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고 어디에서나 실천되어야 할 일-가정-돌봄
박미정(광주광역시의회 환경복지위원장)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진 단어 중 하나가 일-가정 양립이다. 이제는 보편화 된 이 단어가 현대인들의 일상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지만 얼마나 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우리사회의 성장과정이 경제적 부의 축적만을 위한 메커니즘, 경쟁과 승자독식으로 치달리는 편향에 대한 제동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 올랐다. 국가는 강대국이라는 빛을 보게 되었지만 각 개인들은 압축적 성장의 그늘에 가려있다. 짙은 그늘이 만든 단어가 일-가정의 양립일 것이다. 우리 사회나 개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가정을 등한시 하는 것은 당연했고, 집안일을 밖에서 말하거나 하소연하면 ‘팔불출’ 또는 ‘엄살과 핑계’로 치부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별 짓기로 일상적인 사람살이의 말과 행동들을 통제하면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해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가정 양립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언어로 탄생했다. 1987년 12월 4일 ‘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평등 기회와 대우의 고용 보장 및 촉진, 근로자의 일과 가정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20년 후,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명칭 변경하였다. 33년 전 일-가정의 양립을 위한 강력한 법적 장치가 제정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일-가정 양립을 외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 환경은 일ㆍ가정 양립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남성 중심의 장시간 노동문화는 일하는 남성이 육아에 매우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하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법률을 제정했어도 일상생활에서 관행화된 언어와 표현들이 법률보다 우위에서 통제장치로 작동되어왔다. 일과 가정을 위한 돌봄의 기반이 절실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일-가정-돌봄은 개인 생애를 구성하는 세 개의 축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일-가정-돌봄은 일하는 남성과 여성이 일과 가정생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상태를 의미한다.

일과 가정생활이 조화를 이루려면 우리 각자는 충분히 돌봄을 주고받아야 되는 주체로서 서로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마치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어느 상담가의 표현처럼 돌봄의 담당자는 따로 정해져 있거나 여성영역의 일이 아니다 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쉼의 시간이 주어질 때 돌봄의 사회화는 시작될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을 가족이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보낼 수 있게 사회적으로 개인적 시간을 주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어디에서나 실천할 수 있는 기반들이 조성되었을 때 일-가정-돌봄은 순환될 수 있고 진정한 의미의 일과 가정의 양립이 체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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