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채 남도일보 동부본부 취재국장의 ‘순천만에서’

4·3평화공원에서 생각해 본 제주4·3과 여순사건
 

윤종채 국장

지난달 30일 1박2일 일정으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도기자협회가 주관한 전국 언론인 초청 제주4·3평화기행에 다녀왔다. 지난해 3월 (사)민생평화광장 회원들과 함께 2박3일 동안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의 4·3길 평화기행에 참가한데 이어 1년만에 다시 4·3평화공원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 등 4·3유적지를 둘러봤다. 그러면서 한국 현대사의 큰 줄기에서 일란성 쌍생아와 같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제주4·3과 여순사건을 생각해 봤다.

제주4·3은 1948년 4월 3일 소요사태로부터 시작됐다.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2만5천~3만 명의 양민이 희생됐다. 남로당 제주도당이 군경과 서북청년단 등의 폭압에 반발해 경찰서 등을 습격하면서 시작됐다.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군대를 증파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민간인을 집단 살상하고 중산간 마을의 95%이상을 불태웠다. 이승만 정부는 6·25전쟁 때까지 남아 있던 무장대를 진압했다.

제주4·3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발생했다. 여수 주둔 14연대가 ‘동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제주4·3 진압명령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정부수립 두 달도 안된 이승만정권은 함정까지 동원한 육·해·공군 입체작전으로 9일만에 진압했다. 일부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됐다. 이승만정권은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여수·순천·보성 등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피바람을 몰고 왔다. 부역자 색출 명목으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4·3의 진상 조사는 1960년 5월 23일 국회가 ‘양민학살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제주도를 방문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1961년 5·16쿠데타에 의해 활동이 중지됐다. 그러다가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거세지며 1989년 41주기 4·3추모제가 처음 공개적으로 열렸고, 제주4·3연구소가 창립됐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2000년 1월 제주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서명했다. 보수진영의 끝없는 공격을 겪으면서도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해 국가원수로서 최초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기 위한 기념사업도 이어졌다.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을 비롯해 유해발굴, 유적지 복원, 위령제 등도 진행됐다. 2014년 박근혜정부는 4월 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0주년 제주4·3 추념식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올해 71주년 추념식에서는 국방부와 경찰이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표명했다.

여순사건은 1995년 ‘여순10·19사건’이란 중립적 명칭을 얻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여순사건 민간인희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는 주민 890명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했다며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도록 국가에 권고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밝히지 못했다.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지도 않았고 대통령의 공식사과도 없었다. 게다가 보수진영에서는 아직도 ‘남한적화기도 무장반란폭동’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일부 보수단체는 수차례 소송을 제기하고 이념공세를 퍼붓고 있다.

지난 달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장모씨 등 3명에 대한 재심 결정 재항고심에서 재심 개시를 선고한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71년 만의 진실규명을 위한 길이 열린 것이다

이제 국가폭력과 역사왜곡을 바로잡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여순사건특별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 여순사건특별법은 지난 2000년도 16대 국회때부터 5차례 국회에 발의됐지만 자동폐기와 계류를 반복해 모두 무산됐다. 국회는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에 적극 나서 4·3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실질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4·3특별법을 개정하고, 여순사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여순사건특별법을 제정해 올바른 대한민국 역사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국가폭력에 의해 부당하고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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