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시대, 우리 지역 여성들의 일자리에 대한 소고
문호성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경제조사팀장>

원시시대 여성들의 가장 큰 역할은 출산이었다. 생산시설이 없던 시절 남성은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 와야 했고, 여성은 그런 인력을 더 많이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그 시절 만들어진 벽화나 조각들은 대부분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역할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논밭에서 농사짓는 일은 주로 남성들의 몫이었지만, 여성들도 농업에 동참했고 양잠 등을 통해 경제활동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 활동범위는 마을 내에서였고 목적도 가정에 보탬이 되려는 것이었다.

이런 제한된 활동은 19세기 산업혁명을 맞아 혁신적으로 변모했다.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고 노동력이 필요해지면서 여성들에게도 다양한 곳에서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더욱 확대되었다. 남성들이 징집되면서 그 빈자리를 여성들이 메운 것이다. 여성이 팔뚝을 걷어붙이고 팔에 힘을 주면서 ‘We can do it!’이라고 외치는 여성 노동자의 포스터 ‘리벳 공 로지(Rosie the Riveter)’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계속 확대되었고 여성이 밖에서 일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사회에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도 일하는 여성에 대한 관념이 과거에 비해 바뀌었다. 유교가 사회의 지배이념이던 조선 시대에 바람직한 여성상은, 집안에서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남편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였다. 그러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경제활동이 크게 확대되었고 지금은 결혼 후에도 맞벌이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광주전남지역 여성은 어떨까? 우리 지역도 여성의 경제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개선되었고, 주변에서 맞벌이 가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광주지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남성과의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여성 고용률은 타 지자체에 비해서 높은 수준이며 실업률도 상대적으로 낮다. 단순히 지표상으로 볼 때 다른 지자체에 비해 양호하다.

하지만 이런 양호한 양적(量的) 지표 이면에는 아직도 개선시켜나갈 점이 있다. 우리지역의 젊은 여성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취업준비 등에 시간을 많이 쏟고 있는 반면 농림어업의 비중과 5인 미만 음식점의 비중이 높은 지역경제 특성 때문에 50세 이상의 여성 경제활동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산업별로는 제조업 취업자가 적은 반면, 사회복지, 교육서비스, 농림어업 등에 치중되어 비임금근로자의 비중이 높고, 임금근로자 중 상용직 비중이 낮아 고용 불안정성이 높다.

그렇다면 광주의 여성 고용의 양과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에 맞는 교육을 확대하고 보다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과거의 단순 농림어업을 넘어 식품 생산, 농어촌 관광 등 새로운 산업으로의 융합을 통해 우리지역의 농림어업을 고부가가치화 하여 상시 고용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육아지원책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육아와 가사이다. 물론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각 지자체마다 그 지역의 특성과 수요에 맞는 육아지원책 등을 적극적으로 실시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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