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9)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29)

“우리가 조선국과 그럴 처지가 아닌데 왜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모르겠소. 정충신 부원수가 모문룡을 처치하겠다고 하니 우리의 혹 덩어리를 처리해주는 것으로 고맙게 생각하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나 역시 조선땅에 출병한 군사들을 불러들이도록 하겠소.”

다이샨이 정충신에게 정중히 예를 취했다.

정충신이 말을 타고 임지로 돌아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황해도 평안도에 머물렀던 후금군이 철수하고 있었다. 약속이 지켜지는 것이었다. 정충신은 흩어진 군병과 백성들을 모았는데 너무나 피해가 심했다. 임진왜란 때보다 더하다고 했다.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병들었고, 그 가족이 헤어져 생사를 모르는 자가 많았다. 후금군에게 죽은 것보다 굶주려서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 가슴 아팠다. 먹을 것을 찾아 행방을 감춘 자도 많았고, 병든 자들이 못먹어서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었다.

정충신이 임지로 안주 임지로 돌아오자 장수 김동작이 달려와 고했다.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도 굶주리고 있고, 밀과 보리가 익기를 기다리기엔 아직도 한달 하고도 달포가 남았습니다. 가뭄이 들어서 밀 보리가 익을 가망도 없어보이오이다. 즐비하게 굶어죽은 시체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누렇게 부황이 든 백성들을 볼라치면 눈물이 납니다.”

마중 나온 감사 김기종도 나섰다.

“마음을 다하여 구휼하고 있지만 비축해놓은 곡식이 없습니다.”

“흉년에 쓰라고 남겨둔 곡식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정충신이 화가 나서 물었다.

“모문룡이 약탈해가고, 후금군이 빼앗아갔습니다.”

그러자 죽기로 각오한 듯 거지꼴의 한 백성이 달려오더니 외쳤다.

“부원수 나리, 그것이 아닙니다. 후금군에게 빼앗긴 것보다 지방 수령의 창고로 곡식이 많이 운반되었습니다요.”

그러자 김기종이 백성을 향해 꾸짖었다.

“뭐라고? 네가 정녕 헛것을 보았겠다? 감히 모함이라니...”

정충신이 김기종을 노려보며 군교들을 향해 소리질렀다.

“너희는 지금 당장 인근 현령 군수 원님들 사가(私家)와 창고로 달려가 문을 열라!”

추상같이 엄명하니 군교들이 창검을 들고 조를 짜 지방 수령의 사가로 몰려갔다. 한참만에 돌아온 지휘관들이 차례로 보고했다.

“두 군데 수령의 창고에서 미곡과 맥곡, 조를 200-300석의 곡식을 적발했습니다.”

“소관은 300석을 적발했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고을 사람들에게 풀라. 보리와 밀이 생산될 때까지 먹이도록 식구 수를 보아 분배하라. 대신 나눠준 됫박대로 수기해서 가을 수확 철에 거둬서 국고(國庫)에 채워넣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니 정충신의 군사 진영 앞에는 매일 백성들이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갔다. 어느날 돈파라는 노인이 달려와 엎드렸다.

“부원수 나리, 후금의 군사가 즉시 강을 건너지 않고 고을에 머무르며 노략질을 일삼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분노하여 복수할 양으로 대항했는데, 이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관청에서는 조정에서 명하지 않았으니 어찌할 수 없다고 방치하고 있나이다.”

“못된 것들, 후금 군대 지휘관을 당장 체포하라.”

이렇게 명령을 내리는데 이번에는 여인이 달려와 울부짖었다.

“나리, 고을 백성 수천 명이 북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한결같이 달려와 정충신에게 고변하는 것은 그가 그만큼 자기들 편에 서서 돕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정충신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후금국의 호송관 이홍망이 조선 백성 2000을 끌고 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여자들이 더 많았다.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은 끌고 가 부엌 일과 잠자리 용으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오랑캐 집단은 여자가 부족해서 한 여자를 형제가 함께 데리고 사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부족분을 채우느라 여자들을 끌고 가는 것이다. 정충신이 창검부대와 궁수부대를 포진시키고 이홍망을 불러세웠다.

“후금군은 화의 약정에 따라 후퇴하면서 약탈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네놈은 약정을 거역했다. 그러면 후금국 국법에 따라 처벌될 것이다. 다이샨 패륵과 그렇게 약속했다. 석방하지 않으면 후금국에 넘기기 전에 네 눈알이 여기서 뽑힐 것이다. 당장 석방하라.”

이홍망이 사세의 불리를 알았던지 잠시 쭈볏거리다 조선 백성의 유지급들부터 풀어주었다. 그 중에는 장수 김진과 부사 박유건 부부도 있었다. 이들을 인도받는 사이 끌려간 백성들이 일제히 숲으로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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