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34>

“길거리에서 붙는다면 금수들과 똑같은 것들 아니냐. 그래서 요상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냐?”

“여자나 남자나 속곳을 입지 않는 연유가 있습니다. 끈을 하나 풀면 알몸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고온다습한 날씨 때문에 그런 옷을 입기도 하지만, 남녀간에 성애를 편리하게 나누기 위해 고안된 의상입니다. 주자학의 나라인 우리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보기가 민망합니다만, 그들의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이해할만합니다.”

“삶의 속살?”

“그렇사옵니다. 남북조의 내란이 수습되었다고는 하지만 호족(豪族) 사이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칼들이 교환되고 있습니다. 무력 출동 때문에 남자들이 떼거리로 죽고, 남녀간의 성비 구성이 무너졌나이다. 오랜 전쟁의 후유증이 이렇게 일본 전역에 만연하다 보니 여초(女超)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나이다. 그래서 어느 기록에는 ‘일본은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나 많다. 거리에 나가보면 여자들이 옷을 반쯤 벗은 상태로 남자를 잡아 이끈다. 음란한 풍속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바, 종을 번식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왜국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입니다. 지진과 태풍과 화산 폭발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숙명론을 갖고 있습니다.”

“숱한 내전에 자연재해라...”

“그러하옵니다. 전쟁이 나면 남자들은 군인으로 징발되어 전쟁터로 나가고,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으니 인생 허무한 것이지요. 이때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래서 유곽문화가 발달하고, 기녀, 유녀(遊女)와 어울리는 향락문화가 발달하였나이다. 왜나라에서는 목간통을 만들어놓고 남녀가 알몸으로 탕 속에 들어가 목욕하는 풍속도 있습니다.”

“옛기, 불상놈들이구먼?”

“남색도 있나이다.”

“뭐라? 남색?”

“최상층이나 한량들은 남창을 데리고 사는 풍습이 있나이다. 예쁘장한 남자 아이를 상대로 성애를 즐기는 것이지요. 남색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못하는 묘한 성풍속입니다. 마누라 빼앗기는 것은 용서해도 남자 아이를 빼앗기면 반드시 칼로써 복수를 합니다.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남색을 명예로 압니다.”

“한마디로 변태들이로구만.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이 배울까 걱정이다.”

“그러한 반면에 싸움의 도피처를 찾는 애절한 풍류도 있습니다. 렌가(連歌)와 하이쿠가 나온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렌가와 하이쿠?”

“네. 하이쿠는 왜나라 고유의 단시인 바, 인정(人情)과 사물의 풍미를 우아하고 슬프게 표현하는 노래입니다. 이런 노래가 있습지요.”

정충신이 하이쿠의 한 구절을 읊었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겨울 들판을 헤메이누나.

세상은 그저 나그네 하룻밤의 주막인 것을...



“허무적인 시로구나.”

광해가 잠시 감상에 젖었다. 그도 지금 여러모로 심적으로 고단해 있었다. 어지러운 정사(政事) 때문에 눈앞이 핑핑 돌 지경이다. 현재의 마음 상태라면 어디 깊숙한 산사에 들어가 얼마간 푹 지내고 싶었다. 옥사 집행도 그 자신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

“전하, 싸우다 보면 지치고, 허무해질 때가 있지요.”

광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 시달린 시인의 애절함을 보고, 이에야스는 인간을 황폐하게 하는 전쟁보다는 평화로 세상을 일구어보자는 인생철학을 정립했습니다. 세상 문리(文理)를 터득한 이에야스 정권이야말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평화라는 것이고, 상인정신이라는 것이렸다?”

“그렇사옵니다. 그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호전성과 침략 야욕을 거둬내니 새로운 문명이 열린다는 것이옵지요.”

“하지만 과인에게는 적이 셋이나 되지 않는가.”

“적이 셋이라니요?”

“북쪽은 오랑캐, 남쪽은 왜구, 그리고 도성 안의 붕당체제 아니냐.”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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