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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기사승인 2019.04.24  19: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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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22>

장만은 그를 멀리 떠나 보내는 것이 여러모로 기분이 착잡한데 정충신의 말은 의외였다.

“관찰사 나리, 후금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기마병을 제압할 수 있는 포수들을 양성하십시오.”

“후금과 우방국 맹약을 맺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포수들을 양성해?”


“그렇습니다. 왜란 이후 엉망이 돼버린 군사시설과 무기를 새로이 정비하고 병사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한편 강훈련을 시켜서 국경을 수비할 정예병을 키우는 데 힘써야 합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고 모름지기 적은 동쪽에서 요란을 떨지만 정작 서쪽을 칠 수 있습니다. 지금이 평화롭다고 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것이 평화이옵니다.”

“정 첨사는 누르하치 차자인 다이샨과 우정이 두텁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후금이 우리를 치지 않는다는 것쯤 상식 않겠는가. 안심이 안된다니 모르갔구나.”

“관찰사 나리, 그것이 아닙지요. 아무리 가깝고 친해도 적은 적이라고 관찰사 나리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아무리 친해도 적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비도, 형제도 죽이지 않습니까.”

그 점 조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조선조 개국 초기 이방원이 동생들을 패죽이고 왕권을 다졌는가 하면, 연산군 또한 친인척을 때려죽였다. 왕실 주변엔 늘 피의 강물이 흘렀다. 그런데 이민족과 화의(和議)를 맺었다고 무장해제를 한다?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너의 깊은 속내를 알았다. 다만 네가 다른 실력자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변경에 서야만이 할 일이 있다는 듯 의연하게 복무하는 것이 일견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단 말이다.”

“나리, 안쓰럽게 생각지 마십시오. 조국이 있으니 나라 지키는 일도 하지 않습니까요. 하마터면 나라를 털릴 뻔했습니다. 선왕께서 열심히 했지만, 모두가 각자 자기 주어진 곳에서 임무에 충실하지 않으니 선왕을 욕보였던 것이지요.”

“가위 충신이로다. 다이샨에게도 결별 인사 하였느냐.”

“병가의 일이란 회자정리지요. 말없이 헤어지면 헤어진 그 자체로써 이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만나면 인연이 닿아 재회했다고 기뻐할 뿐입니다. 제가 다이샨과 우정이 깊다고 한들 그가 조선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럴수록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북방에서 군대를 키워야 강인한 군대가 됩니다. 가혹한 날싸 아래 군대를 양성하면 어느 군대보다 강군이 될 것이옵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북벌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고토를 회복할 꿈도 꾸어야지요.”

장만은 참 정충신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군인다운 기상과 기백이 용솟음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만은 자신의 곁에 영원히 정충신을 묶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특명이 내려졌다. 그에게 뭔가 임무가 부여될 것이다. 그가 생각한 끝에 정충신에게 물었다.

“왜어를 좀 하느냐?”

“항왜들과 대화하느라 터득했나이다.”

항왜들이 장만 부대에 상당수가 용병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이발 밑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발은 장만 밑에 부장으로 있었는데, 툭하면 자리를 비웠다. 부대에서 사라졌다 하면 그는 한양골에 나타났다. 야망이 많은 그로서는 그럴만도 했다. 한양에는 그의 인맥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충신과는 크게 대비되었다. 정충신은 후견인이 없었다. 오직 그 스스로 세상사를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장만은 이런 이발을 신뢰하는 것같지 않았다. 한참 생각하던 장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행여나 가는 길이 아니면 되돌아오거라. 정 첨사는 내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해.”

“나라의 명령을 따라 움직일 뿐, 돌아올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정 첨사를 필요로 하는데도?”

그러나 정충신은 떠나고 싶었다. 자신에게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모처럼 날씨 온후한 곳에서 늘어지게 낮잠 한번 푹 자고 싶었다. 정말 십수년을 동토의 북방에서 견뎌왔다. 다른 군관 같으면 난리를 피웠거나, 벌써 손을 써서 임지 좋은 곳을 택해 떠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충신은 그렇지 않았다. 험지를 더 선호하는 인상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지 않으면 누군가는 대신 이 자리에 서야 하고, 어차피 하게 된다면 내가 하는 편이 낫다. 보람이란 그런 데서 찾는 것 아닌가.

장만은 언젠가 삼십대 후반까지 정충신이 변경에 찌그러져 있는 것이 가엽게 여겨져 험지가 아닌 곳을 택하라고 일렀을 때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 장만이 관할하는 곳은 영흥진관을 비롯해 갑산진관, 북청진관, 삼수진관, 안변진관, 혜산진관, 경성·경흥진관, 부령진관, 온성진관, 회령진관, 훈융(訓戎)진관과 북청에 있는 남·북 수영과 영흥의 함경감영 중 미색이 돋보이는 강계지역에 보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마다했다.

“대감 마님, 정신이 흐려집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락 지었다.

“잘 가거라. 후일을 도모하자.”

장만은 일단 그를 떠나보냈다. 정충신이 포이포에 당도한 것은 그로부터 한달 후였다. 한양에서 며칠 전속 준비로 지체했으나 임지엔 정확한 날짜에 부임했다. 포이포에 이르자 조선통신사 오윤겸이 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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