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사람들이 외부 손님을 꺼리는 까닭은
바다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선
물때와 바람, 물길과 갯벌 등
어촌 질서·어민들 삶 알아야
인간 불편하다고 물길 막으면
어촌과 수백년 문화자원 사라져
어민에만 ‘바다보호’ 강요 안돼
따뜻한 마음으로 어촌 바라봐야
■바닷마을 인문학
김준 / 따비 / 1만7천 원

전남 신안군의 노두./김준 박사 제공

귀농만큼은 아니어도 귀어를 꿈꾸거나 이미 실행한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렇지만 도시생활에 익숙한 이들에게 어민의 삶과 어촌의 질서는 낯설다. 바다와 갯벌은 누구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에 바닷마을에는 바닷마을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다. ‘바닷마을 인문학’은 바닷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바닷마을을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도 바다를, 갯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갯벌과 바다, 섬과 어촌을 찾고 그 가치를 기록해온 광주전남연구원 김준 박사의 신작이다. 김 박사는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먼저 물때와 바람, 물길과 갯벌을 든다. 사람이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일구고 조작할 수 있는 농사와 달리 갯일은 순전히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서다.

자연에 대한 순응은 ‘노두’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섬과 갯벌이 가장 많은 전남 신안군에서는 다리를 놓기 전에 물 빠진 갯벌에 징검다리(이런 징검다리를 ‘노두’라 한다)를 놓고 건너다녔다. 결혼식을 할 때에도 꽃가마를 타고 노두를 건넜고, 큰 섬에 있는 학교를 오갈 때에도 노두를 건넜다.

물론 등하교 시간은 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춰졌다.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는 병풍도·신추도·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 등 여러 섬이 노두로 연결되어 있는데, 학교가 큰 섬에만 있던 때는 수업을 하다가도 바닷물이 불어 노두가 잠길 시간이 되면 책보를 싸고 하교했다. 아이들이 노두를 건너는 시간에 맞춰 부모들이 당번을 정해 마중을 나와야 했다.

어민들의 뻘배질./김준 박사 제공

김 박사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이야기한다. 바다와 갯벌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이 가꾸는 마을어장이다. 논밭에서 물 주고 김매듯 함께 갯닦이를 하고 갯밭을 가꾸고 수확한 것을 나눈다. 함께 모여 제를 지내며 물고기를 부르고 조개를 부른다.

완도군 한 섬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어장을 분배하는 기준 중 하나로 가족 수를 고려했다. 농사지을 땅은 부족해도 김 값이 좋아 김 양식이 가장 큰 소득원이었던 시기다. 보통 어촌계에 가입해 마을 공동어장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면, 처음에는 기존 주민들보다 작은 규모의 어장을 분배받는다. 하지만 나중에는 똑같은 규모의 어장을 분배받게 된다. 섬살이 자체가 권리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이러한 조건 외에 가족 수를 변수로 고려했다. 단순히 산술적인 평등을 넘어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한 것이다.
 

미역 물주기./김준 박사 제공

저자는 괭이를 들고 갯밭을 평평하게 고르는 생경했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네 어업 전통을 살펴본다. 갯밭을 평평하게 고를 이유가 뭘까? 물 빠짐이 좋게 골을 치고 모래나 흙을 집어넣어야 어린 바지락이 잘 자라단다. 썰물에 물이 빠질 때 갯벌이 평평하지 않으면 물웅덩이가 생기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봄이나 여름에 햇빛 아래서 뜨거운 물로 변한다. 만약 여기에 바지락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어린 바지락은 그대로 익어버리기도 한다. 큰 바지락은 갯벌 깊숙이 들어갈 수 있지만, 어린 바지락은 비명횡사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갯벌 체험을 온 사람들이 뻘흙을 마구 파헤쳐놓아 어린 바지락들이 햇볕에 노출되어 죽기도 한다(그러니 갯벌에서 흙을 함부로 긁어놓아서는 안 된다). 어촌 사람들이 어쩌다 놀러 와서 물고기의 씨를 말리고 갯밭을 망쳐버리는 외부 손님들에게 호의적일 수 없는 까닭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해변./따비출판사 제공

저자는 결론으로 어촌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 바다와 갯벌은 사람 이전에 물고기와 해초, 물새와 조개들의 터전이다. 이 터전은 인간에게 불편하다 하여 물길을 막고 바람길을 튼 결과 이제 우리 바다에서 만나지 못하는 물고기가 늘어나고 있다. 한 번 망가진 바다와 갯벌을 복원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복원이 되기는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도시 소비자야 연안에서 잡은 명태가 없으면 원양에서 잡거나 수입한 명태를 먹는다지만, 명태가 없는 바다에서 어민들은 어찌 살아가게 될까.

자연적 시간과 바다·갯벌이라는 공간이 사라진다면 어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어촌은 사라질 것이다. 단순히 마을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전통 지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문화자원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를 어민들에게만 지켜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 길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촌의 가치와 갯벌의 가치, 섬마을의 가치에 공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골목 시장에서 마주치는 바지락이, 마트에서 마주하는 김이 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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