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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표 무안 백제고 교장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기사승인 2019.09.22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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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표 무안 백제고 교장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만족하지 못함’에 만족한다면…
김용표(무안 백제고 교장)

 

노자가 말하기를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라고 했다. 족한 줄 알면 욕된 일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험이 없다는 뜻이다. 인류 불행(?)의 시작은 수렵채집의 시대를 거쳐 농업이 주된 삶의 방식이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안정된 식생활로 전환되면서 왜 불행이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생존의 필요를 넘는 잉여농산물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남보다 조금만 더 갖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농사는 사람을 모여 살게 만들었고 또 수확물은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잉여농산물을 저장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은 결국 부의 편중을 가져왔고 권력의 편중을 가져왔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안정된 생존 음식물을 확보하게 되면서부터 한쪽에서는 더 굶주리고 더 비참해졌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욕망과 욕심이 문명을 이루게 하였고 오늘날 우리를 이처럼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물질의 풍요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그림자는 선한 이타심과 사악한 이기심을 동시에 만든다. 사람이 행복하고자 하면 계속해서 욕망을 채우거나 아니면 욕망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바다를 메울 수는 있어도 인간의 욕망은 채우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경험한 욕망은 줄이기도 쉽지 않다. 이미 채워져도 또 다른 새로운 욕망이 탄생하고 형태를 바꿔가면서 한없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채울 수 없음에 좌절한다. 한정된 재화를 놓고 타인과 경쟁하고 빼앗아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면서 서로에게 죄를 짓게 되는 것이 나약한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이 욕망과 불만족의 순환고리를 벗어날 수는 없었을까.

월터 소로우는 숲으로 돌아가 자연과 문명을 왕래하며 소박한 원시적 삶을 소망하였다지만 과연 우리가 문명의 틀을 벗어나면서까지 ‘자연인’처럼 살 수 있을까. 우리는 결코 원시수렵채집시대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일상에서 욕망을 줄여가는 연습을 통해 인간의 원시적 본성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정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최근 소비를 줄여가며 최소한만 소유하며 사는 미니멀리즘이 삶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조금 소비를 줄이고 조금 경쟁을 피하고 조금 양보하고, 적게 가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미덕은 ‘더’가 아니라 ‘덜’이다. 진정한 만족은 내 욕망의 바다를 조그만 호수로 줄여보는 데서 가능하다고 본다. 2천여 년 전에 맹자가 말했다.

지고한 덕을 쌓은 선비가 아니면 무항산(無恒産)이면서 유항심(有恒心)이기는 어렵다고. 보통사람들은 일정한 생업과 재산이 있어야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항산항심(恒産恒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적은 이들에게 갖고자 하는 욕망, 그 갈망을 버리라는 말이 얼마나 가식적으로 들리겠는가.

오히려 가지지 못한 것, 가져보지 못했던 경험들이 아픈 상처가 되고 가진 자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진다. 그러니 누가 욕망을 줄여야 하는가. 가진 자가 줄여야 하고, 나라로 따지면 잘 사는 나라가 줄여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75억 인구 중 10억(통상 1세계권 국민)은 1인당 자원에너지 소비량과 폐기량이 나머지 65억에 비해 32배라고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도 포함되지만 그 선두에 미국과 일본이 있다.

특히 일본은 외국자원의 선점과 수탈에 탁월함을 보이는 나라이다. 이 두 나라의 삶이 결코 인류사에 성공한 문화와 문명이 아니며 바람직한 표준이 될 수도 없다. 또한경제적으로 뒤쳐진 나라들이 더 잘 살게 되어 자원과 에너지 소비가 늘면 인류는 재앙이라는 논리도 사실은 파렴치한 것이다. 오히려 잘 사는 나라의 절감노력이 훨씬 필요하고 더 양심적일 것이다. 미래를 위한 교육 중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원과 에너지를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자는 교육인지도 모른다.

‘가진 자의 풍요가 결코 자기 능력과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란 것을, 못 가진 것이 오직 남 탓만도 아니고 또 그것을 실패로 규정할 일도 아니란 것’을 조금만 받아들인다면 탐욕과 증오의 열차는 잠시 멈출 수 있다.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멈춰보면 욕망의 궤도가 보일 것이고 그 욕망의 위험을 막을 수 있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많이 풍요롭다.

잠시만이라도 지금 이것에 ‘만족’하면 안되는가. ‘만족하지 못함’을 ‘만족’한다면... 조금만 욕심을 비워서 다 채우지 않으려 하고, 채우지 못함에 너무 분노하지만 않는다면 세상은 좀 더 만족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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