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8)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28)

“다이샨 패륵, 어찌하여 조선과 화약을 맺고도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약탈과 방화, 살인을 저지른단 말이오?”

정충신은 예를 차리는 둥 마는 둥 하고 눈썹을 꼿꼿이 세운 채 다이샨을 노려보았다.

“거, 무슨 뜻이오?”

수년만에 만난 반가움보다 항의부터 하는 정충신을 바라보던 다이샨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찍이 다이샨 패륵 형제와 우정을 돈독히 했습니다. 한데 호란을 일으키며 3만7천의 군사를 풀어 조선 영토를 짓밟았습니다.”

“조선은 광해가 후금과 가깝다고 해서 그를 축출하고, 친명으로 돌아섰잖소? 누가 배신한 거요? 조선은 광해를 배신하고 명을 추종하는 인조의 나라가 되었는데 우리더러 침묵하라고? 후금과 친선을 도모한 광해를 쳤으면 조선은 우리의 적이오.”

“그것은 역적 한윤 때문이지요. 당초에 후금은 한윤의 말을 듣고 의주를 침범하여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시험하다가 우리 군사가 놀라서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므로 더 깊숙이 들어왔소이다. 그렇더라도 오해를 풀고 화친을 도모했습니다.”

다이샨이 생각이 다르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윤이 추종자들을 창솔(倡率)하여 연명으로 칸에게 정장(呈狀:소장을 관청에 내는 것)하기를 ‘조선이 광해를 축출하고 명과 강화를 맺고, 후금을 노리니 약속을 어긴 것이요, 그러니 원수를 갚는 데 나서겠다’고 했소. 나는 여러모로 의심스러워서 얼마 전 도망하여 우리 땅으로 들어온 평양 사람 노국남과 노선손에게 물었던 바, 그들이 와서 말하기를 맞다고 했소. 반면에 조선 문신 유해의 아우가 심양에 와서 말하기를 ‘이미 화친을 맺고, 돌아서자마자 공격을 하면 신의를 배반하는 것이오, 명을 돕는 일’이라 하니 나 역시도 혼란스러웠소. 그런 사이 아우 홍타이지와 아민, 호어거가 쳐들어갔던 것이오.”

“후금은 화친 조건으로 세 가지를 요구했는 바, 첫째는 땅을 떼어주는 것이고, 둘째는 모문룡을 잡는 것이며, 셋째는 군사 1만을 빌려 명나라를 치는 데 도우라는 것이었소. 들어줄 수 없는 요구 조건인데도 조정은 이를 수락했소. 그러면 군말없이 물러서야 하는데 탐악질이 더 심하오.”

“조선이 불우하게 된 것은 모문룡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지 않소. 그런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단 말이오.”

“본관이 후금의 골칫덩어리 모문룡을 잡아드리겠소이다.”

“귀국이 모문룡과 은밀히 내통하며 우리를 넘본다는 첩보가 들어왔는데, 모문룡을 잡는다고? 그 말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그자는 병균이나 마찬가지로 우리나 후금에게나 명국에게 고질적인 병폐였소.” “나는 귀국이 평소 의리에 따라 우리와 친교를 맺었으니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부왕께서도 만리 밖을 내다보시는 명철한 안목으로 비루한 자의 말을 옳게 여기지 않으셨는데 조선 조정이 정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단 말이오. 본관은 정 공의 진의를 믿지만, 조선 조정은 정 공과 달라서 반신반의요. 그래서 아우들의 조선 침공을 묵인했던 것이오.”

“거두어 주시오.”

“정말 모문룡을 잡는다는 거요? 그 자는 명 황실이 보호하고 있다는데?”

“반은 맞소. 그 자는 엄당의 보호를 받고 있소.”

“엄당?”

“엄당은 환관의 패거리요. 그것들이 모문룡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비리를 눈감아주고 있소. 그 뇌물이 조선의 백성들이 고혈을 짜서 만든 것이니, 본관이 명 진영에 이 사실을 낱낱이 고변하여 황실의 재가를 받지 아니하고도 그자를 잡아 처치할 것이요. 온갖 협잡과 부정과 비리로 명나라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데, 그를 보아주는 것은 명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오. 그를 잡는 데는 시간문제요. 그렇게 상황을 본관이 만들어 놓았소.”

정충신은 원숭환이 모문룡을 때려잡을 것이라고 그의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 다이샨 부친 누르하치의 원수를 말하는 것은 다이샨을 화나게 할 것이다. 누르하치는 영원성 전투에서 원숭환 군에게 패퇴한 뒤, 부상의 후유증으로 끝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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