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핀 학구열…한국에서 꽃 피운다

남도 무지개프로젝트 시즌2-빛으로 나아가는 이주민들
<2>이주결혼여성 필리핀 아나벨씨
못다핀 학구열…한국에서 꽃 피운다
사회복지사·평생교육사 취득
이주민 위해 병원서 통역 봉사
 

지난해 8월 아나벨씨가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아나벨씨 제공

“이주여성 향한 차별 근절되길…”

“피부색은 다르지만 이주결혼여성도 한 아이의 어머니예요.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도와주세요.”

지난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이주여성연합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주결혼여성 아나벨(40·여·필리핀)씨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02년 4월 고국 친구의 소개로 현재 남편과 인연을 맺어 대한민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그는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 사회에 스며들려 노력하고 있다. 다른 피부색과 문화 차이로 한국 사람들에게 조롱 섞인 언행을 겪어야만 했지만 그럴수록 아나벨씨는 이주여성도 성공적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했다. 이주한 지 19년이 지난 지금 그는 부단히 노력한 결과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광주·전남 곳곳에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광주이주여성연합회 내부에서 이주민 성공 정착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민원 안내 자원봉사를 하는 아나벨씨. /아나벨씨 제공

◇“나도 꿈이 있어요”

필리핀에서 경영학과 학생으로 대학을 다녔던 아나벨씨는 지난 2002년 교회에서 남편을 만나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해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꿨다던 그는 영어와 따갈로그어 등 2개 국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수재였다. 20대 초반 이른 나이에 맺은 백년가약으로 접어야 했던 교육자로서의 꿈을 한국에서 펼치겠다는 부푼 꿈도 꿨다.

하지만 이주 초기 그는 광주·전남 특유의 빠르고 억센 억양으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 하기 벅찼다. 더불어 까무잡잡한 피부색으로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안 씻어서 까만 아프리카 사람’이라는 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른 이주민들이 본인과 같은 차별을 겪지 않고 한국 사회에 융화될 수 있도록 본인의 역량을 갈고 닦았다. 이주민들도 분명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피부색이 다르니까 한국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람이냐고 놀리곤 했다”며 “2002년 이주 당시 한국인들도 외국인을 많이 만나지 못해 생소해서 그랬던 것으로 생각한다. 악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속상함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너나들이·이주가정 다문화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미술 프로그램’에서 아나벨씨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모습. /아나벨씨 제공

◇꿈을 위한 도약

그는 가장 먼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나주에 있는 고구려대학교 노인복지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공부에 대한 욕심과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2년간 오후 7시~10시까지 학교에 모여 공부했다. 오전에는 한국어 공부와 미흡했던 전공 공부를 복습했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를 보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그 결과 지난해 아나벨씨는 사회복지사 2급과 평생교육사 2급, 건강가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을 활용해 사회복지사로 근무해 이주민들의 인권에 힘을 쏟겠다고 아나벨씨는 설명했다.

그는 “슬하에 4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육아, 살림, 학업 등 3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였다”며 “나주로 왔다 갔다 할 동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이주여성을 위해 이루고 싶은, 이뤄야만 했던 꿈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너나들이·이주가정 다문화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미술 프로그램’에서 아나벨씨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모습. /아나벨씨 제공

◇이주여성계의 천사

아나벨씨는 광주이주여성연합회에서 일명 ‘이주여성계의 천사’로 불린다. 한국인과 이주민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각종 봉사활동을 수년간 이어가고 있어서다. 먼저 아나벨씨는 필리핀에서 갈고 닦았던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학원에서 회화 선생님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고국에서 못다 이룬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그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알려줄 때면 행복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그는 의료업계에서도 통역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광주의료관광지원센터에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통역을 하고 있다. 생명이 달린 의료업이다 보니 안전 예방을 위해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센터 내에서 의료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또 지난 2018년도부터 현재까지 1주일에 한 번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민원안내와 통역 봉사를 진행하고 있고 지난해 열린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도 의료관광지원센터에서 의료통역을 담당했다.

◇“이주여성 위한 지원 생겨야”

아나벨씨는 이주여성의 인권을 위해 실질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생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어가 서툰 탓에 대부분 공장에서 단순 노동 업무를 보기 일쑤다”며 “한국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한국어 교실’과 사회 곳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격증 공부를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이주여성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시선이 앞섰지만 최근에는 많은 한국인이 이주여성에게 살갑게 대해준다”며 “이주여성들도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한국인들과 어울려 한국 문화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이주여성도 한 아이의 어머니인 만큼 안정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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