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81>

추선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잡하고 정충신이 한달음에 연풍 나루터의 객주집으로 달려갔다. 따지고 보면 추선은 그가 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 따른 것이니 백번 천번 죽인 것이다. 정충신은 가슴이 아팠다. 전장에서 그 많은 죽음을 보았으면서도 이처럼 가슴 저려오는 일은 없었다. 허겁지겁 객주집으로 들어서자 술방의 사동이 달려나오더니 정충신의 제복 자락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첨사 나리,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추선 누나의 예쁜 마음씨만이 아니라 예쁜 얼굴도 더 이상 못보게 되다니요. 첨사 나리, 칼을 휘둘러도 겁내지 아니하고 모문룡을 붙잡으려다 칼을 맞았답니다. 이런 원통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도 하나같이 가슴을 치며 추선의 죽음을 슬퍼했다.

“내 마음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고 있다. 이런 비통한 일이 또 있는가. 의기로서 소임을 다하고 갔으니 참으로 거룩하다. 장례를 잘 치러서 추선의 뜻을 높이 새기리라.”

“새기면 뭘해요. 죽으면 그만인 것을. 장례를 잘 치른다고 누나가 알아차리기라도 하나요?”

사동이 핏물이 아직도 떨어지는 추선의 두상을 끌어안고 땅바닥에 나뒹굴며 계속 울부짖었다.

“장례를 잘 치르고 원수를 갚을 것이다.”

정충신은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다. 기생의 상여가 예쁘게 장식되어 수십 개의 만장 휘날리며 장지로 향하는 모습은 슬프고도 애달팠다. 정충신이 근무지로 돌아와 하세국을 불렀다.

“그자를 잡아들여야 하오.”

“모문룡이 우리가 쫓는다는 것을 알고 어디론가 박혀버렸을 것입네다.”

“그자가 계속 숨어있을 리는 없소. 그의 전령 왕사춘을 알고 있는즉, 그자를 추격하시오.”

“모문룡은 귀신같은 놈이고, 간덩어리가 큰 놈입니다. 가도로 들어갔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자는 조정을 가지고 노는 놈입니다. 벌써 조정에 협박했다는군요.”

“이것저것 따질 것없이 추격하시오. 잡으면 껍질을 벗겨버리겠소.”

“첨사 나리, 그는 사정이야 어떻든 명의 장수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도로 당할 수 있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건달패들이지만, 나름대로 뛰어난 용맹성을 가졌습니다. 쉽게 접근할 상대가 아닙니다.”

“건달패가 용맹하다니, 무슨 뜻이오? 건달에겐 용맹이 없지. 오직 야비한 패악질이지.”

“모문룡이 통솔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대도가 통솔력이 있다고? 도적놈의 새끼가 그렇다니, 어떻게 그렇게 보는 거요?”

“패물로 공유덕, 경중명, 상가희 등 부장들을 매수한 것입니다. 그의 간계와 용맹한 부장들 때문에 명의 조정에서도 잘못 알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조선 조정에서도 사대부들이 그를 명장으로 높이 사고 있습니다. 조정에서 그를 도우라는 훈령이 내려왔습니다.”

“평안도 황해도를 유린하면서 백성들 고혈을 짜고, 양민을 도륙하는데도 도리어 도우라고?”

“현장상황을 모르는 조정이야 때로 뜬구름잡기 식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환관 위충현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일을 꾸미니 그자는 죽을 놈도 살려내는 것입니다. 후금과 제대로 싸우지 않았으면서 18번을 이겼다고 거짓말을 하고, 6명의 적군을 포획하고 나서 6만 명의 목을 얻었다고 본국에 거짓 보고를 올렸습니다. 환관 위충현의 무리가 모문룡의 이런 보고를 그대로 상부에 올리고, 대신 어마어마한 뇌물을 받았습니다.”

“썩어도 보통 썩은 게 아니로군.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스울 지경이야.”

“간신배 셋만 있으면 왕을 핫바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요즘 조정의 실태 아닙니까.”

조선 조정도 명나라를 따르는 중신들의 간언에 따라 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는 어명이 내려졌다. 광해군은 평안도 철산 앞바다인 가도에 모문룡 군대가 주둔하도록 조치했다. 모문룡은 명군과 난민 1만5천을 이끌고 가도로 들어갔다. 작은 섬이라서 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조선에 강요하여 식량을 징발했다. 그 식량이 매년 10만석에 달했다. 흉년으로 식량 지원이 여의치 않자 황해도와 평안도에 상륙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광해군 일기에도 모문룡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모문룡은)얼마 뒤 요동의 백성 2, 30만 명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중국 조정을 속여 해마다 탕은 20만 냥을 끌어내었다. 그러나 암암리에 환관 위충현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포장도 풀어보지 않은 채 내당으로 들여보내고, 가도에 필요한 식량은 우리나라에 부담시켰다. 그들은 거짓으로 첩보를 올리고, 심지어는 모 대장전을 지어 전벌의 공적을 떠들어대었다. 외로운 섬에서 칩거하면서 위세부리는 것만 일삼았으나 공상은 더해져 벼슬이 후군도독에 이르렀다.

(旣而欺中朝 托以接濟遼民二三十萬 歲發帑銀二十萬兩 潛結宦官魏忠賢輩 都不發包 入詣內 島粮則專責我國 虛張捷報 至作毛大將傳 張戰伐之蹟 蟄居孤島 徒事張皇 轉增功賞.(광해군일기 권제167, 광해군 13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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