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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 최후의 불꽃’ 한말 호남 의병 전국 최다·최대 접전

기사승인 2019.10.09  19: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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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 건립 발판 삼아 호남 의병 재조명 시급

기념관 건립 발판 삼아 호남 의병 재조명 시급
‘항쟁 최후의 불꽃’ 한말 호남 의병 전국 최다·최대 접전
유적지 129곳 가운데 원형보존 34곳 불과…보존관리 시급
수천 명 활약 불구 서훈자 764명…업적 발굴·인정 노력 요원
임진왜란 당시 264개 유적·유물 중 문화재 등 지정 151개 불과
 

광주 농성광장 공원에 세워진 구한말 의병장 김태원 장군상.

고경명·기우만·김경립·고인후·기재…. 호남 의병은 외세가 우리 국토를 유린할 때 절의정신으로 무장하고 국난 극복에 앞장섰다. 특히 한말 전국 최다 인원으로 가장 치열한 전투를 이끌었으며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항쟁 최후의 불꽃으로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호남은 충절과 정의를 중시하는 의향으로 거듭났다.

광주 어등산 일원 호남의병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발판 삼아 전국 의병활동을 주도한 호남 의병 활약상과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광주와 전남·북 곳곳에 자리한 호남의병 관련 265개 유적·유물과 129곳의 유적지 등의 사후관리·보존에 본격 나서야 한다. 더불어 애국심 하나로 외세침략을 저지한 호남의병의 공로를 인정받기 위한 서훈 수여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호남의병의 구국충혼을 기리고 역사를 정립·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 시작돼야 할 때다.

◆한말 의병 중심지 호남, 전국 최다 의병·최대 접전지=1895~1896년 조선 고종 시절, 단발령과 아관파천을 전후한 시기, 호남지역 최초 의병을 일으킨 이는 기우만이었다. 의병활동을 벌이다 해산한 이후에도 그는 상소운동을 주도했고 을사조약을 전후해 다시 거의를 도모하기도 했다.

호남의병의 중추적 역할을 한 기재. 그의 집안은 의병활동을 주도했다. 기재의 아들 기산도는 5적암살단을 조직해 군부대신 이근택을 습격해 중상을 입히고 체포당했다. 이후 기산도는 의병에 투신했고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의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장인인 고광순은 꾸준한 의병활동을 펼치다 무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지리산 피아골에서 장기전을 모색하던 중, 1907년 10월 순국했다.

기삼연은 김익중 등과 함께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해 전남지역의 후기의병활동을 주도, 전라도를 한말 의병 중심지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이 강제퇴위당한 후 의병항쟁의 불꽃이 전국을 휩쓸었는데 특히 전라도 항쟁이 가장 치열했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부자의병장·형제의병장 등 부모형제가 모두 앞장서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다.

실제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독립운동사에는 1909년 교전의병수가 전남이 1만7천579명(45.5%)·전북 5천576명(14.5%)로 전체 절반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교전 횟수 역시 전남이 547회(31.5%)·전북 273회(15.7%)로 10번 중 4번의 전투는 전라도에서 치러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일제의 초토화 작전으로 500명 전사, 3천여명이 체포·투항됐으나 호남의병의 맥은 끊기지 않았다. 고흥 출신의 이병채 등 일부는 해외로 망명해 독립군에 투신했고 국내에서는 비밀결사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의 반외세·반침략 투쟁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거쳐 수많은 국내 항일운동으로 계승됐다. 해방 이후 민주·통일 운동과 5·18민중항쟁 등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하는 원동력이 됐다.

◆129곳 유적지 보존관리 시급…원형보존 34곳 불과=지난 2016년 1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8개월간 광주광역시 의뢰를 받아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 실시한 호남의병 기념사업 연구용역 분석 결과 한말 의병활동 관련 유적지는 광주 37곳·전남 53곳·전북 39곳 등 총 129곳이다. 건물(65곳)과 묘소(6곳), 산야(26곳), 비석(16곳), 촌락(16곳) 등이다.

광주의 경우 양진여 의병부대 전투지(사암로 55 뒷산), 광산구 박산마을 전투지, 양동환 의병부대 순국지(어등산 일대 ), 영사재 의병 무기제조처(명도동 507), 박현동 생가(장수길 33) 등이다. 전남은 성산강진원순의 비(순천 조비길36), 김태원 김율 생가 터(나주 문평면 북동리), 고강순 집터(담양 창평면 유천리), 대흥사 심적암 터 의병전투지(해남 삼산면 구림리) 등이다.

전북은 불당골 의병병기제작소터(완주 비봉면), 임병찬 생가터(군산 옥구읍), 의병대장 문태서 박춘실 공적비(장수 계북면) 등이 유적지다.

하지만 이 중 원형보존이 이뤄진 데는 34곳에 불과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병 격전지인 산야와 마을 등의 일부 변형 또는 멸실은 차치하더라도 의병들의 무기제조처 대다수가 멸실됐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이라도 지자체에서 주요 의병들의 생가나 무기제조처 등 건물에 대해서는 보존·복원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말 의병 서훈자 764명 불과…업적 확인·서훈 작업 서둘러야=연구용역 결과 한말 호남의병 중 서훈자는 764명에 불과한 인 반면 미서훈자는 1천755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라도 출신 호남의병 서훈자 764명(광주 28명·전남 316명·전북 420명) 가운데 대통령장은 1명(전북 임실 출신 전해산), 독립장 56명, 애국장 357명, 애족장 232명, 건국포장 77명, 대통령표창 41명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훈을 받지 못한 이는 1천776명으로 광주·전남 748명, 전북 448명, 출신지 미상(기타) 580명이다.

전남 출신 장인초의진 선봉장인 김성운, 김율의진 선봉장인 문상린, 심남일의진후군장 노병진, 회맹소포대장 김기순 등이다.

용역에서는 참고문헌 등을 토대로 미서훈자를 추려냈으나 확인돼지 않은 한말 호남 의병이 더 있을 수도 있어 미서훈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건 호남의병의 업적을 발굴하고 서훈 수여를 통해 공로를 인정하는 작업이 미흡한만큼 세밀한 조사를 통한 업적 확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진왜란 264개 유적·유물…151개만 기념물·문화재 등 지정=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호남의병은 광주 74·전남 904·전북 368명 등 총 1천346명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전남 나주가 117명으로 가장 많았고 장성 100명, 남원 90명 등 순이다.

의병과 관련된 유적·유물은 총 290개로 사우와 서원, 묘소, 비, 관아, 문서 등이다.

이 가운데 호남의병에 대한 것만 264개에 달한다. 광주는 고씨 삼강문, 김덕령장군 의복, 고경명 초상 등 25개가 남아 있다. 전남은 고흥 이충무공 친필 첩자, 나주 금성관, 나대용장군 상, 담양 보리암, 당포앞바다 승첩지도 등 187개다. 전북은 최호장군 유지, 안위장군 묘, 황진가 고문서 등 52개로 나타났다.

하지만 호남의병 관련 유적·유물 중 151개만 시·도 기념물이나 중요민속문화재, 유형문화재, 사적, 향토문화유산 등으로 지정돼 있다. 113개의 유적·유물은 관리사각지대에 놓여 사실상 방치돼 있는 셈이다. 특히 기념물 등으로 지정되더라도 일부는 문화재보호법 적용을 받지 못해 관리에 손을 놓고 있을 수 있어 지자체의 점검 등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세영 기자 j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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