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5장 만포진 첨사<382>

“마침 원숭환이란 명나라 장수가 모문룡의 비리를 알고 그를 칠 것입니다.”

하세국이 말했다.

원숭환은 서른 여섯 살의 나이로 명나라 병부(兵部)의 직방사 주사가 된 사람이었다. 군사적 재능이 있어 젊은 나이에 병부의 상급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원숭환은 명군이 후금에 판판이 깨지는 것은 모문룡과 같은 모리배 장수들 때문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모문룡부터 체포해 군기를 다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세국이 조정의 움직임을 다시 상세히 알렸다.

“조정의 방침은 명나라와 후금과의 관계를 등거리 외교로써 국익을 창출하자는 계획 아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상이 궁휼히 여기고 있나이다.”

“숨은 전략을 선악만을 따지는 중신들이 알 리가 없지. 하지만 이것 저것 신경쓸 겨를이 없소. 모문룡은 원숭환이 제거하겠다고 하니 우리는 일단 손을 뺍시다. 사르후 전투에서 패한 것인지 투항한 것인지 불분명한 강홍립 장군 소식이 궁금하오.”

“좌우영 군대는 망가졌지만 투항해서 중영(中營) 군대를 건졌습니다. 누르하치의 차남 다이샨 패륵이 조선과의 친선을 강화하기 위해 그의 여동생 둘 중의 하나를 강 장군에게 주겠다는 첩보도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잘된 일이군. 여동생을 준 장군을 홀대하긴 어려울 것이니까 말이오. 우리에게 여러모로 운이 따르는 것같소오.”

“이 기회를 우리가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하세국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보시다시피 강홍립 도원수와 김경서 부원수는 후금의 수도 싱징(興京)의 진지에 있습니다. 진지에 있다고 하지만 후금의 수용소지요. 그곳에 억류되어 있는데, 평양감사 박엽이 강홍립의 항복 소식을 듣고, 그 가족을 잡아가두었습니다. 사대주의에 물든 그들은 벌써 명을 배반하였다고 그 가족들을 주살(誅殺)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역장(逆將) 강홍립을 불러 능지처참을 하자고 방방 뜨고 있습니다.”

정충신이 크게 노해서 말했다.

“뭣이? 그것이 말이 되나? 빨리 막아야겠소. 강 장군이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불러서 처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고향에 있는 그 가족들은 생명이 경각에 달렸소. 어서 말을 준비하라.”

정충신은 한 달음에 평양으로 달려갈 참이었다. 장장 5백리 길이었다.

명나라의 장수 우승은도 강홍립이 계획적으로 항복한 것으로 의심해 조정에 알렸다. 항복의 진원지가 바로 명나라였던 셈이고, 평안감사 박엽은 은밀하게 돌아가는 조정의 계획을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상노무 영감, 나이만 먹더니 요리조리 살 궁리만 하고,.. 그 통에 좌영, 우영 우리 군사 1만을 한 솥에 구워먹어버렸어!”

그는 강홍립의 식솔만 처단해가지고는 계산이 안맞다고 생각했다. 병력 손실 일만분의 1로 무마하기엔 그 죄가 너무도 엄중한 것이다. 그는 강홍립의 고향으로 형리를 보내 그의 사돈네 팔촌까지 싸그리 잡아들였다.

“너희 빌어먹을 집안 어른 믿고 우리 시퍼런 장졸들이 한꺼번에 죽었다. 너희들 죄를 너희 스스로 알렸다?”

그는 강홍립의 일가붙이를 모두 평양 감옥에 쳐박아두고, 이것들을 어떻게 죽이나를 궁리했다. 이때 정충신이 말을 몰아 평양 감영에 들이닥쳤다.

“중지하시오!”

동헌 뜰에 이르러 정충신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와 함께 이러저러한 사연을 얘기했다. 그러자 박엽이 화를 버럭 냈다.

“일개 첨사가 평안감사를 호령한다? 철없는 짓인가, 미친 짓인가? 저 자도 잡아들이라!”

정충신이 버티고 서서 다시 외쳤다.

“그나마 산 병사가 5천이오. 강홍립 도원수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병사들마저 다 잃게 되었소이다. 후금군의 군세가 얼마나 강대한지 모르시오? 위세는 천지를 진동하여 중원을 제압하고 있소. 상감마마는 병사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명나라 천자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배반하는 마음을 품더라도 한 명의 군졸, 한 뼘의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오랑캐와 화친한 것이오. 당장 칼을 거두시오!”

“그런 일로 강홍립 도원수와 김경서 부원수가 싸운다던데?”

“그런 관계는 난 모르겠소. 다만 그 가족을 멸하는 것은 당장 화가 미칠 것이니 중지하시오. 이것은 어명이나 다름없소. 강 도원수는 어명에 따라 투항한 것이오!”

“싸우러 간 놈이 비겁하게 투항했는데, 그것이 어명이라고? 그런 놈의 어명이 하늘 아래 어디 있다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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