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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24)

기사승인 2019.09.22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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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24)

제4부 풍운의 길 2장 이괄의 난(424)

정충신은 이괄이 영변-평양 우회로-중화-평산-황주 방향으로 남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 도원수부로 말을 달렸다. 장만 도원수 앞에 이르자 장만이 맞으면서도 놀라는 모습이었다.

“정 장수가 제 발로 들어왔군. 내가 설마 정 방어사를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장만은 정충신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었다.

“잘못본 것이란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잖아도 사람을 보내려 했네. 이괄과 손잡았다는 말은 사실이렸다?”

그를 의심스럽게 보는 것은 시중에 회자된 소문 때문이었다.

“어떤 자가 그런 말을 합니까? 소관(小官)이 이괄을 때려잡으로 여기 온 것 아닙니까.”

“그와는 친구 사이가 아닌가?”

“친구지만 길은 분명 다릅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만약 한양으로 말을 돌럴적시면 내가 칼로써 너를 막을 것이다, 군인에겐 우정보다 나라가 앞이다, 라고요.”

“그래서?”

“정치군인이 되면 나라가 온전치 못할 것이니 정신 차리고 국토를 지켜야 한다. 이괄 네가 회군하면 분명 나와 길이 다르니 적이 될 것이다, 라고 경고했습니다.”

“음, 그랬군. 내가 정 장수를 믿는 그대롤세. 그런데 그자가 기어이 반역의 길을 택했단 말일세. 나도 그를 천거했으니 나 역시 온전치 못할 것 같으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연히 소관이 잡아 올리겠습니다.”

“그래, 이런 충성스런 장수를 누가 음해했을꼬. 내 비록 늙었으나 이 점만은 분명히 해야겠다. 두 번 다시 이순신 장군 꼴이 나선 안되느니. 이순신 장군은 왜놈에게 죽은 것이 아니야. 왕과 조정 사대부의 기득권자들이 잡아넣은 것이지. 이것이 재발하면 참으로 국조(國祖)를 보기가 민망하다.”

“도원수 어른, 지금 군사들 대오를 갖춰 이괄 군사를 뒤쫓겠습니다.”

“내가 궁궐로 장계를 보낼테니 잠깐 도원수부에 머물러 있게.”

장만 도원수는 장계를 써서 급히 왕실로 보냈다. 그리고 진중 막료회의를 소집했다.

“이괄이 여기 평양 도원수부를 우회해 서쪽 진격로를 타고 한양으로 남하했다. 한시가 바쁘니 부대를 재편성한다. 내 나이 육십이 넘고, 지체도 부자유하니 통솔력과 군사 전략에 뛰어난 정충신 안주목사 겸 방어사를 팔도부원수로 현지 임관한다. 그를 토벌군 대장으로 명한다.”

이 명령이 떨어지자 도원수부의 군사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정충신! 정충신!” 하며 함성을 질렀다. 관군을 모으니 1500명 명 남짓이었다. 15000으로 불어난 이괄 군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군세였다. 정충신이 대 위에 올라 일장 연설을 했다.

“금방 임명장을 받은 팔도부원수 겸 토벌대장 정충신이다. 지금 우리 군사는 수적으로도 부족하고,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아 약체다. 그러나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다. 출진하는 도중 전략을 짜고 전술을 익히도록 하겠다. 전원 일각 사이에 군장을 꾸려서 집합하라. 지금 당장 출동할 것이다.”

도원수부의 군사들이 군장을 꾸리는 그때 이괄 부대는 황산-산산에 진을 치고 있었다. 추격하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려야 했다.

평양 도원수부로부터 온 장만의 장계를 받은 왕이 영의정 이원익에게 장계를 내밀었다. 이원익은 무릎을 탁 쳤다. 그러면 그렇지. 어찌 정충신이 배역도가 될 것인가.

“상감마마, 장만 도원수가 정충신을 팔도부원수로 현지 임관시켜 이괄 부대를 뒤쫓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해했던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소인은 애초부터 정충신을 충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나이다.”

“영상의 혜안을 내 일찍이 알아보았소.”

“소인은 일찍이 남쪽의 국경은 이순신, 북쪽 국경은 정충신, 이렇게 생각해왔나이다. 정충신은 경성(境城) 온성 만포 창주 의주의 두만강변과 압록강변의 최북단 국경을 지키고, 여진 오랑캐와 협상을 통해 침입을 막은 지장 겸 용장이었나이다. 남해를 지킨 이순신 장군이 모해를 받았듯이, 정충신 장수마저 모함을 받고 있는 것에 심히 마음의 부담이 컸나아다.”

“궁중이 이런 음모와 모해 속에 있으니 과인 역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소. 영상이 계책을 세워서 난국을 헤쳐나가도록 하시오. 과인은 어떤 누구도 믿을 수가 없소. 영상만을 믿고 있소.”

이원익은 파발마를 띄워 정충신의 무훈을 비는 왕의 서신을 보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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