UN이 2009년에 선포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100세 시대’는 전 지구인이 100세인의 삶을 살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노년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 현 노인복지법은 65세 이상을 ‘시니어’, ‘노인’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는 평균수명이 60이 안되었을 때 만들어진 연령 단위이다. 현재 60세가 넘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노인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지난날 떠들썩한 기념행사인 회갑연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현재의 70대는 과거 50대의 삶을 살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사회· 문화· 제도적 시스템은 평균수명 60~70세 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100세인의 삶을 기준으로 볼 때 ‘5060’시기를 성인기도 아닌 노년기도 아닌 별도의 영역으로 볼 필요성이 생겼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the third stage(세 번째 무대)’, ‘the third age(세 번째 인생)’, ‘the third chapter(세 번째 장)’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근 희망제작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제2 성인기’로 명명하고 있다.

사회에서 은퇴가 강제되는 5060시기에는 진로 탐색기인 청소년기와 유사하게 새로운 학습이나 경험, 새로운 관계망을 모색해야 될 필요성이 생긴다. 이 새로운 전환기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남은 40~50년을 어떻게 보내게 될 것인지 결정된다고 많은 학자들이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탐색 시기를 지원하기 위해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OECD 국가 중 평균 퇴직연령이 가장 낮은 국가이다. 전국 통계는 54세, 서울 통계는 52.6세로 40대 중후반부터 은퇴를 강제적으로 준비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늘어난 수명에 따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각자 개개인의 준비와 적응뿐만이 아니라 사회공동체와 함께 해결방법을 모색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취업연령이 높은 반면 은퇴연령은 빠르며, 자녀 교육비와 주택구입비 등 부담비용이 많은 특성이 있다. 또한 은퇴 준비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은퇴 이후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은퇴교육의 법제화 마련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전직지원서비스 제공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전직지원서비스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은퇴·전직 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며, 은퇴의 특성상 장기적인 준비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적 교육이 아닌 장기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릿쿄대학은 2008년부터 단카이(베이비붐)세대를 중심으로 장년층(50~60대)에게 평생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전 지나온 인생을 회고해보고 남은 인생에 도전하도록 하는 목표를 가지고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칼리지(Rikkyo Second Stage College)’를 설립하였다. 은퇴 후 재교육을 통해 제2의 인생에 도전하고, 2세대가 함께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 운영과 지역 NPO(민간 비영리 단체)와 협력체계가 구축되어 체계적인 은퇴자 준비 교육을 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전직 4학습체제’를 정부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 두 번 정도 이직을 하게 된다면 중간에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받도록 제도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인 인텔이나 IBM은 퇴직을 앞두고 있는 직원들을 1~2년 정도 공익단체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파견하여 문화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급여를 제공하며 지원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코앞에 둔 지금 더 이상 은퇴자를 ‘시혜적 복지’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 사회구성원으로 인식하는 정책적 시각전환이 필요하다. 은퇴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서 40~50대의 생애재설계, 자립역량 강화 등 국가적 차원의 평생교육이 시급하다. 모든 국민이 생애설계교육을 통한 은퇴준비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은퇴교육 수강비의 소득공제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우리 헌법이 제31조 제5항에서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명령이기도 하다.

광주광역시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추진하는 미래설계 아카데미, 앙코르 커리어개발 교육, 인생 재설계 상담 운영 등은 좋은 선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인생 2모작 지원사업은 생활교양, 취·창업, 정보화, 자격증, 외국어 등의 다양한 분야의 강좌로 구성되어 퇴직한 중장년층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퇴직전문가 아동학습지원단’프로그램은 은퇴한 교직원과 미술치료사, 상담가, 요리사 등 전문직 은퇴자의 재능공유를 통해 재취업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남도일보 2018. 12. 11자 보도)

또한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일과 삶의 재구성을 위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의 직업으로 자기의 인생을 설명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은퇴이후의 삶은 동일 업종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로 전직함을 의미하며, 일자리가 아닌 다양한 ‘일감’, ‘일거리’를 구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된다.

한편 세대 간 교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 세대에게 미래에 자신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시니어 세대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노년에 대한 이미지는 어둡고 부정적인 우울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남에게 보여지는 경제적 생산성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설령 건강과 소득이 조금 부족해져도 자족하고 당당할 수 있는 시니어 세대의 삶을 위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먹고사는 문제, 자녀교육에 매달리다 자기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면 반환점을 돌아온 시점에서 삶과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지혜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아인슈타인은 호기심이야말로 늙지 않는 비결이라고 하였다. 길어진 노년기에 다양한 형태의 관심과 배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일은 품위와 격조 높은 시간으로 변화될 수 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