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5)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65)

영의정 이원익이 상감마마 환도추진위원장 윤방을 옆으로 불러냈다.

“왕실을 비롯해서 조정과 시원임(時原任:현임과 전임의 벼슬아치) 대신들과 그 가족과 어영(御營) 군사들을 합하면 자그마치 이천이 넘는 행렬이오. 이들이 백성들의 어깨를 타고 물을 건너려면 세 시간도 더 걸릴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저 인주(人柱:사람의 기둥)들이 다 무너져서 강 하류로 떠내려가고 말 것이오. 벌써 셋이 시체가 되어 떠내려갔지 않소?”

늙은 재상 이원익은 오랜 경륜을 쌓아오는 동안 백성의 고충을 알고 있었다. 윤방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낭패입니다.”

“한숨만 쉴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합시다. 왕실만 다리를 건너게 한 다음 인주다리를 거두고 나머지 행렬은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배로 건어갑시다.”

“옳으신 말씀이오이다.”

그렇게 행차 준비를 바꾸는데 인조가 이원익을 불러 따지듯이 물었다.

“상감이 강을 건너는데 이런 식으로도 건너는 수가 있더란 말이더냐? 과인 이전에도 선왕들이 이렇게 건너신 적이 있었던가?”

인조는 이렇게 다리를 건너는 것이 왕으로서는 처음 당하는 것이라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마마, 선왕들께옵서 이렇게 백성들이 뗏목을 받쳐서 다리를 건너신 적이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때는 오뉴월, 또는 한여름의 일인지라 백성들이 물놀이 하는 기분으로 뗏목을 받쳐올렸다. 그런데 지금은 얼음 덩어리가 하류로 흘러가는 2월의 차가운 강물이다. 인조는 선왕들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한 듯 보련(寶輦:임금이 타는 황금색 가마)이 오도록 명했다. 이윽고 보련이 다리 앞에 와 멎었다. 보련대가 보련을 내려놓고 왕이 타기를 기다렸다. 뒤에 대비와 왕비, 왕자, 공주들이 탈 덩(공주, 옹주가 타는 가마, 덕응이라고도 함)과 교자(轎子)가 대령했다. 왕이 말했다.

“연을 타고 가면 인두교가 성하겠느냐? 저것들이 온전히 버티겠느냐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잘 훈련된 보련대라고 해도 한 귀에 두 사람씩 네 귀퉁이 모두 여덟 사람이 왕을 가마에 태우고 백성들을 밟고 건너는 것이 아무래도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다. 자칫 보련이 고꾸라지면 왕이 한강물에 꼬라박히게 된다. 이 말을 듣고 대전별감과 내시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보련 앞으로 나아와 읍했다.

“전하, 다라를 튼튼하게 놓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한 닷새 말미만 주셨더라도 배를 동원할 수 있었을텐데 난리통에 배가 대부분 파선이 되었고, 남은 배들마저 저 북한강과 남한강 깊숙이 숨어버렸나이다. 대신 백성들이 물밑에서 하늘처럼 떠받들 것이니 유념치 마시고 건너시옵소서.”

왕이 무슨 생각에선지 보련에 오르지 않고 보행으로 건너가겠다고 했다. 국왕이 보련을 타지 않겠다고 하니 그 휘하 왕실과 사부대신들도 두 발로 걸어서 뗏목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비만 연에 오르고 모두 걸어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행차의식이 없을 수 없었다.

내시 둘이 왕의 앞을 유도하고, 붉은 건을 쓴 별감 넷이 그 뒤를 따랐다. 대전상궁 둘이 왕을 양옆에서 부액(扶腋:떠받쳐 부축)하고, 근위병이 왕 앞뒤에 네 사람씩 서서 행군했다. 보련만 타지 않았다는 것 뿐, 임금의 도하(渡河) 인력은 동원된 셈이다. 한 무리의 왕 보위대가 지나가자 뗏목다리가 춤을 추듯 출렁거렸다. 자랑스런 귀환도 아닌데 왕은 짓붉은 곤룡포를 입었고, 익선관을 썼다. 약식이라도 왕의 행차 예식인지라 홍양산(紅陽傘:임금만이 쓸 수 있는 차양이 큰 붉은 양산)이 왕의 머리 위를 받치고, 고취대호군(鼓吹大護軍)이 요란한 피리와 나팔을 울리며 뒤따랐다. 노부(임금 거동 때의 의장 행렬)의 격식을 상당히 생략한 것이긴 하지만 그 숫자가 50이 다 되어서 한 무리로 묶여서 앞으로 나아가니 이들이 지날 적마다 강물 속의 백성들은 항문이 빠져나올 정도로 용을 쓰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강쇠돌이가 어가행렬이 지나가자 삐끗 물 속에 잠겼다가 얼굴을 내밀고 푸-, 입에 가득찬 물을 뿜어냈다. 두 인부가 물에 휩쓸려 떠밀려가서 대오가 이가 빠진 형국이었으니 그 혼자 두사람 몫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쇠돌이와 그 곁의 인주가 등으로 받쳐 낑낑거리고 있는데, 행렬은 쉽게 나아가지 않아 등짝이 떨어져나갈 지경이었다.

“개새끼야, 지랄 말고 어서 지나가란 말이야!”

악이 받쳐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싶었으나, 그러면 그나마 목숨 부지하기가 힘들다. 그는 어금니가 바스러질 정도로 앙당 물고 등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참아냈다. 마침내 왕은 강을 건넜고, 그 사이 뗏목을 받치고 있던 인주들 중 대여섯 명이 한강 하류로 떠밀려가 영영 사라졌다. 왕실 일행이 노들강을 건너 한강 북편에 당도하자 팔도도원수 장만이 달려가 물속에 있는 백성들 손을 잡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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