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26)‘큰덕골재-피재’ 구간(2019. 6. 1)
보릿고개 넘을 때 간난신고의 삶을 이어 준 ‘산’
“우리 조상들의 안식처…정맥길 훼손하지 않았으면”
장고목재 험한 길 두시간 걸어 보림사 품은 가지산 도착
국사봉·깃대봉 지나니 땅끝기맥 출발지 노적봉 닿아

국보 44호인 보림사 삼층석탑과 석등.
가지산 정상에 선 친구 겸신.
국사봉 표지석.
가지산 정상에 오른 필자.
호남정맥 26구간 종주를 기록한 트랭글.

7시에 친구를 만나 장흥 장평면 복흥마을을 내비에 찍고 출발했다. 하지만 큰덕골재를 찾는데 시간이 걸려 8시 50분이 되어서야 산행 초입지에 도착하였다. 큰덕골재는 비포장이긴 하지만 차가 다닐 만큼 정비되어 있어서 장흥 장평면에서 화순 이양이나 청풍 쪽으로 가는 지름길로 이용되는 것 같다. 큰덕골재로 가는 오솔길에는 누가 심었는지 참옻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다.
산행 초입지에 이르러 안내표지판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은 뒤 군치산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군치산은 큰덕골재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9시 30분에 군치산을 넘으니 바로 아래에 비포장도로인 뗏재가 있다. 뗏재 조금 못 미쳐서 산딸기 밭이 있는데 막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따느라 친구는 갈 길을 잊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마을 뒷산 고샅길에 산딸기 밭은 하교 시에 항상 들르던 간식처였다. 산딸기 가시에 찔리고 가끔은 옻이 올라서 고생을 하면서도, 그 달콤한 맛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뗏재 옆에는 농장을 짓는지 산을 파헤쳐 건물을 지어 놓았다. 정맥 길은 위 농장 공사 때문에 금줄처럼 쳐 놓은 밧줄 옆으로 계속된다. 땅을 사서 개발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정맥 길은 되도록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은 초근목피의 보릿고개를 넘을 때 간난신고의 삶을 이어 준 우리 조상들의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죽어서 반평도 차지 못할 육신이 수만 평의 땅을 소유한다고 떵떵거리는 것을 산의 입장에서 보면 가소로울 것이다.
뗏재에서 그만그만한 봉우리들을 몇 개나 넘었는데 트랭글은 울리지 않고 11시 10분이 되어서야 숫개봉(496m)을 알리는 음성이 나온다. 숫개봉을 지나 정맥은 봉미산(505m)을 향하여 거의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12시 30분경에야 봉미산을 지났고 30여분의 하산 끝에 산행 중간지점인 웅치(곰재)에 닿았다.
마침 표고농사를 짓는 분이 곰재 바로 옆에 멋진 집을 지어 놓아 염치 불구하고 찾아가 바깥에 있는 수도에서 식수를 가득 채웠다. 진돗개 한 마리가 계속 짖는데 여자 주인과 얘기를 나누니 조금 수그러든다.
정맥 상에는 샘이 없어서 물을 보충할 곳이 없는데, 웅치의 위 민가는 물이 떨어진 산꾼에게는 거의 구세주 수준이다. 웅치에서 점심을 먹고 국사봉(499m)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곳도 남도 오백리길 정비 때문에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특히 장흥에 올수록 표지판과 안전난간, 밧줄들이 잘 설치되어 있어서 장흥군수님과 장흥군 공무원들이 달리 보인다. 국사봉에 오르는 길은 북사면이라서 그런지 더덕넝쿨이 정맥 길 옆에 흔하게 기어다닌다.
15시 10분경 국사봉에 이르렀고 깃대봉을 지나 30분 정도 더 가서 노적봉(430m)에 이르렀다. 노적봉은 110km 땅끝기맥이 시작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지난 겨울에 무등마루 산악회를 따라 땅끝기맥을 종주했었는데, 그때 못 간 부분이 이 시작점과 오소재를 넘어서 두륜산과 땅끝 사자산에 이르는 구간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노적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올해 안에 땅끝기맥을 마무리 할 것을 결심했다.
노적봉에서 삼계봉까지는 20여분 걸리는 능선을 가는 길이나 삼계봉에서 장고목재를 넘어 가지산까지는 두 시간이 걸릴 만큼 길이 험하다. 가지산은 봉우리가 두 개인데, ‘준·희’가 표시를 해 놓은 가지산과 정상석이 있는 가지산이 있다. 오후 6시경 가지산에 닿았는데, 등산 앱이 없는 통에 하산로를 놓쳐 그만 보림사 쪽으로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가지산은 보림사를 품고 있는데, 보림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년)에 창건된 절로서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의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가지산파의 3대 보림으로 불리는 근본도량이라 한다.
하산 길을 잘못 드는 통에 국보 제44호인 보림사 삼층석탑 및 석등도 구경하고, 부처의 지혜를 간직한 가지산(迦智山)의 우람하고 편안한 자태에 둘러싸인 보림사 경내에서 마음을 힐링하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 주에는 피재에서부터 감나무재까지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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