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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특별기획>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1) 임시정부의 전라도 사람들

기사승인 2019.04.10  19: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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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2부-대한민국임시정부와 전라도인 디아스포라
(1) 임시정부의 전라도사람들
(2)임시정부 의정원의 전라도 사람들
(3)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독립군들
(4)임시정부의 ‘비밀금고’ 전라도
(5)백범 김구와 전라도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전라도출신들 의정원 주축

3·1만세 운동 참여후 탄압 피해 상해 임정 참여 인물들 많아
함평 출신 김철 재정적 후원으로 상해 임정 수립 결정적 역할

초기엔 구국계몽운동 출신 주류 형성…신한청년당 등 연결고리
김철-최혜순, 김재호-신정완은 부부가 ‘전라도 의원’ 활동

1919년 3·1운동은 남녀노소,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한반도는 물론 한인들이 있는 해외에까지 파급된 위대한 한민족의 혁명운동이었다. 이때 선포된 3·1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항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됐다.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는 임시헌법을 제정해 국호는 대한민국, 정치체제는 민주공화국으로 하는 대통령제와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리제도를 확립했다. 대한제국의 영토를 계승하고 초대 임시 대통령은 이승만이 임명됐고, 이후 김구가 주석을 맡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한국 광복군 조직등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지원 했다.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 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임시의정원의 전라도 의원들

1919년 4월 10일 저녁 7시 중국 상해 프랑스조계 김신부로에 위치한 양옥집에서 29명의 의원이 참여한 가운데 제1회 임시의정원회의가 열렸다.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김철, 장병준, 한남수등이 전라도의원으로 당선됐다. 이외에 최혜순, 신정완, 나용균, 정광호, 박계천, 박진, 송식, 문덕홍 ,김재호, 안봉순 등의 전라도 의원들이 임시의정원 구성원으로 활약했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들./국가기록원
함평 임시정부 청사 전시관 내부
함평에 복원된 상해임시정부 역사관

◇김철(金澈) (함평, 1886~1934)

임시정부의 전라도출신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 일강(一江) 김철 선생이다. 그는 재정적인 후원을 통해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그는 신학문을 배워야 극일 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1908년 영광에 있는 광흥중학교에서 중학과정을 이수했다. 이 1912년 서울에서 경성법률전수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장병준(張柄俊)(무안, 1893~1972)

장병준은 1919년 3월 18일 전남 무안에서 고종황제의 안장식을 거행한다며 집합한 주민들 수천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선도했다. 그 뒤 상해로 망명하여 1927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원으로 선임, 독립운동의 통일전선을 위해 힘썼다. 1920년초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귀국하여 서울에서 이동욱 등과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벌이려고 계획하다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나용균(羅容均)(전북 정읍, 1895∼1984)

나용균은 전북 정읍 사람으로 일본 도쿄 유학중 1919년 2·8독립선언에 참여했다.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 그 해 4월경 상해로 망명했다. 상해임시정부 임시 의정원의원에 선임되었고 법제의원과 정부조사 특별위원 및 정치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

◇정광호(鄭光好)(광주, 1895~미상)

1919년 3월 광주 독립만세시위 거사후 일경의 미행감시체포의 위기로부터 벗어나 인천에서 밀선을 타고 신의주를 경유하여 중국 청도에 며칠간 체류한 뒤 배편으로 상해에 도착,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임정 수뇌부인 이동녕, 김구의 영접을 받았다. 해방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 되었으며 6·25당시 납북됐다.

◇최혜순(崔惠淳)(광주, 1900~1976)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여성의원이 처음으로 뽑힌 것은 1922년 2월 8일 제 10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였다. 김마리아(황해도) 선생을 포함해 양한나,최혜순,방순희,김효숙,지경희,신정완등 7명의 여성의원이 활동했다. 1931년 11월 제23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전라도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전남 도립병원 간호사 출신인 최혜순은 임정 국무위원이던 김철선생과 결혼해 상해에서 부부 독립운동가로 활동 했다.

◇신정완(申貞婉)(나주, 1916~2001)

신정완은 1943년 10월 전라도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독립운동가이자 광복이후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낸 해공(海公)신익희 선생의 딸로 3·1운동이후 상해로 망명해 조선민족혁명당원으로도 활동했다. 광복후 서울에서 한성화교학교, 숙명여고 등에서 중국어를 가르쳤다.

◇김재호(金在浩)(나주, 1914~1976)

1919년 3·1운동때 향리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다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어 중국으로 망명했다. 1941년 5월에는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제1지대 제1전구 사령부의 대원으로 활동하다 김구의 소명으로 중경임시정부 선전부의 선전위원이 됐다. 1942년 10월에는 임시의정원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광복시까지 의정활동에 참여했다. 앞서 언급된 신정완이 부인이다.

◇안봉순(安奉舜)(순천, 1894~1947)

안봉순은 1942년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에서 군사훈련 교육을 마치고 서안에서 중경으로 소환되어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근무했다. 1943년 6월에는 임정 내무부 총무과원에 임명됐다. 같은해 10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라도 의원으로 피선되어 각종 안건을 심의, 의결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송식(宋植) (화순, 1900~1947)

송식은 1925년 9월 중국 무창에서 무한한인청년회 결성에 참여했다. 1941년 10월 임시의정원 전라도 의원에 선출되어 해방당시까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42년 2월 민족혁명당원으로 조선의용대 통신처 계림지역 주임으로 활동했으며, 중국중앙군사학교 무한분교를 졸업했다.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에서도 근무했다.

◇윤덕홍(尹德洪) (제주도, 1902~1949)

윤덕홍은 일본 선원으로 근무하다가 상해에서 탈출하여 1941년 초에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1942년 10월에는 임시정부 경비대원에 임명되어 1945년 1월까지 활동했다. 1943년 10월 2일에는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의원으로 피선되었으며, 한독당에 입당한 뒤 1944년에는 임시정부 재무부 총무과원으로 근무하다 6월 서무국원을 겸직했다.

◇박진(朴震) (장흥, 1897~1968)

박진은 1919년 5월경부터 중국 상해에 거주하면서 재 상해 청년단에 가입 활동했다. 1922년 8월에는 국민대표회 소집을 요구하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1924년에는 상해 한인청년동맹과 한인유학생회에서 활동했고 1923년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원을 역임했다.

◇박계천(朴桂千) (신안, 1885~1960)

박계천은 1923년 4월부터 1926년경까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5년 1월 중국의 프랑스조계 의경대 제3조에서 활동했다.

이외에도 3·1운동 시위에 참여하여 기소된 광주출신 한남수는 4월 8일 상해에 도착해 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그는 제5회 회의에서 해임되고 나용균이 당선됐다. 제8회 임시의정원회의(1921,3,18)때 김인전은 1910년경 독립운동을 위해 한국에서 만주로 이동했으며,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상해로 거처를 옮겼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기에 참여한 임시의정원 의원들은 구국계몽운동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신민회와 동제사 또한 신한청년당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이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일찍이 이순신장군께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라고 했듯이 호남은 의병들이 스스로 일어나 왜적을 물리쳤으며, 나라의 곳간으로 백성을 먹여 살리는 기본 토대의 땅이었다. 3·1운동 이후 상해임시정부 활동에 김철 선생을 중심으로 전라도인들의 활약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박찬용 광주통일교육센터 사무국장·정치학 박사

박찬용.

박찬용 박사는 광주지역 대표 통일강사로서 광주경찰청 의경 교육센터, 일반 관공서등을 중심으로 한반도 통일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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