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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13) ‘구절재-개운치’ 구간

기사승인 2019.04.18  18: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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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13)‘구절재-개운치’ 구간(2019. 2. 16.)
멀리서 보면 까칠하고 가까이 가보면 인자한 노적봉
눈물많고 다정다감한 호남사람 꼭 빼닮은 봉우리
구절재 향하는 등산로 완만하고 편안한 길 이어져
소장봉 정상 잡목만 무성…팻말 아니면 무명봉 착각
정맥 길 곳곳에 산소…조상들 풍수지리 신봉 실감

노적봉을 지나 굴재를 향하는 호남정맥 길에서 바라본 고당산 능선.
소장봉 정상. 팻말이 없으면 무명 봉우리로 착각할 만큼 밋밋한 봉우리다.
구절재 향하는 길에 쌓인 잔설.
노적봉에서 굴재를 향하다 만난 호남정맥 능선.

봄을 재촉하는 잔설이 흩날리는 가운데 산행을 말리는 아내의 잔소리를 귓가로 흘려 넘기고 9시 40분쯤 구절재에 닿았다. 호남고속도로 태인IC로 들어가 정읍시 칠보면에 있는 칠보수력발전소를 왼쪽에 끼고 임실로 통하는 고갯길을 오르면 정상이 구절재다.
칠보수력발전소는 섬진강댐 물을 터널을 뚫어 호남정맥 반대편 급경사로 흘려보내 만든 유역변경식 발전소다. 지난 번 구절재로 내려올 때 칠보면 시가지의 불빛이 번화하여 정읍시로 착각했는데, 오는 길에 보니 면소재지에 칠보고등학교까지 있으니 면치고는 큰 곳이다.

구절재에서 맞은편에 보이는 340봉에 이르는 초입이 잘 보이지 않아 무턱대고 산허리를 가로질러 10여분쯤 오르니 정맥 길이 나타난다. 설 전에 이곳에 왔다가 눈이 15cm쯤 쌓여 있어 산행을 포기했었는데, 그 뒤에 내린 큰 비로 눈은 다 녹고 없다.
다만 산행 후 1시간쯤 지나니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는데 아직은 봄이 먼 모양이다. 정맥 길은 윗 허궁실과 아래 허궁실 마을을 왼쪽에 굽어보며 북서쪽으로 진행하다가 320고지에 이르러 남쪽으로 U자형으로 방향을 바꾼다.
지금까지의 어떤 구간보다도 완만하고 편안한 길이 이어지는데, 베트남 하노이를 며칠간 다녀오느라 등산에서 멀어진 나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11시쯤 368봉에 이르니 어김없이 ‘준·희’가 ‘호남정맥 366.7m‘라고 하얀 팻말을 붙여 놓았다. 최근에 산행에서 만난 인천조은산악회 리본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리본들이 나를 반긴다. 368봉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큰 송전탑과 안테나가 보이는데 그곳이 소장봉이다.
오늘은 등산 초입부터 50,000분의 1 지도를 잃어버려 트랭글과 오룩스 호남정맥 앱을 동시에 켜고 가끔씩 위치를 확인하며 걷는데, 답답하기는 하나 도리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11시 3분경 소장봉에 도착했는데 막상 정상에는 잡목만 무성하고 준·희가 ‘호남정맥·소장봉 423.9m’라고 붙여놓은 팻말이 아니면 무명봉우리로 착각할 만하다. 소장봉에서 정맥 길은 맞은편의 사자산을 사이에 두고 사적골재로 급하게 내리 꽂힌다.
사적골재에 이르니 오른쪽에 멋지게 기와를 올린 별장이 나온다. 지프차가 1대 주차되어 있는 걸 보니 집주인이 와 있는 모양이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의 영향인지 옛날 같으면 정말 후미진 벽촌인데도 그럴싸한 별장들이 많이들 들어서 있다. 사적골재에는 ‘석탄사’를 알리는 안내비석이 서 있는데, 시간상 절구경은 생략하고 바로 516m로 지도에 표기된 사자산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는 시멘트 포장된 임도가 사자산 정상 근처까지 이어져서 별로 힘이 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정맥 길을 고집하며 낑낑대고 오르는데 지프차 한 대가 임도 길로 부릉거리며 지나간다. 10년 전쯤 기백산악회 따라 갔다가 호남정맥 유둔재 구간에서 혼자 종주하는 산꾼을 보았는데, 딱 10년 만에 내가 호남정맥을 단독 종주하고 있다.
12시 20분쯤 사자산에 도착하였는데, 이곳도 그만그만한 봉우리들이 연이어서 이어지므로 트랭글에서 울리는 뱃지 획득 축하 음향이 아니면 사자봉인지 모를 지경이다. 사자봉에서는 건너편에 첨탑처럼 뾰족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이곳이 노적봉(553m)이다. 노적봉은 영산기맥의 종착점인 유달산 노적봉이 유명한데, 벼농사를 지어 온 민족답게 군데군데에 노적봉이 있다. 옛말에 ‘노적 태우고 이삭줍기 한다’는 말이 있는데, 대실 후 소탐을 비웃는 말인 듯 하나 실제 인생에서는 이삭이라도 주워서 연명해야 할 때가 많다.
노적봉을 0.8km 앞두고 고갯마루에서 반가운 이정표를 만났다. ‘현 위치 순창군 호남정맥 시작점, 표고 488m’라고 쓰여진 노란색 팻말인데 순창군에서 세운 이정표다. 지금까지 호남정맥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난 셈이다. 위 팻말에 따르면 2.92km 앞에 국사봉이 있는데, 이는 오늘의 주산인 고당산 정상이 국사봉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제대로 된 표지판을 처음 만나니 저절로 힘이 나서 한달음에 노적봉에 올랐다. 시간은 1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노적봉은 사자산에서 볼 때는 뾰족한 첨봉이었는데, 막상 오르니 밋밋한 봉우리이다. 멀리서 보면 까칠한 것 같으나 가까이 가보면 눈물과 인정이 많고 인자한 호남사람을 꼭 빼닮은 봉우리가 노적봉이다.
예부터 인걸지령(人傑之靈)이라고 하여, 사람은 산수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다고 한다. 결국 호남정맥은 우리 모두의 영혼의 고향인 셈이다.
노적봉을 지나 다시 정맥 길은 굴재를 향하여 내려 꽂힌다. 굴재에 이르니 오른쪽에 멋진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아래쪽에는 큰 농산물 창고가 보이는데 한참 작업 중이라서 기계음에 귀가 따갑다.
여기서 올려다 보이는 능선이 오늘 산행의 주봉인 고당산 능선이다. 굴재에서 고당산에 이르는 등산로는 임도가 잘 닦여져 있다. 임도가 완만한 경사로로 되어 있어 30여분을 꾸준히 오르니 어느덧 고당산이 보이는 안부에 닿는다.
여기에서 고당산에 오르는 길에는 산죽이 길가에 늘어서 있고, 방금 내린 흰 눈을 산죽이 힘겹게 이고 있다. 20여분을 더 오르니 트랭글이 찌르르 울리며 “등산 계주 획득을 축하합니다”라는 멘트를 보낸다.
14시 59분경 고당산 국사봉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큰 무덤 하나와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유독 호남정맥 길에는 정맥 위에 산소를 많이도 써 놓았다. 100년 전에 한국인이 모두 믿던 신앙이 풍수지리란 말이 맞긴 하나보다. 풍수지리가 맞다면 아마도 앞으로 호남에는 큰 인물들이 즐비하게 생겨날 거다. 정맥 길에 그 많은 산소들의 후손이 엄청 많을 테니깐.
고당산에서 10여분을 하산하다가 정읍 칠보 개인택시(063-534-3345)로 전화를 걸어 개운치로 오라고 연락을 하였다. 최근에 새로 난 개운치 터널로 잘못 갈 수가 있어서 순창 쌍치로 가는 옛날 길로 오라고 친절히 얘기를 해 주었다. 나중에 보니 개운치에서는 순창 복흥택시를 부르는 것이 정답이었다.
택시를 부른 후 급속행군으로 눈과 낙엽이 뒤엉킨 하산로를 내려왔더니 10여분 만에 포장된 도로가 눈앞에 나타난다 개운리 마을 근처에 있는 호남정맥 개운치에 도착한 것이다.
택시가 20여분을 오지 아니하여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자켓을 덮어쓰고 추위를 이기고 있자니 내가 이 마을 주민이 된 느낌이 든다. 오늘은 1m도 알바를 하지 않고 편안히 산행을 하였으니 운 좋은 날이다./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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