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재심개시 결정…“군·경이 무차별 체포·감금”

사형 집행 71년 만에…‘여순사건’ 희생자 첫 재심 확정
대법, 재심개시 결정…“군·경이 무차별 체포·감금”
1948년 내란혐의 체포돼 범죄 증명 없이 곧바로 사형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해 재심재판 개시가 처음으로 확정됐다.

당시 반란군에 점령됐던 전남 여수와 순천 지역을 탈환한 국군이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수백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불법 체포한 후 구체적인 범죄 증명도 없이 유죄 판결을 내린 후 곧바로 사형 집행을 한 것에 대해 다시 재판이 열리는 것이다. 71년 만에 진실규명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고(故) 장모씨와 이모씨 등 3명의 재심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해 반란가담·협조 혐의로 체포돼 감금됐다가 내란죄, 국권문란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 발부없이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순천 시민인 장씨 등은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 국권문란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사형당했다.

이들은 어떤 절차로 수사를 받았고 재판 과정에 입증된 증거는 무엇이었는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심지어 법원도 판결문을 남겨놓지 않아 무슨 이유로 사형을 선고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2월까지 순천지역에서 민간인 438명이 군과 경찰에 자의적이고 무리하게 연행돼 살해당했다며 이들을 민간인 희생자로 확인했다. 이후 장씨와 이씨 등의 유족들은 군과 경찰이 고인을 불법 체포·감금한 뒤 사형을 선고했다며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1심인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당시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순천탈환 후 불과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곧바로 집행된 점 등에 비춰보면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검찰이 곧바로 “과거사위 결정은 포괄적인 불법 체포·감금이 있었다는 취지에 불과해, 구체적으로 이들에 대해 불법 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당시 판결서도 없고 유족의 주장과 역사적 정황만으로 불법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항고했다.

하지만 2심인 광주고법도 “판결문에 내란 및 국권문란죄라고만 기재됐을 뿐, 구체적인 범죄사실 내용과 증거 요지가 없다”면서 “영장 발부를 추단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춰 이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사전·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됐다”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도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감금됐다”며 재심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장씨 등에 대한 재심 재판은 조만간 재판부가 정해지는 대로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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