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가 낳은 영웅 김대중!
최영태(전남대 교수·역사학)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의 삶(1924-2009)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인 민주화, 분단 극복, 경제 발전과 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드는 과정과 일치했다. 그의 삶은 곧 우리나라 현대사 그 자체였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어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큰 꿈을 가진 그의 출발점은 매우 초라했다. 섬에서 서자로 태어난 그는 처음부터 우리 사회의 변방인(outsider)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학력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던 고졸 출신 정치인이었다. 이런 변방인이 군부독재와 빨갱이 논리, 지역주의가 팽배한 후진적 정치문화에서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죽음을 포함한 온갖 장애물들이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그 역경을 잘 이겨냈다. 감옥 생활을 ‘6년의 대학생활’로 승화시켰고, 망명 기간을 오히려 자신의 안목을 키우고 세계적 수준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회로 만들었다.

김대중에게는 국민과 역사, 하나님이라는 3대 신앙이 있었다. 호남인은 전국의 민주 평화세력과 함께 현세에서 김대중이 하늘처럼 떠받든 ‘국민’이라는 신앙의 주인공이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광주 유권자들은 그에게 97.3%의 지지를 보냈다. 선거 공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숫자였다. 이렇게 호남과 김대중은 반세기 동안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동향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김대중과 호남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지역균형발전, 정의로운 경제 등 전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대중과 호남인들은 역사적 동맹을 통해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남북화해 협력, IMF 극복·IT산업 육성 등 다방면에서 우리 역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아름다운 동맹이었다.

김대중은 생전에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설령 대통령이 되지 못해도 자신의 삶을 역사가 정당하게 평가해주리라 믿었다. 외국에서는 김대중을 이미 세계적 거인으로 평가했다. 노벨평화상은 인류가 추구한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한 그의 공적에 대한 전 세계인의 상이다. 2009년 그가 서거한 직후 <뉴스위크>지는 나라를 위해 큰 공적을 남긴 20세기의 거인 11명을 선정하였는데 거기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만델라ㆍ덩샤오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틀 전 광주 학술행사에서 기조발제를 한 베르너 페니히 교수(베를린 자유대학 명예교수)는 김대중을 만델라ㆍ브란트와 비교하며 그를 세계적 인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다. 생전에 그를 괴롭혔던 지역주의와 냉전체제가 지금도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방해하고 있다. 다만 다소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금년 10주기 행사를 맞이하여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 작업의 기미가 역보인다는 점이다. 남북관계 경색, 한일간의 갈등 등 국내외 정세가 그 분의 가치를 더욱 되새기게 한 때문인 것 같다. 서울과 목포, 신안 하의도, 광주에서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많이 열렸는데 특히 광주에서 열린 추모행사는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다. 광주에서는 5일부터 사진전, 16일 학술행사, 17일 추모 음악제, 18일 추도식이 열렸는데 모든 행사가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또 이용섭 시장은 18일 추모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동경납치에서 생환한 8월 13일부터 서거일인 18일까지를 ‘김대중 평화주간’으로 설정하는 문제를 화두로 던져 큰 박수를 받았다. 이제야 비로소 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한 추모행사가 본 궤도에 오른 것 같다.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라고 했다. 정치인 김대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삶의 스승으로서 김대중은 영원히 우리의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자주 언급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구절’은 정치인은 물론이요 일반인들까지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삶의 귀중한 지표이다. 그의 도전적 삶은 청소년들에게는 꿈과 독서의 중요성을,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와 희망의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그는 영원히 우리의 영웅이고 삶의 스승이 될 것이다.

대통령님, 참 잘 사셨습니다. 당신을 열렬히 지지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주어 감사합니다.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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