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46)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46)

이괄은 왕권 옹위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는 본래 인성군 공을 왕으로 내세우려고 했다. 인성군은 선조와 후궁 정빈민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선조의 7남이었다. 잘 생기고 명민하고 품성이 어질어서 왕실 평판이 좋은 왕자였다. 선조도 열 네 아들 중 가장 예뻐했다고 한다. 그런 인성군이라면 백성들이 따를 것으로 여기고, 이괄은 그를 왕으로 모심으로써 새 권력의 법통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군다나 인성군은 광해군 사람이다. 광해군의 북방정책에 앞장서고, 개혁정책에도 솔선해왔다. 그런 광해를 뒤집어 엎은 인조정권을 다시 엎어 광해의 개혁정책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인성군 공을 왕으로 옹립하면 왕권의 정통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성군은 광해와 함께 가면서 계모인 인목왕후와 그 아들 영창대군을 숙청하는 데도 관여했다. 아비 선조가 51세에 18세의 연안김씨 인목왕후와 정혼해 영창대군을 낳아 그를 세자로 옹립하려는 계획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라고 반기를 들었다. 이미 광해가 세자로 책봉되어 분조를 이끌며 임진왜란을 수습하고 있는데 유영경 등이 왕의 발밑에서 핏덩이인 영창대군을 법통을 잇게 모사를 꾸민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본 사람이었다. 험난한 전쟁을 이겨내야 하는데 나이어린 영창이 대통을 잇는다면 그 어미가 수렴청정해야 할 것이고, 그 어미마저 이마의 솜털이 보송보송한 갓 십대를 벗어난 사람인데 무슨 물정을 알 것인가. 그래서 이를 반대했고, 그 과정에서 선조가 죽었다.

광해의 주류세력은 권력을 수습해 핏덩이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던 유영경 일파에게 사약을 내리고, 인목왕후는 서인으로 강등시켜 궁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영창은 강화도에 위리안치시킨 다음 그가 8세때 강화부사 장황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정궁의 자식이라지만 영창은 선조의 14명 왕자 중 13번째이며, 험난한 나라를 이끌기에는 너무도 나이가 어리고, 그래서 그는 왜 죽는지도 모르고 어른들의 정치싸움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그 당쟁과 분규 과정에서 김류 이귀 최명길 이시백 등이 주동이 되어 반정을 일으키고, 광해군의 조카인 종(정원군의 아들)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가 바로 인조다. 인조가 광해를 엎은 것은 왕실의 어른인 인목대비를 쫓아낸 불효와 부모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대신 그 적인 후금(청나라)과 수교한 데 대한 심판이었다.

인성군은 본래 인격과 학문이 높은 사람이었다. 왕실의 권위와 자존감을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조도 그를 숙부로써 깎듯이 받들었다. 그러나 광해의 일파와 철천지 원수가 된 인목왕후로서는 그가 눈엣가시였다. 아들 영창대군을 죽이도록 방조하고, 자신을 서인으로 강등시켜 궁 밖으로 쫓아낸 일파인데, 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인성군은 세의 몰락 이후 낭인처럼 살았다. 왕이 인목대비 등 왕족을 이끌고 공주로 파천할 때도 따라가지 못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족들은 서로가 잠재적인 위협자였으며, 그래서 혐의나 죄가 없는데도 눈에 거슬르면 죽는 경우가 있었다.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성군으로서는 인목대비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만이 목숨 부지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남행 몽진을 따르지 않고 도성에 남아 얼쩡거리고 있는데 이괄 반군이 입성했다. 그가 한양에 잔류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괄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흥안군 제가 홀연 나타난 것이다. 그는 왕실의 공주 파천 시 금강을 건너기 전 말을 돌려 한양에 들어왔다.

흥안군 제는 선조의 10남으로 온빈한씨 소생이며, 인성군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조카뻘이다. 인품과 학식으로 보면 인성군에 미치지 못하지만 호쾌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괄이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한명련 이홍업이 달려왔다.

“장군, 정충신 군대가 안현고개에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그의 부대가 진지를 구축해 전쟁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괄이 엉뚱한 말을 했다.

“인성군 공은 어디 있단 말이냐?”

“인성군은 벌써 삼각산으로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중이 되려는지 산적이 되려는 것인지, 도통 뒷소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할 수 없다. 흥안군 제를 모셔오너라.”

이괄은 이미 도성 곳곳에 새 임금이 등극했다고 방문을 써붙여 놓았는데 인물을 찾지 못한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순서로 보아 왕권부터 세워놓고 전쟁을 시작하거나 말거나 할 참이었다. 이괄이 초조한 마음으로 인정전으로 들어가 용좌 대신 그 옆 교의를 내놓고 앉아 숙고에 들어갔다. 허수아비일지라도 당장 왕을 세워야 했다. 그래야 들끓는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 그때 군관 하나가 급히 인정전으로 뛰어들었다.

“흥안군을 모셨습니다. 지금 들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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