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잔다르크’ 김마리아 집안은
황해도 소래마을서 기독교로 개화 민족의식 투철
숙부·언니·형부·고모·고모부도 독립운동가
 

김필례와 최영욱 부부. 김필례는 김마리의 막내 고모다./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12명의 독립운동가를 발표했다. 이번에 선정된 인물은 국민이 참여한 온라인 인지도 조사결과, 포상 훈격, 월별 특성(탄신, 순국, 의거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정한 것이다. 1월은 유관순 열사(건국훈장 독립장/대한민국장)이며 2월은 김마리아 선생(건국훈장 독립장)이다. 가정의 달 5월은 김순애(건국훈장 독립장)·김규식(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부부이다. 김순애·김규식 부부는 2월의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고모와 고모부 관계라는 점에서 가족사에 이목이 집중됐다.

김마리아는 1891년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일찍이 기독교로 개화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김마리아가 자란 소래마을은 한국에서 기독교가 처음 뿌리내린 곳이다. 그가 1896년부터 다녔다는 소래학교도 아버지 김윤방이 세운 기독교 학교였다. 김마리아 집안은 민족의식이 투철한 독립운동가 집안이었다. 김마리아는 1905년에 서울로 올라와 기거한 삼촌 김윤오의 집과 김윤오가 운영하던 김형제상회는 항일운동의 연락거점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또 다른 삼촌 세브란스 의전 출신의 의사 김필순(건국훈장 애족장)은 도산 안창호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김규식·노백린·이동휘·유동렬 등 애국지사들과 교유한 항일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4명의 고모 중 김구례는 신한청년당의 당수를 맡았던 독립운동가 서병호(건국훈장 애국장)와 부부 사이다. 나중에 임정의 부주석을 맡게 되는 김규식 박사와 부부 사이였던 김순애는 신한청년당 이사와 3·1혁명 직후 상해에서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였다. 민족협동전선 신간회의 자매단체였던 근우회 등에서 활약한 김필례(국민훈장 모란장)도 김마리아의 막내 고모였다. 김마리아의 형부인 남궁혁도 재판 기록이 있기 때문에 서훈이 가능하다.

김마리아 집안은 한국의 독립운동 명문가 중에 명문가라 할 수 있다. 황해도 출신인 이들은 1919년 광주 3·1운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한다./김재기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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