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식 일동중 교장의 남도일보 화요세평
무돌길에서 만난 학교.
김홍식(일동중 교장·광주국공립중등교장회장)

몇 년 전, 전임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문 기사를 보고 전화한다면서 그 내용을 다분히 미심쩍게 생각하는 듯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퍽 인상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소환하여 비슷하게 재구성해 본다.

“학생들이 잔반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만.”

“직접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지금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통화가 끝나고 얼마 후 경륜이 느껴지는 점잖은 노신사 한 분이 교장실로 들어섰다. 명함을 건네며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뒤에 궁금하게 생각하는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그리고 급식실로 가서 나와 함께 먼저 식사를 마친 뒤에 학생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실이군요. 정말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제가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잔반을 안 남기게 하려는 노력을 해 봤지만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중학생들이 이를 해냈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그분이 학교에 다녀간 얼마 후, 무등산 시무지기 폭포에 가기 위해 광주역 앞에서 출발하는 무등산순환버스를 탔다. 비가 많이 내린 뒤에 계곡의 수량이 크게 늘어나서 폭포가 연출하는 멋진 장관을 잔뜩 기대하면서 무등산사랑 환경대학 동기생들과 의기투합했다. 버스가 각화동 무돌길 1구간 출발점에 이르렀을 때다. 해설사가 갑자기 탐방객 모두에게 고개를 들어 오른쪽을 보도록 했다. 승객들이 ‘뭘 보라는 거지? 별것도 없는데.’와 같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드디어 이분이 말문을 꺼냈다.

“이 K중학교 학생들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잔반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아이들이거든요. 어른들도 감히 하지 못한 일을 어린 중학생들이 실천하는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 우리 학교를 방문했던 바로 그분이었다. 산에 가는 복장에 모자를 쓰고 있던 터라 서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원00해설사님! 그분의 칭찬이 학교를 한참 지나 도동고개를 넘어 담양 경계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우리학교 홍보대사로서 하나도 손색이 없었다.

우리 일행 중에 성건진 분의 신고(?)로 내가 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분은 오늘뿐만 아니라 해설할 때마다 스스로 이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리 교직원들과 아이들의 노력이 남달랐다. 모두 나서서 스스로 해낸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박수받기에 충분한 일이라고 자부한다. 아직도 이 일을 생각하면 학교교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뚜렷이 떠오르면서 모두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똑같은 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박수를 받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는 무조건 잔반이 없도록 하라고 강요해서 된 일이 결코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율배식을 감행했다. 어려운 결정이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학생들의 손으로 주걱이나 반찬집게 등을 잡게 한다는 것은 식중독이 어른거려서 매우 두려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손이 깨끗해야 한다는 전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믿을 수 있을 만큼 확실히 학생들의 손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수돗가를 거쳐오게 하고 세정제를 뿌려주고, 확인용 바둑알을 손에 쥐어주는 등 이중 삼중의 일을 하였다. “반찬을 짜지 않고 맛있게 만들어 주세요. 맛 없는 반찬을 남기는 것은 아이들 책임이 아닙니다.” “몸에 좋은 두부나 묵은 아이들이 싫어하는데 그 조리 방법을 적극 연구해 주세요.” “음식의 소중함이나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합시다.” 등등

교육적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방법만 잘 찾으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논어에 나오는 ‘유교무류(有敎無類)’는 교육에서 차별을 하지 마라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교육이 안되는 사람은 없다.”라고 해석하면 안될까? 즉 방법만 좋으면 그 누구도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또 방법만 잘 찾으면 그 어떤 어려운 일도 교육이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교육의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 관성적으로 그 대상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방법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방법을 찾고 찾고 또 찾다 보면 되는 순간이 온다. 옳은 일이라면 될 때까지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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