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76>

선조는 밀사를 보내 한양 사정을 정탐하는데, 한 놈은 왜놈이 숭례문 밖에 진을 치고 있다고 보고하고, 다른 놈이 와서는 씨도 안보인다고 보고했다. 다음날은 창의문 앞에 왜의 기라병들이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고 했다가 다음날엔 그런 깃발을 본 적이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러기를 수차 반복되었다. 어느 놈의 말이 맞는지 헷갈렸다. 그에따라 선조의 심중도 오락가락했다. 어떻게든 왜군이 눈앞에서 안보여야 안심하고 환궁할 수 있는데, 그들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불쾌하고, 실제로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 그래서 떠난다고 했다가 거둬들이다 보니 궁중 사람들이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이를 본 이항복이 입을 쩝쩝 다시며 입궁했다. 이러면 왕의 체신머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는 왕이 부적처럼 곁에 끼고 있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도승지-병조판서-형조판서-이조판서, 나중에는 영의정 좌의정을 돌아가며 지내며 왕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왕은 그를 곁에 두면 언제나 안심이 되었다. 그걸 이항복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집무실로 들어서자 왕은 눈을 감고 용좌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명상에 잠긴 줄 알았더니 일정한 간격으로 고르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안전에서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그래도 왕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시 넙죽 엎드려 절한 뒤 눈을 치켜들고 왕의 동태를 살피니 선조가 눈을 뜬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방 절을 두번 하지 않았는가.”

선조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절을 두 번 하는 것은 죽은 사람 제사지낼 때 올리는 예다. 부지부식간에 이항복은 왕을 시체 취급했으니 보는 견해에 따라서는 이런 비례와 불충의 중죄는 없는 것이다. 예법 하나로 역적으로 몰려 목이 달아난 예가 어디 하나둘인가. 당황한 이항복은 서둘러 고했다.

“상감마마, 제가 어찌 상감마마 제를 올리겠나이까. 첫 배(拜는 찾아뵙는다는 인사였삽고, 두 번 째 배는 물러간다는 절이옵니다. 주무시는 상감마마를 깨우실 수 없었나이다.”

“하하하, 역시 백사(이항복 아호)답군. 이러니 내 곁에 두지 않을 수 없지. 근심 중에도 그대가 곁에 있으면 유쾌하단 말이야. 백사는 나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오락기야. 그래 찾은 연유가 무엇인가.”

이항복은 휴-,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말했다.

“정충신이 바닷가에서 첨사 노릇을 하고 있나이다. 봄철 맛좋고 물좋은 생선을 많이 잡는다고 하옵니다. 피란 중에 상감마마께서 드셨던 은어는 비교가 안되는 활어들입니다.”

그는 해물맛으로 왕을 움직일 요량이었다.

“은어라, 묵이라는 생선 말이지? 그것이 맛이 좋아서 은어라고 내가 개명해주었지.”

그러나 환도 후에 다시 먹어보니 맛이 없어서 ‘도루묵’이라고 깎아내렸던 생선이다. 절박한 때 먹는 것과 입이 호사스러울 때 먹는 생선의 맛이 다를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상감마마, 환도 길에 성천 맹산 박천 영변의 산야채와 가산 운산 철산의 해물이 마마의 기력을 회복시켜줄 것이옵니다. 아무리 탕약이 좋다고 한들 생물보다야 낫겠습니까. 봄철이니 산나물과 해산물로 원기를 회복하소서. 정충신이 상감마마 지나실 길을 학수고대하고 있나이다”

“음, 벌써 입맛이 당기는군. 어서 길을 떠나자는 말씀이렸다?”

“네. 떠나시더라도 도성 소식을 접하면서 상황을 보아가며 내려가면 위험할 것이 없사옵니다. 도성이 위태로우면 평양에 유했다가 가셔도 되고, 잘 평정이 되었다면 빨리 한궁하셔도 되는 것이옵니다.”

역시 백사답다고 여기고 고개를 크게 끄덕인 선조가 도승지를 불렀다.

“내일은 떠나겠다. 모두 준비하렸다.”

이 소식을 군기병이 한달음에 선사포 진으로 달려와 정충신에게 알렸다. 정충신은 이항복이 왕을 입성으로 환도길을 열었다고 여기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길로 그는 각 해안 마을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나 민심을 흉흉했다.

이이(李珥)가 황해감사였을 때 백성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진상품 가운데 늙은 노루와 큰 노루를 가리지 말 것이며, 맛없는 사슴 꼬리와 사슴 혓바닥은 빼고, 또 생물은 아침에 준비하여 저녁에 바치면 색깔과 맛이 변하므로 건물(乾物)로 바꾸어 진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지방 서리들이 생선·생복(生鰒)·건물·모피·약초 등은 크다 작다, 신선하다 묵었다 하여 마음대로 조종하고 간사한 짓을 행하는 비리가 커서 백성들은 질려버린 상황이었다. 백성들이 한숨을 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충신이 병사들을 소집해 명령했다.

“가산과 가도에서 약탈한 해적들의 말린 생선을 모두 거두어들일 것이다. 대신 절대로 민가를 괴롭히지 말라.”

그는 최근에 터득한 일전쌍조(一箭雙?) 전략을 구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꿰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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