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멀어서 광주 못오겠다’는 한전배구단
‘장거리 이동’ 없는 수원서 11시즌 동안 4차례나 꼴찌

V리그서 3위 두 차례가 최고…약체 이미지 벗지 못해
2018-2019 시즌땐 16연패…선수단 운영 문제 등 지적
성남→김천 ‘역주행’ 선택 우승한 도로공사와 비교돼

연고지 이동거리와 경기력 향상 ‘비례하지 않음’ 증명
광주 이전 거부는 배구단·선수 ‘이기주의’ 기인 해석

광주시체육회와 광주시장애인체육회, 광주시배구협회는 지난 7일 오후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를 방문해 한전배구단의 수원 잔류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했다./광주시체육회 제공

남자프로배구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한전배구단)은 지난 5일 ▲경기력 영향 ▲선수들의 탄원 ▲훈련환경 ▲전국 배구팬들의 여론동향을 들어 연고지 계약을 경기도 수원시와 다시 체결했다. 광주 지역사회가 총력을 기울여 연고지 유치에 나섰지만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 수원 잔류가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전배구단이 수원 잔류 명분으로 가장 크게 내세운 건 경기력 영향이다.

현재 남자프로배구 7개팀이 수도권(5개)과 중부권(2개팀)에 밀집된 상황에서 남부권인 광주로 연고지를 옮길 경우 장거리 이동에 따른 경기력 유지가 힘들다는 점이다. 한전배구단은 광주시측에 기회 있을때마다 신장 2m 안팎의 장신 선수들이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반복할 경우 부상 위험이 있는데다, 컨디션 유지도 어려워 장거리 이동은 선수단 운영에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강조했다. 최상의 경기력으로 최고의 성적을 노려야 하는 프로팀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는 명분이다. 그렇다면, 한전배구단이 장거리 이동 부담이 없었던 과거 수원 연고지 시절 성적은 어땠을까,

◆배구팬들 ‘승점 셔틀’ 평가도
‘광주는 너무 멀어서 경기력 유지가 힘들다’는 논리로 보면, 최상의 경기력과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어야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한전배구단이 준프로로 전환해 V-리그에 참가한 2008-2009시즌부터 2018-2019시즌까지 11시즌동안 한전은 단 한차례도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4-2015시즌과 2016-2017시즌 두차례 오른 3위가 최고였다. 2011-2012시즌 때 4위가 두번째로 좋았다.

11시즌 중 3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8시즌은 모두 하위권이었다. 이 가운데 4시즌은 최하위였다. 프로팀으로서 채비가 갖춰지지 않은 채 참가한 V리그 참가 초반은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정식 프로팀이었던 2013-2014시즌과 2018-2019시즌에도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2018-2019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문제로 개막 16연패를 당하더니 결국 시즌 전체 36경기 중 단 4승만 챙긴 게 전부였다. 배구팬 사이에서 ‘승점 셔틀’ 평가가 나올 만큼 오랫동안 약체 이미지였다.

이는 ‘장거리 이동’ 부담이 없는 연고지에서 한전배구단 스스로 받아든 성적표다. 그동안의 한전배구단 성적을 놓고는 지난 시즌의 외국인 선수 문제와 보상 선수로 영입한 세터 노재욱 영입 후 몇 경기 안하고 트레이드로 내보내는 것에서 보듯 매끄럽지 못한 선수단 운영과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게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한전배구단 ‘장거리 이동’ 불가는 남자프로배구 KB손해보험과 여자프로배구 한국도로공사와 비교되고 있다.

◆KB배구단 수도권 이전 효과 ‘글쎄’
KB배구단은 전신인 LIG손해보험 때부터 경북 구미시와 맺어온 협약이 2017년 4월 만료됨에 2017-2018시즌을 앞두고 ‘명문구단 도약을 위한 경기력 향상 방안’중 하나로 경기도 의정부시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당시 KB배구단이 내세운 대표적인 명분은 “7개 구단 중 가장 멀었던 이동거리를 해결하게 되어 경기력 향상을 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이었다.

KB배구단은 구미 연고지 시절 2시즌 연속 7개팀 중 6위를 차지했던 KB배구단은 연고지를 옮긴 직후 시즌에서 4위로 올라서 장거리 이동 부담 해소 효과를 본 듯 했다. 하지만 1년 뒤인 2018-2019시즌에서 다시 6위로 돌아와 연고지 이전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장거리 이동이 경기력 향상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일정부분 보여준 결과였다.

◆‘역주행’ 도로공사는 우승 입맞춤

한국도로공사 배구단은 장거리 이동과 경기력 향상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더욱 크게 증명했다. 도로공사는 본사인 한국도로동사가 경북 김천으로 이전하자 2015-2016시즌을 앞두고 경기 성남시에 두고 있던 연고지를 김천으로 옮겼다. 한전배구단 기준에서 보면 ‘역주행’ 한 것이다. 그런데 연고지 이전 후 3시즌째인 2017-2018시즌에 마침내 국내 프로배구 ‘왕중왕’ 등극했다. 이전 시즌까지 여자 6개팀 중 유일하게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던 도로공사가 ‘장거리 이동’ 연고지인 김천으로 옮겼음에도 첫 우승컵에 입맞춤한 것이다. 도로공사는 이듬해인 2018-2019시즌에도 명승부를 펼치면서 챔프전까지 올라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여자배구 강자로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한전배구단과는 정반대 행보를 한 도로공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구단의 전폭적인 투자로 우수 선수를 영입하고, 배구단 운영을 선진 시스템화한 게 주요 배경이었다. 연고지 팬들은 뜨거운 응원 열기도 큰 영향을 끼쳤다.

KB배구단과 도로공사배구단 예가 말해주듯 연고지 이동거리는 경기력 향상에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에 한전배구단이 ‘장거리 이동’을 들어 수원 잔류를 결정한 건 선수들이나 직원들이 지방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이기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한전배구단은 선수들이 광주로 연고지 이전을 반대하고 있고, 광주로 갈 경우 우수 선수 영입도 어렵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선수들 역시 이 이용섭 광주시장과의 면담에서 가족까지 이사해야 하는 불편함을 피력한 바 있다.

한전배구단과 선수들 논리대로라면 광주와 부산 등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프로배구 연고지를 꿈꿔서는 안된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