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6)활인동 고개-가죽재(2018. 7. 14)
소박한 삶의 소중함 일깨워주는 부귀산
정상에 흔한 표지석 하나 없어…평범한 봉우리
다른 산들보다 높지만 시원한 전망감은 못느껴
‘부귀는 뜬구름’말하는 듯…‘진안의 진산’ 실감

활인동 고개에서 ‘진안의 진산’으로 불리는 부귀산을 오르며 바라본 호남정맥 줄기. 멀리 보이는 산맥과 마을 풍경이 초여름 무더위를 날려보내는 청량감을 준다.
부귀산 정상으로 향하는 이정표에 선 필자.

약 2개월 만에 낙수와 호남정맥 한구간을 같이 종주하기로 연락이 되었다. 6월 초순경 중국 동태항산 트레킹과 장가계 여행을 다녀온 뒤로 정말 오랜만에 산행이다.

6시 반까지 늦잠을 자는 통에 약속시간인 7시를 넘겨서 7시 10분에 무각사 주차장에서 낙수를 픽업하여 진안으로 향했다. 진안읍 바로 뒤에 있는 부귀산(806m)이 오늘의 정맥구간 중 제일 높은 산이다.

8시 40분에 활인동 고개에 다다라 도로 옆 오솔길에 차를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활인동 고개는 4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통에 동물이동 통로를 육교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시작부터 워낙 절개지 경사가 심해서 설치되어 있는 밧줄이 아니면 올라가기 쉽지 않다. 등산로는 우측으로 진안 시내를 굽어보며 북서쪽으로 이어진다. 가히 부귀산이 진안의 진산이라고 부를 만하다. 날씨는 예상온도가 36도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정도인데, 장마 뒤 끝에 청미래 덩굴과 산딸기나무 등이 무성해져서 가끔씩 길을 막는다.

다만 등산로는 450고지에서부터는 비교적 뚜렷하여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두 달을 쉰 탓인지 자꾸 걸음이 느려지고 이마와 온 몸에서는 땀이 그야말로 줄줄 흐른다. 5년 전 진안 안천중학교에 6개월짜리 기간제 교사로 취업이 된 큰 딸 지민이를 데려다 주느라 진안을 여러 차례 들렀었다. 진안에 오면 멀리서도 마이산이 한 눈에 들어와 뭔가 기이한 느낌을 갖게 된다. 용담호로 수몰되는 바람에 학교를 옮긴 진안 안천중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가 한 곳에 있는 조그만 시골학교다.

큰 딸은 이곳에서 자연에서 나고 자란 순박한 시골 제자들과 즐거운 6개월의 시간을 가졌고, 지금도 그 시절이 선생님 대접을 제대로 받은 행복한 때로 기억한다. 안천중은 내가 존경하는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모교이기도 하다. 대학 때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란 한승헌 변호사님의 칼럼집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승헌 선생님이 DJ 정부 때 감사원장이 되고 나서 TV에 나와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나를 기소한 검사가 선견지명이 있었어요. 그때 공소장 모두(冒頭)사실에 ‘위 자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한 자리를 하려는 생각으로 김대중을 추종하는 자로’라고 썼는데, 딱 들어맞았잖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배꼽 빠지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는 삶이 항상 인상을 쓰고 큰 소리로 외치는 민주투사보다 인간적이지 아니한가.

낙수는 한남정맥을 강심규 회장 산악회와 같이 다니고 있다는데, 내가 따라가기에는 걸음이 너무 빠르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영산기맥, 한강기맥, 고흥지맥 등에서 발을 맞추어 걸었었는데, 내가 녹슬어도 너무 녹슬었나 보다.

1시간여를 오르다 보니 왼쪽이 부귀산으로 가는 산림도로가 잘 닦여져 있다. 정맥을 지나는 등산로도 비교적 뚜렷해 길을 잃을 염려도 전혀 없다. 다만 높이가 낮아서인지 백두대간 길과는 다르게 폭염이 산위까지 올라온다. 그늘로만 걷는데도 땀이 몸 안으로 실개천이 되 어 흐른다. 가져온 물이 부족해 양파즙을 몇 개 꺼내 마셨으나 그래도 계속해서 갈증이 난다.

11시 10분쯤 오늘의 주봉인 부귀산(806.4m) 정상에 다다랐다. 부귀산은 흔한 정상석 하나 없는 흙으로 된 평범한 봉우리다. 근처의 다른 봉우리에 비하면 꽤 높은데도 전망도 시원하지 않다.

인간이 누구나 추구하는 부귀는 사실 뜬구름 같은 것이라는 것을 부귀산이 알려주기 위해 평범한 모습을 띄고 있는 것 같다. 누구 눈에도 띄지 않는 소박한 삶이 화려한 재벌의 삶보다 값지다는 것을 부귀산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제일 미워하는 사람에게 큰 재물을 준다는 말이 있다. 평생 재물의 노예가 되어 진짜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돈을 더 벌 궁리로 인생을 허비하다가 쓸쓸히 죽어가게끔 말이다. 얼마 전에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하나님에게 미움 받아도 좋으니 제발 돈 좀 있어 봤으면 좋겠다”고 반박한다. 하긴 너무 돈이 없으면 인생이 비루해진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던 한 사나이의 독백에 가슴이 아려온다.

점심은 12시 넘어서 먹기로 하고 우무실재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한다. 10여분을 꽤나 가파른 길로 하산하고 나니 다시 610봉우리가 나타나고 이어서 650봉이 나타난다.

620봉을 지났으나 지도에 보이는 헬기장은 보이지 아니한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편편한 등산로에 퍼질러 앉아 점심을 먹었다. 낙수는 아예 도시락도 안 싸 오고 빵 몇 개로 요기를 한다. 나는 마지막 남은 식수를 도시락에 부어 말아 먹었다. 입이 깔깔하여 도저히 그냥은 밥을 넘기기가 버거워서다. 2시쯤 가정고개를 넘고 480봉에서 택시회사에 전화를 했다. 오룡고개까지 약 1㎞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30분 후에 오룡고개로 택시를 오라고 했는데, 묘하게 계속 작은 봉우리가 이어진다. 예상시각보다 10분은 늦게 오룡고개에 다다랐다.

여기에서는 철책 옆을 통과하여 내려간 다음 약간 오르막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고개로 통하는 등산로가 나온다.

오룡고개는 4차선 도로가 생겨서 고갯길이 아니라 간선도로의 모습을 띄고 있다. 현지의 지명도 오룡고개가 아니고 가죽재다. 다행히 택시기사가 옛 지명을 알고 하산로로 와 주어서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활인동치에 세워놓은 내 차를 타고 택시를 따라 진안읍내의 목욕탕으로 갔다. 택시기사도 자신도 목욕을 해야겠다며 같이 탕으로 들어온다. 냉장고의 식혜를 두 개나 연거푸 마시고 식수를 한 컵 마시고 체중계 위에 올라갔는데 78㎏이 겨우 나간다. 맙소사, 3㎏이 빠지다니. 덥고 땀나는 하루의 피로가 시원한 냉수탕에서 풀린다. /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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