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74>

“안되어요. 소첩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서방님의 지체에서 그런 속된 말이 나오는 것은 온당치 않지요.”

“뭐라고? 이 여자가 건방지군. 서방님 말이 안된다고 거부하는 말이 어디 있어?”

그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정충신이 불같이 화를 냈다. 꼴에 버티는 건가?...

“서방님마저 가버리면 소첩은 이제 살았다 할 것이 없습니다. 나라의 큰 일을 하실 분이 잡생각을 하시면 되나요.”

“그게 잡생각이라고? 무슨 개뼉다구 같은 얘기요? 남자가 이래라 하면 이리 오고, 저래라 하면 저리 오는 것이 아녀자의 덕목 아닌가?”

산통을 깼다 하여 정충신이 더욱 화를 냈다. 소실은 자신이 못생겼다고 괄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품격없이 화를 내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젊은 혈기라고 했지만 이것은 예의가 아니다.

“제가 한 말씀 하겠나이다. 오나라 손권이 맹장 여통(麗統)을 얼굴이 괴이하다고 무시하고 경멸하며 쓰지 않았지요. 그 결과 어땠지요? 전쟁에 나가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지혜와 용맹은 얼굴 생김새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고, 여통은 진중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나이다. 공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그러니 그의 머리에는 온갖 병법의 조화가 만발하였나이다. 사람은 어떤 누구에게도 장점이 한두 개는 있는 것이니, 그 장점을 골라서 쓰는 것이 지휘관의 지휘력입니다.”

“또 아는 척하는군. 못막을 병이여. 나 또한 책을 많이 읽었으니 걱정 놓으시오!”

“나는 서방님의 진중의 부하가 아니라 살림을 하는 내자이오이다. 부하 다루듯 하지 마시오.”소실이 굽힘없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한 성질 하는 모습이다. 성깔이 있다는 투였다. 이런 때일수록 확 때려 잡아야 한다.

“지아비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르시오. 그러지 않으면 내칠 것이오! 당장 나가고 싶소?”

“그러면 또 한마디 하오리다. 유비는 제갈량 같은 인재를 등용하고, 인의를 중시했지요. 하지만 말년에 비참하게 죽고 나라도 친구도 다 잃었습니다.”

소실은 이상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었다. 그녀가 다시 말햇다.

“유비는 관우의 전사를 복수하기 위해 오나라를 공격하지요. 눈앞의 복수에 눈이 멀어서 이릉대전을 몰아붙였고, 결국 참패한 나머지 목숨까지 잃었나이다. 전날에는 오른팔 장비가 부하들에게 살해되지요. 적전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왜 그러는 줄 아세요?”

정충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비유를 가져온 것은 필시 자신을 변호하려는 수작일 것이다.

“장비가 온갖 갑질을 하니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버럭버럭 화를 내고, 부하들을 두둘겨패니 반감이 없을 수 없었나이다. 부하들은 적이 접수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장비를 죽여버립니다. 유비는 오랫동안 장비의 폭력을 방치했고, 그로 인해 소중한 전력을 잃고 비참하게 패했지요.”

“그래서 어쨌단 말이오.”

“우리 궁중이나 낭군님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상감마마가 하시는 일이 심히 걱정되옵니다. 편견과 사사로운 이해로 사물을 보는 것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 중국 하북에는 원소라는 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금수저 출신이고, 거느린 장수나 참모진도 많았지요. 그런데 부하를 옳고 그름이 아니라 싫고 좋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부하는 밟아버리고, 마음에 드는 참모 말은 그르더라도 신임했습니다. 그런데 배척 당한 자들이 반발해 조조에게 투항해버리지요. 아첨꾼 곽도가 “장합이 패전을 기뻐하고 있다”며 모함을 하자 반감을 품었던 장합이 부하를 이끌고 조조에게 붙어버렸어요. 원소는 유능한 부하를 잃은 데다 경쟁자에게 날개까지 달아주었으니 필패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습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고, 유혹의 말은 달콤하지요. 우리 궁중 사정과 다를 바 없고, 서방님도 트집만 잡는 심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심히 걱정이옵니다. 환도하면 궁중에서는 곧 서방님을 불러들일 텐데, 그런 마음으로 온전히 사물을 판단하시겠어요?“

“아니, 나도 환궁할 것이라고?“

별 신통한 여자를 다 보았다 하는데, 그녀가 다시 엉뚱한 말을 했다.

“내일 밤 동남풍이 불 것이오이다. 그때 가도 앞바다에 묶인 배 쇠사슬이 끊기고 공격해올 것이오이다.”

“누가 공격해올 것이라고?”

“산뚱성 니구산의 잔적들이오. 내가 서방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내일의 일에 부정 타지 말라고 해서이옵니다. 너무 괄세하지 마시오.”

소실을 못생겼다고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했던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는 부랴부랴 진지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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