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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특별기획-광복군이 된 전라도 사람들

기사승인 2019.05.01  19: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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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이 된 전라도 사람들
광주·전남 36명 광복군 활동으로 서훈
호남민중 희망 품고 무장독립투쟁 전개
나월환,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창설 주도

나주 출신 나월환이 창설을 주도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김구흘 환영하며 찍은 기념사진./독립기념관 제공
한국광복군 활동으로 서훈이 수여된 광주·전남 36명 중 김영선·손경생·이상만·오경호(왼쪽부터)./독립기념관

호남의 3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의(尙儀), 민주(民主), 미래(未來)이다.

왜 그러한가? 호남의 민중들은 운주사 와불의 전설과 같이 수천 년 전부터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항상 미래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 와불이 상징하는 단어는 상의(尙義)와 민주(民主) 그리고 미래(未來)다. 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으로 무장한 호남의 민중들은 항상 국가의 혼란과 위기상황에서 스스로 거대한 횃불이 되어 미래를 비추었다. 임진왜란과 한말의 의병장들과 민초들, 4·19, 5·18광주민주항쟁과 숱한 열사들은 역사 속에서 호남의 상의정신을 드높였다. 일제시기에도 호남인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호남민중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격렬하게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호남출신들은 광복군 창설에 기여하였으며 광복군 각 지대에 배속되어 미국, 영국,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하거나 임시정부 요인들을 경호하는 등 적극적으로 무장투쟁을 주도하였다. 특히 나월환(羅月煥, 1912-1942, 호 松竹)은 1932년 상해로 망명하여 1936년 중국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나월환 대장은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1939년 1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창설한 후 전쟁지역을 다니며 전투와 공작, 선전활동을 수행하였다. 휘하 대원들 중에는 김구선생의 아들 김인, 조소앙의 아들 조시제를 비롯한 유능한 장교들이 많았다. 문재(文才)도 많아 기관지 ‘한국청년’에 글을 기고하여 독립정신을 강조하였다.


국가보훈처 기록에 의하면 광주·전남 출신 36명이 광복군 활동으로 공훈록에 등재되고 서훈을 받았다. 훈장별로 살펴보면 독립장은 나월환(나주 약산), 김용재(담양 금성), 김승곤(담양) 3명이다. 애국장은 박금룡(강진), 박상기(동명동), 송식(화순 도암), 안봉순(순천), 최봉진(벌교), 서상렬(무안) 등 6명이다. 애족장은 나동규(영산포), 박종선(완도), 김명탁(무안 몽탄) 등 27명이다. 나동규는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여 인도, 버마지역에 파견되어 영국군과 협동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박주성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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