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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2)

기사승인 2020.02.12  18: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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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2)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22)

용골산성을 진압한 정봉수가 정충신 부원수에게 밀서를 보내왔다. 서신을 펼쳐보니 배신자 머리를 베었다는 것이다.

-미곶첨사 장사준은 부사 이희건이 돌아오지 않자 스스로 머리를 깎고 달적(?賊:여진 오랑캐)의 장수 왕자에게 투항하여 아내를 인질로 맡기고 용천부사가 되기를 청하였고, 용천부사가 되어서는 스스로 관곡(官穀)을 내어 오랑캐를 호궤(?饋)하는 술을 빚고 백성들의 소를 겁탈하여 오랑캐를 호궤하는 반찬을 만들었으며, 백성 중에 머리를 깎지 않은 자가 있으면 협박하여 머리를 깎게 하되 순종하지 않으면 죽였습니다. 신이 지난달 27일 산성으로 들어가서 용천·의주·철산 세 고을 사람들을 불러 타일렀더니 무리들이 점차 모여들어 거의 4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 뒤 장사준이 신에게 글을 보내어 항복하기를 협박하였으나 신이 회답도 않자 이튿날 사준이 와서 협박하기를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너에게 화가 있을 뿐만아니라 백성들의 화 또한 예측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달(眞?:날쌘 군대) 수백을 몰래 끌고 와서 성 밖 7리 지점에 숨겨두었는데, 신이 드디어 사준과 공모자 수십 명을 죽이니 성중의 남녀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적의 유기(游騎)를 베기도 하고 적의 말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3월 17일 왕자란 자가 의주·창성·곽산에 주둔해 있던 군대를 크게 일으켜 모두 산성 밑으로 모이게 하였는데 묘시에서 신시까지 다섯 차례의 큰 싸움을 하였습니다. 성중의 남녀들이 화살·포·돌 등 세 가지 물건을 일시에 내려던지자 적의 선봉 수백여 기(騎)가 일시에 즉사하였는데 우리 군사는 사상자가 10여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이 모집한 군사들은 전구(戰具)나 군량이 모두 떨어졌고 구원병도 끊겼으니 사태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龍骨山城義兵將鄭鳳壽馳啓曰: “彌串僉使張士俊, 自府使李希建之不返, 自削其髮, 投入?將王子, 以妻爲質, 請作龍川府使, 自出官穀, 釀饋胡之酒, 迫奪民牛, 辦饋胡之饌。民之或未削髮者, 迫而使削, 如不順從, 劫而殺之。臣以前月二十七日, 來入山城, 招諭龍、義、鐵三邑人, 衆稍來集, 幾至四千。其後士俊, 送書于臣, 迫令來降, 臣不答其書。翌日, 士俊來脅曰: ‘如不降附, 非但於汝有害, 百姓禍且不測’ 且潛引眞?數百於城外七里許, 臣遂斬士俊及其同謀者十餘人, 城中男女, 莫不欣?, 或斬游騎, 或奪馬匹。三月十七日王子者, 大擧義州、昌城、郭山留陣之兵, 咸聚城下, 自卯至申, 五巡大戰, 城中男女, 以矢、砲、石三物, 一時俱下, 先鋒數百餘騎, 一時立死, 我軍則死傷僅一十餘人。第臣所聚之兵, 戰具、軍餉皆乏, 援兵亦絶, 事極可慮” 云).

정충신은 정봉수의 서신과 함께 별도로 전적평가서를 써서 강화도 행재소에 보냈다. 전훈자를 특진시켜 병사들을 고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류는 비국에 접수되어 임금에게 보고되고, 뒤이어 녹훈이 결정되었다.

-비국이 아뢰기를 “정봉수는 의병을 소집하여 외로운 성을 고수하면서 먼저 장사준을 베어 사기를 치솟게 하였고, 대부대의 적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힘을 다해 죽을 각오로 싸워 적의 선봉을 무찔러서 보전시켰으니, 옛사람 중에서 찾아보아도 이런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본성(本城)은 밖으로 뒤를 이어줄 구원병이 없으니 대부대의 적이 서쪽으로 돌아갈 때 반드시 힘을 다해 공격할 것이 염려됩니다. 김기종, 정충신으로 하여금 해로로 군량과 군기를 보내게 하소서. 그리고 정봉수를 전일에 가산군수에 제수하시고 또 가자(加資: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명하셨으니, 지금 김기종의 장계에 의하여 용천부사 겸 조방장으로 승진시켜 제수하시고, 이어 상물(賞物:포상금)을 하사하는 데 있어서 무장 장초와 함께 감사에게로 보내어 그에게 전달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공이 있는 장사들을 일일이 조사해 보고하게 하여 거기에 의거해서 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으로 하유하소서. 장초는 죽음을 무릅쓰고 먼 길을 와서 첩보를 전하였는데, 그는 아직 출신(出身)하지 않은 갑사(甲士:조선시대 오위제의 중위에 속했던 군인으로 왕권 호위를 담당하는 특수 병종)라고 하니 그에게도 논상함으로써 용동(聳動:기쁘거나 하여 몸을 솟구쳐 뛰듯 움직임)시키는 거조로 삼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선전관을 보내어 군량과 군기를 독촉하여 수송하게 하고, 정봉수는 가자하고 장초는 당상으로 승진시켜 보내라” 하고, 이어 해조로 하여금 비단과 금관자를 마련해서 보내라고 하였다. <이상 인조실록 16권, 인조 5년 4월5일 신축 4번째 기사 1627년>

(備局啓曰: “鄭鳳壽召集義兵, 扼守孤城, 先斬張士俊, 以壯士氣, 及大賊來攻之日, 竭力死戰, ??賊鋒, 使一城得全, 求之古人, 亦不多得。但念本城, 外無繼援, 大賊西歸之日, 必盡力攻之。請令 金起宗、鄭忠信, 由海路入送糧餉、軍器。且鄭鳳壽前日除授嘉山, 且命加資, 今依金起宗狀啓, 陞授龍川府使兼助防將, 仍賜賞物, 偕張?送于監司處, 使之傳送。且諭以有功將士一一査啓, 以憑行賞之意。張?冒死跋涉, 來傳捷報。渠是甲士, 未出身云, 亦宜論賞, 以爲聳動之擧” 上曰: “依啓。發送宣傳官, 糧餉、軍械, 督促輸送。鄭鳳壽加資, 張?陞堂上以送” 仍令該曹, 覓送錦段及金貫子). <인조실록 16권, 인조5년 4월5일 신축 4번째, 국편영인본 34책 인용>

그런데 또 엉뚱한 치계가 올라왔다. 장사준에게도 녹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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