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2부 제2장 선사포 첨사 <262>

격문대로라면 명군은 왜노를 당장 대마도 바다에 쓸어넣고 일본 열도를 바닷물에 수장시키겠다는 배포다. 그들의 허풍은 알아줄만 했지만 간이 콩알만해진 조선은 감지덕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송응창은 이여송 제독의 직속 상관인 원군 총사령관이었으니 이 제독이 송 총사령관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여송이 움직였다. 그는 움직이면 물불을 안가렸다. 사대수의 선발부대를 보내 왜군의 척후부대를 추격했다. 이를 지켜본 부총병 낙상지는 심히 우려되었다.

“이 제독 각하, 적의 척후부대가 쉽게 노출되는 것은 함정일 수 있소이다. 척후병력을 뒤쫓지 마시오. 우리의 화포부대는 장비가 많이 망가져서 출전준비가 덜돼 있소. 아군의 전투 전열을 정비한 뒤 출격하는 것이 좋습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송 경략이 우리 군의 게으름을 질타하고 있지 않는가. 평양성 승전의 여세로 밀어붙이라고 하셨다. 즉각 전투준비!”

낙상지는 이것은 하수라고 생각하면서도 제독의 말이니 거역할 수 없었다.

한편 왜의 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양성 싸움의 대패를 만회하기 위해 벽제관에 진을 치고 황해도에 진출한 3군 선봉장 구로다 나가마사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한양을 지키고 있는 우키타 히데이에 선봉장에게 병력 출진을 당부했다. 그리고 개성에 외곽에 머물고 있는 6군 선봉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군대를 불렀다. 조명연합군이 추격을 지체한 사이 왜군은 착실히 전력을 비축한 것이다. 고니시는 척후 병력을 시켜 명군을 벽제관 뒤편 해음령과 망객현(望客峴)으로 유인했다.

승전으로 기세가 등등했던 이여송 부대의 부총병 사대수 부대가 왜의 가토 미츠야스, 마에노 나가야스 수색부대를 일격에 무찔렀다. 한 곳에서 60명의 목을 베니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여송은 왜군을 더 얕잡아 보았고, 파주·고양까지 단숨에 진격했다. 명군은 여세를 몰아 3천의 기병을 한양으로 보내 한양 수복을 노렸다.

명의 기병 주력이 한양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왜군은 해음령에서 일합(一合)을 준비했다. 조총 사격과 보병전은 왜군에게 유리했다. 기병전이 빠진 명군은 협소한 진흙탕에서 하나같이 나가 자빠졌다. 이여송은 한양으로 진출한 기병을 돌려빼고 포병을 불렀으나 전세를 뒤집기는 이미 늦었다. 명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평양성에서 완패한 고니시 부대는 구로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한양으로 들어왔고, 힘을 모아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을 격퇴해버린 것이다. 역시 승패는 병가지상사였다.

정충신이 김명원 도원수 막사를 찾았다.

“명이 패배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추격해야 합니다. 숨돌릴 틈을 주어선 안됩니다. 왜병들도 지쳐있을 것입니다. 제가 정탐병들을 이끌고 나가 적정을 살필 테니 군사를 모아주십시오.”

벽제역관 지리는 정충신으로서는 명경을 보듯 빠삭했다. 그곳에서 여러날을 묵은 적이 있다. 장계를 품고 의주로 올라가는 길에 벽제역관에 머물면서 말을 구했고, 지혜도 짰다.

“그렇게 하라.”

정충신이 퇴각하는 명의 패잔병 속을 뚫고 삼송역 부근 숫돌고개에 매복해 있으니 명군 상당수가 왜군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명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쩔쩔 매고 있었다.

정충신은 조선군을 벽제역, 삼송역, 됫박고개, 보광사에 일자 대오로 배치토록 사발통문을 보내고, 자시(子時)에 일제히 횃불을 들도록 했다. 밤이 깊자 과연 이 산 저 산, 이 벌판 저 벌판에서 횃불이 타올랐다. 꽁꽁 얼어붙은 산야에 횃불은 더욱 선명하게 타올라 위협적이었다. 왜군이 그 수에 놀라 겁을 먹고 일시에 퇴각하기 시작했다. 조명연합군의 합동전에서 거둔 전과는 볼 품이 없었지만 조선단독군의 지략 전술로써 왜군을 물리치니 병사들의 사기가 올랐다. 산과 들에서 횃불을 들고 지르는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여송이 왜군을 추격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게 뭐야? 다 이긴 싸움에!”

조선군 병사들이 하나같이 울분을 토했다. 이여송은 왜병의 조총 집중사격을 받고 목숨이 달아날 판에 지휘사 이유승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래서 언제 또 당할지 몰라 겁을 먹고 있었다. 한번 죽을 맛을 보면 조그만 도깨비 불에도 혼비백산하는 법이다.

고니시는 평양성 전투에서처럼 명군이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추격해오는 것으로 알고 전격 휴전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여송이 이것을 덥석 받아물었다. 다 이긴 전쟁에 휴전을 받아들이니 조선군은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벽제관 전투의 패배를 딛고 조선단독군의 섬멸작전이 주효한 상황에서 휴전을 받아들이니 왜군을 패퇴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역시 외국군대는 외국군대일 뿐이다. 아무리 우방의 전화(戰禍)를 돕는다고 와도 우방의 요구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들을 끝까지 믿고 나라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어리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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