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현장>말의 힘

이은창 중·서부취재본부 기자

“아따 또 기사 쓸라 그러요? XX”

얼마전 전남 모처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을 취재하던중 해당 지역 경찰서 팀장급 경찰관 A씨에게 들었던 한 마디다. ‘XX’는 요새는 욕같지도 않은 욕 ‘염병’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끝을 장식한 염병은 순간 나의 모든 사고를 얼어붙게 했다. 전화연결이 막 되자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관련 사건의 내용을 이야기 한 뒤 담당 경찰관이 맞냐고 묻자마자 돌아온 대답이었기에 더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순간 정신을 추스른 뒤 A씨에게 이 상황을 따졌다. 장난전화도 아니고, 취재를 위해 전화한 기자에게 ‘염병’이란 말이 가당키냐 하냐고 되물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나 스스로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A씨는 그제서야 “아니, 기자님한테 한 말이 아니고요”라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A씨 해명의 요지는 ‘지금 처리해야 할 일도 많은데, 언론 보도 예상 보고서를 쓸 생각하니 순간 화가 나서 혼잣말로 욕을 했다’는 것이었다. 납득은 안됐지만 이후 거듭 사과하는 A씨 때문에 더이상 그의 염병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분이 풀린건 아니다. 아직 남아있는 뒤끝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0여분에 걸친 통화를 마치자 문득 A씨의 부하직원들이 걱정됐다. ‘취재 기자에게 욕지껄이 섞인 말을 내뱉는 사람인데, 부하직원들한텐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과 함께 말이 주는 힘도 깨달았다. 사람이 내뱉는 말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적어도 자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표현은 삼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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