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중 변호사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개천의 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에 종영된 ‘SKY 캐슬’이란 드라마는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많은 공감과 관심을 끌었다. 전문직 직업을 가진 부모가 자녀에게 직업을 대물림하기 위해 특목고와 서울대로 가는 교육의 사다리에 매달리는 과정에서, 가정 자체가 위태롭게 되는 일상이 그려져 있다. 드라마는 우리의 현실이 명문대 진학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일정 부분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옳은 길이 아님을 알고도 자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눈 감고 마는 입시생 부모들의 현실을 반영하여 연출했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명문대학, 유망직업에 안착하기 위한 경쟁에 매달려왔다. 계층이동의 가장 유력한 사다리는 명문대 진학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자녀가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부모의 경제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어머니의 정보력이란다. 공교육으로는 부족하고 사교육을 받기 위한 경제적 지원이 명문대 진학의 필수요건임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사교육이 대학입시를 좌우하는 시스템에서는 개천의 용들은 낄 자리가 없다.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 본인에게는 적절한 자기계발과 성장을 위한 탐색 시간의 상실이며, 부모에게는 노후준비가 소홀해지는 동시에 노년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2017년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한 해의 사교육비는 18조 6천223억 원이며, 초·중고생의 사교육 1인당 지출비는 27만 1천원, 평균 참여율은 70.5%란다. 이해가 쉽도록 비교하자면 555미터로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잠실 롯데월드 타워의 공사비가 3조 8천억 원 들었으니까 이런 세계적인 빌딩을 매년 5개씩 짓고도 남는 액수다.

교육을 신분상승의 도구로 보고 단순히 기회배분의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지금의 왜곡된 교육현실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 대학입시가 고난도 문제 풀기에 적합한 인재의 선발과정이라면 교육은 부모의 계층을 대물림하는 통로가 될 뿐이다.

유럽의 경우 대학졸업 여부와 상관없이 임금이나 사회복지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독일이나 네델란드, 핀란드의 대학진학률은 30-40%에 불과한데, 우리의 경우 70%에 육박해 대조적이다. 학문연구를 위해 대학에 갈 필요가 있는 사람 이외에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내고 그 직업에 어울리는 직업교육을 위한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교육이 필요한 것이지, 온 국민이 4년제 대학 진학에 몰입하는 것이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등록금은 OECD 국가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높다. 2017년 기준 평균 대학등록금은 1인당 연간 671만원, 4년이면 2천700만원이다. 2006년에 54만 명이 1조 7천억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2015년에는 92만 명이 3조 2천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 연체자는 같은 기간 1만 8천명에서 9만 명으로 다섯 배 증가했다. 청년기부터 빚을 지기 시작하면 결혼과 출산도 포기하는 ‘N포세대’가 되어 미래를 잃어버리게 된다.

일본도 우리처럼 치열한 대입경쟁, 과열된 사교육 시장, 주입식 수업과 객관식 시험의 전통이 있었다. 교육과정이 대학입시에 치우쳐 있어서 아무리 개혁을 시도하려고 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초중고와 대학입시에 걸쳐 전반적인 개혁을 단행할 예정인데, 그 핵심에 200개 공립학교에 국제학력평가(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를 도입하고 2020년에 수능을 폐지하겠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재, 즉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기존의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는 공교육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IB는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 세워진 비영리 교육재단인 IBO에서 만든 교육과정이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대학입시인 내신과 수능이 수험생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IB는 지식과 사고과정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본다. 교사의 자율성과 학생 참여도가 높은 수업이 진행될수록 사교육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미래인재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으면서도, 공부 외적인 소양을 늘리며 “나의 견해”를 더해갈 수 있는 방식인데, 전 과목 시험이 서술 및 논술형으로 치뤄지고 있는 것도 이를 중점으로 두기 때문이다. 공부는 무조건적인 암기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탄탄하게 꾸려나가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2018년 기준, IB교육과정을 채택한 곳은 모두 153개국, 5천060개교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개천의 용’은 아주 특별한 재능이나 비상한 두뇌를 가진 일부 영재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교육이 아이들 각각의 관심과 재능을 세밀하게 살피고 그들의 특기와 장점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간다면 그동안 지나쳐버린 수많은 우리 아이들이 바로 ‘개천의 용’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공교육에서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고력, 협동심을 키워줄 수 있도록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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