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38·끝) ‘토끼재-망덕포구 구간(2019. 10. 26)
호남정맥 마지막 혈 맺혔나…천왕산 정상은 암릉
정상전체가 고인돌 엎어놓은 듯 ‘너럭바위’들 우뚝
불암산 오르자 아담한 정상석 오뚝이처럼 서서 반겨

시발점 ‘망덕산’서 인증샷으로 580km 대장정 마쳐
겸신·낙수 등 동반자들께 감사…다시 가야 할 길 꿈궈

호남정맥 시발정 망덕산에 바라본 망덕포구.

아침 8시에 법원 앞 편의점에서 지도를 받아 토끼재를 목표로 출발하였다. 어제 깜박 잊고 5만분의 1 지도를 챙기지 않아 사무실 여직원에게 편의점에 지도를 맡기게 했었다. 토끼재는 내비에 잘 나오지 않으므로 ‘느랭이골 자연휴양림’을 입력하고 남해고속도로 옥곡 IC로 나와야 길을 찾기 쉽다.

9시 30분경 느랭이골 자연휴양림 앞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불암산으로 오르는 길이 철문과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할 수없이 철조망을 우회하여 오른쪽의 매실 밭을 건너 불암산을 오르는데 예상보다 정맥 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가끔씩 길이 희미한 곳도 있으나 능선을 타면 리본이 꼭 나타나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불암산 정상 표지석

산행시작 50분 만에 431m의 불암산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는 50cm 정도의 아담한 정상석이 자연석 위에 오뚝이처럼 서 있다. 옆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에 연로한 감시원이 계시는데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하고 10분째 전화통화중이시다. 할 수없이 셀카 한 장을 찍고 탄치재로 가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불암산 정상에서 30여분을 완만한 하산로로 내려가니 탄치재가 나오는데 ‘탄치재 해발 100m’란 매우 낡은 표지석이 도로 옆에 서 있다. 여기서 ‘국사봉’까지는 2.8km라는 안내표지가 보여 1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겠거니 하고 길을 재촉한다. 그런데 작은 봉우리를 두 개쯤 넘어 1.5km는 온 것 같은데 갑자기 길가에 ‘국사봉 2.8km, 대리경모정 2.0km’라고 쓰인 안내표지판이 또 서 있다. 정맥 길 옆에는 우산나물들이 많이 보이고 마삭줄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 근처여서 자주 갔던 금당산에서 쉽게 눈에 띄는 마삭줄을 보니 반갑다.
 

탄치재 표지석.

국사봉은 445m에 불과한데 탄치재가 낮아서인지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12시가 되어서 겨우 국사봉 정상에 닿았는데 태양광전지판이 달린 통신탑 철조망에 무수히 많은 리본이 달려 있어서 화순 천운산 정상을 연상케 한다. 섬진강 모래톱이 눈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고 하동 읍내가 발 아래 보이는 국사봉은 근처에서는 제일 전망이 좋은 군사용어로 감제고지다.

12시가 넘긴 했지만 행동식을 계속 섭취해서인지 배가 고프지 않아 40여분을 더 걸어서 진주강씨 가족 묘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젓가락을 챙겨오지 못해서 간벌된 밤나무 가지로 1회용 젓가락을 만들어서 식사를 했다. 대학 다닐 때 자취하던 친구들과 법대 언덕 밑에서 시누대 꺾어서 도시락 까먹던 추억이 생각났다. 식사를 마치고 밭길을 따라 하산하다가 그만 리본을 놓치고 감나무 농장의 농로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진상 대봉 단감’ 농장을 운영하는 이경태 어르신 부부.

감 밭을 카메라에 담다가 작은 언덕에 이르니 70을 훌쩍 넘기신 이경태 어르신이 사모님과 함께 ‘진상 대봉단감’을 박스에 넣은 작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거는 나를 반기신다. 이경태 어르신과 수다를 떨면서 홍시도 얻어먹고 단감도 여러 개 얻었다. 어르신이 단감은 광양 진상면이 제일 유명하고, 이곳 진상은 일제 때 고등학교가 있어서 국회의원도 면단위에서 6명이나 배출했다고 자랑하신다. 홍시 얻어먹은 대가로 사진을 찍어드리고 꼭 산행기에 올리겠다고 덕담을 건네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까 내려 온 농로 길을 거슬러 올라가 언덕마루에 서니 놓친 정맥 리본이 보인다.

 

천왕산 정상의 너럭바위들.
여기서부터는 산이 아닌 밭가와 구릉지대가 지루하게 계속되는데 멀리 보이는 천왕산(225m)이 높이에 걸맞지 않게 우뚝 서 있어 방향을 놓칠 염려가 전혀 없다. 지루한 구릉 길을 지나 대밭을 통과하니 여기가 중산마을이다. 중산마을 위로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데 다행히 마을 입구에 굴다리가 있어서 고속도로 아래로 통과하게 해 준다. 한삼덩쿨 등 잡초가 무성한 비탈 길을 기어 올라가니 밤나무 숲으로 정맥 길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천왕산은 높이가 낮다보니 8부 능선까지 밤 밭이다. 종주 중 밤 가시가 손가락에 박혀서 고생한 기억이 떠올라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산을 오르는데 225m의 산이 1,200이 넘는 백운산 오르기보다 힘들다.

 

천왕산과 망덕산을 이어주는 출렁다리.
호남정맥의 마지막 혈이 천왕산에 맺혀 있는지 정상 근처는 완전히 암릉이다. 오후 3시 20분이 되서야 겨우 정상에 닿았는데, 정상 전체에 고인돌을 엎어놓은 것 같은 너럭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정상에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까지는 3.9km나 남아 있다. 천왕산을 내려와 정맥 길로 약 1km를 걸었더니 190봉이 나오는데 이곳에도 너럭바위가 정상에 가득 차 있다.

이어서 망덕산으로 연결되는 곳에는 불교식 문양으로 장식된 출렁다리가 놓여 있어서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 준다. 다리를 지나 무덤이 많은 개활지를 통과하니 망덕산 등산로가 나온다. 망덕산도 높이에 걸맞지 않게 바위가 많고 바닷가 봉우리라 그런지 해발고도를 그대로 다 올라야 정상이 나온다.

 

망덕산 정상 표지석.
오후 4시 40분경 망덕산 정상에 닿으니, ‘호남정맥의 시발점 望德山’이라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금남호남정맥 80km를 포함해 약 500km에 달하는 호남정맥 종주가 끝나는 순간이다.

지나 온 모든 산들을 떠올리며 정상석에 삼배를 하고 아까 이경태 어르신에게 얻은 단감을 한입 베어 물면서 망덕포구로 내려오는 길로 접어들었다. 입안이 단감의 향기로 달디 달다. 망덕산 아래로 10여미터 내려오니 여기에도 떡시루 같은 바위들이 가득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 앞에는 ‘부석정(浮石亭)이란 정자도 서 있다.

 

 

 

 

 

 

망덕산 정상 부근에 있는 부석정 정자.
5시경 망덕포구에 이르러 지나가는 자전거 탄 젊은이를 붙잡아 ‘백두대간 한반도 최장맥 산끝 망덕산’이란 글귀가 새겨진 표지판 앞에서 마지막 인증샷을 찍었다. 한반도가 포효하는 호랑이로 그려진 그림이 표지판에 있는데, 백두대간이 호랑이 척추라면 호남정맥은 호랑이 아래 다리에 해당되는 것 같다.

 

망덕포구의 ‘백두대간 한반도 최장맥 산끝 망덕산’ 안내판에서 인증샷한 필자.
아무런 사고 없이 산행을 끝낸 것을 같이 동행해 준 겸신 친구, 낙수 등 동반자들에게 감사드리면서 이제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가야 할 길을 꿈꾸면서 종주기를 마친다.

그동안 졸고를 애독해 주신 남도일보 독자 여러분께도 호남정맥의 서기를 함께 나누어 드리면서 감사드린다. 내년쯤엔 아마도 낙동정맥 어느 구간을 걷고 있을 것 같다. 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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